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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켄PD Sep 16. 2023

바이킹이 된 원양어선 선원

에스키모가 된 한국인

저 먼발치에서 뿔이 달린 바이킹 투구를 쓰고 가죽옷을 입은 남자가 스노모빌을 타고 달려오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한국인이라고는 보기 힘든 에스키모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반가운 목소리로 "어서 오세요. 잘 오셨습니다!"라면서 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반겨 주웠다.


'에스키모'라는 말은 공격적인 어감이 있어 캐나다에서는 '이누이트' 미국에서는 '알래스카 네이티브'라고 부르지만 이글에서는 편의상 에스키모로 표현을 하겠다


알래스카의 오지 피터버그(Petersburg)에서 그렇게 둘은 만나게 됐다.

알래스카 토박이 이 씨는 인구 2,500명의 이 작은 어촌마을의 유일한 한국인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당시 알래스카를 경유하던 한국 국적기를 통해 알래스카 생선을 한국에 유통시키던 이 씨는 명태 대구등을 구매하려고 조그만 어촌 마을 피터버그에 방문하게 되었고 영어보다 에스키모 언어가 잘 통하는 이곳에 유일한 한국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통역이 필요하여 만남을 부탁하게 되었다.


하지만 막상 만나보니 한국인이라 하기엔 강렬한 북극광에 까맣게 그을린 피부, 덥수룩한 수염 그리고 무엇보다 바이킹 해적들이 썼을 법한 뿔이 달린 투구에 야생 동물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는 남자를 보고 적잖게 당황했다.


유창한 한국어에 한국인임은 확신했지만 우선 급한 생선 흥정을 끝내고 저녁을 같이 먹자는 바이킹 남자의 제안에 집으로 따라가게 된다.


이 먼 오지에 어떻게 정착하게 되었고 가족은 있는지 모든 게 궁금해졌다. 둘은 밤이 깊어 가며 이야기를 나누고 바이킹 남자는 본인을 문 씨라 소개하며 알래스카에서는 귀한 이 씨가 가져온 소주 한잔에 지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원양어선 타고 3년 썩으면 한몫 잡겠지

문 씨는 신문에서 ‘연봉 1천만 원 보장’이라는 외항선원 모집광고를 보고 솔깃해졌다. 91년도 당시 연봉 1천만 원이면 꽤 큰돈이었다.


출항 전까지는 다들 친절했었다 하지만 닻을 올리자마자 순식간에 배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24시간 어업에 하루 대 여섯 시간만 쪽잠을 자면서 일을 해야 했다. 일이 서투르면 당장 몽둥이가 날아왔다. 선원 한 명쯤은 죽여버리고 사고사로 처리하면 된다는 선장의 협박도 이어졌다. 그물 밧줄에 얼굴을 다쳐도 마취 없이 6방을 꿰매어버리고 다시 열외 없이 일을 해야 하는 날들이 반복됐다. 이젠 돈이고 뭐고 바로 집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만 밀려왔다. 하루하루 악몽을 꿔가며 보내는 나날 배는 베링 해협에 도착하게 됐고 보급품 조달을 위해 베링해의 외딴섬 세인트 폴(St. Paul) 아일랜드에 도착하게 된다.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문 씨는 탈출 계획을 세운다. 에스키모들에게는 술이 귀해서 술만 주면 뭐든지 들어준다는 이야기를 배에서 들었던 차라 배에 있던 라면과 소주 몇 병을 들고 밤에 몰래 에스키모 원주민 마을로 도망가게 된다.


선장을 비롯한 상급 선원들이 문 씨를 찾아 나섰지만 가져간 소주 덕분에 에스키모들을 매수할 수 있었고 결국 에스키모들의 도움을 받아 알래스카 대륙으로 가는 배를 얻어 타게 된다. 그때부터 알래스카를 떠돌면서 지금의 피터버그에 도착하여 에스키모 여인과 결혼하여 정착해 살고 있다고 한다.


당시에는 전산도 발달되어 있지 않아서 불법체류자였던 문 씨는 마을 사람들을 증인으로 내세워 원래 등록 안 된 에스키모라고 속여 에스키모 원주민 지위를 받게 된다. 막상 알래스카 원주민이 되니 여러 가지 혜택이 주어졌다. 원주민 보호구역 안에만 있으면 생활비도 주고 의료보험에 가끔 원주민에게만 허용되는 고래잡이등을 하면서 편하게 살 수 있었다. 특별한 기술도 없던 문 씨는 고통뿐인 원양어선의 기억이 싫어 원주민 부인과 함께 그곳에 정착해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한국인이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너무나 반가워 본인이 가진 최고의 의복 - 바이킹 투구, 가죽 옷 그리고 스노모빌을 타고 달려왔다는 것이다.


악몽 같은 원양어선의 기억이지만 벌써 10년이 넘어간 이야기이다. 이제는 아련한 한국의 기억이지만 문 씨는 스스로의 한국이름도 잊은 채 에스키모로 살고 있다. 


에스키모들의 평균 수명은 66세라고 한다. 아무래도 오지의 혹한의 환경과 열악한 의료시설이다 보니 수명이 캐다나 인들보다 낮다고 한다. 당시 문 씨가 40대였으니 지금은 어쩌면 돌아가셨을 수도 있을 듯하다. 한국인으로 살았으면 14년은 더 살았겠지만 지금처럼 평화로운 그의 모습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알래스카 에스키모인들은 오로라를 영혼의 춤이라고들 한다. 이제는 알래스카 하늘의 오로라가 되어버린 이민야사(移民野史)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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