brunch

색인, 새김

, 그리고 얼음 다 녹은 아이스 라테

by 케니스트리

색인(索引): 책 속의 낱말이나 구절, 또 이에 관련한 지시자를 찾아보기 쉽도록 일정한 순서로 나열한 목록 (위키피디아)›


제게 최근 새로운 취미가 생겼습니다. 바로 캘리그래피와 수채화입니다. 그동안 글 이외에는 주로 자전거, 등산, 달리기 같은 동적인 활동을 취미로 삼았는데, 그런 것들을 하기 힘든 시기에도 즐길 수 있는 수채화 캘리그래피는 글과 그림을 좋아하는 제게 안성맞춤인 취미입니다.


사실 그림과 글씨는 잊기 위해 시작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새김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성경의 말씀이 그렇습니다. 복음을 접하고, 좋은 문구는 따로 적어 두었다가 어울리는 그림에 쓰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고 그와 연관한 성경 구절을 찾아 글씨를 연습해보기도 합니다.



"주님, 당신의 업적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모든 것을 당신 슬기로 이루시어 세상이 당신의 조물들로 가득합니다. 저 크고 넓은 바다에는 수없이 많은 동물들이, 크고 작은 생물들이 우글거립니다."(시편 104,24-25)



바다가 멋진 제주도로 피정을 떠나는 교우의 소식에 문득 바다가 그리워 예시 그림을 참고해 바다를 그렸습니다. 그림에 어울리는 시구를 찾다가 성경을 들췄습니다. 시편의 한 구절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질서, 조화로움, 그 모든 것에 감사함을 사색하게 한 좋은 구절입니다.




오늘 교리공부 시간에 배운 마르코 복음서의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입니다.


"자, 들어보아라.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 말라버린 것이다.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그리하여 어떤 것은 서른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마르 4,3-9)


마지막 구절에 등장하는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듣고 깨우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간단하게는 '믿음이 있는 이'입니다. 앞선 구절의 '좋은 땅'에 해당하는 이가 바로 그들입니다. 반대로 싹이 나서 자라기 힘든 도로나 건조하고 거친 땅은 바로 닫힌 마음을 뜻합니다. 이 구절에서 '씨'가 상징하는 것은 바로 '말씀'이므로, 좋은 땅이자 들을 귀 있는 사람은 곧 말씀을 듣고 깨우칠 수 있는 믿음이 있는 이, 지혜로운 사람을 의미합니다. 닫힌 마음은 좋은 이야기도 거르고 뱉어냅니다.


성당에서 사계절을 보내기 전 저는, 확실히 거칠고 건조한 땅과 같은 마음상태였습니다. 사랑, 믿음이 꽃이라면 자그마한 싹조차 틔우지 못한 삶이었습니다. 저는 어떤 글에서, 눈물이 곧 비가 되어 메마른 마음을 적시고, 성당에서 얻은 말씀이라는 씨앗이 믿음의 싹을 틔운 것 같다 했습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그 싹이 자라 고운 '믿음의 꽃'이 되기를 바란다며 글을 마쳤습니다.


수 개월이 지난 지금은 어떨지 잠시 생각해 보니, 지금은 비로소 마음에 꽃이 작게나마 핀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요즘 꽃 그림이 참 좋습니다.


들에 핀 꽃


수채화를 배울 때 처음 주어진 과제가 바로 '이파리'였습니다. 주로 이파리와 꽃, 나뭇가지 같은 것들을 그리는데, 이유는 이 소재들이 크게 어렵지 않으면서, 물감의 농도를 조절한 채색을 연습하기에 좋기 때문입니다. 찾아보면, 좋은 문구와 함께하는 캘리그래피를 곁들인 수채화 작품들에서 꽃이 많이 등장합니다. 왜 꽃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꽃은 수채화 연습 소재로도 훌륭하지만, '꽃다운'이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아름다운 시절의 상징이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살펴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루카 12,27)



나리꽃은 백합과의 꽃으로,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들에 핀 나리꽃'이라고 더 자세히 지칭합니다. 길쌈은 섬유를 가공해 직조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애써 꾸미지 않아도 아름다운 들꽃을 비유로 들며, 헛된 욕망과 허상, 허례와 허식을 경계하고 오직 더 중한 가치에 정진하라는 의미로 읽힙니다.




하루는 카페에 앉아 한참 꽃 그림을 그렸습니다. 날씨가 좋아 창으로 빛이 가득 들어오던 그런 날이었습니다. 카페 한쪽 구석에서 아이스 라테 속 얼음이 다 녹아 밋밋한 맛이 될 때까지 집중해 하나하나 벚꽃 잎을 그렸습니다. 그림을 잘 그리던 누군가가 보면 참 신기하다 할 이 광경은, 요즘 저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쉼의 모습입니다.


아직 그림 실력이 서툴러 풀, 꽃, 나무처럼, 복잡한 세상에서도 그저 순리에 따라 피고 지는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것들을 주로 그릴 뿐입니다. ✢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18화사랑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