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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ve me truth Apr 27. 2020

피스테라, 세상의 끝에서

끝, 또 다른 시작

 그 날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는 날이었다. 한 달이 걸렸다. 그리고 이제 그 끝이 보인다. 발걸음은 가벼웠다. 처음 순례를 시작했던 날 부터 지금껏 함께 걷고 있는 이들도 내 곁에서 아직 함께 하고 있다. 비가 내린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당황하지 않는다. 분주하게 비옷을 챙기거나 걱정하지 않는다. 춤을 춘다. 비가 온다. 우리의 마지막을 축복해 준다. 카페에 잠시 앉아 이 모든 순간을 기억에 담았다. 또 추억이 되어가는 오늘이 아쉬워 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우리들은 또 헤어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발걸음은 가볍다. 또 다시 어딘가 다른 모습속에서 서로의 모습을 발견하고 서로에 대해 떠올릴 것을 알고 있으니깐 말이다.

 비는 또 그친다. 모든 건 끝이 있듯이 다시 햇살이 비춘다. 작은 숲길을 지나 도시가 눈에 보인다. 눈 앞에 산티아고 성당이 눈에 보인다. 걷는다. 멈춘다. 아쉽다. 이 길이 끝이다. 내게 슬픔도 즐거움도 주었던 이 여정의 끝이 바로 눈앞에 다가 왔다. 서성였다. 내가 그리던 꿈에 다가갈수록 나는 더 이상 꿈속에 머물수 없게 된다. 그럼에도 걷는다.  도착했다. 생각과 달리 눈물이 나지도 벅차 오르지도 않았다. 성당의 광장에 앉아 순례자들을 바라 보았다. 내 옆에 함께 걸어준 이들이 하나 둘 눈에 보인다. 고맙다. 그저 내 걸음을 앞에서 뒤에서 밀어주고 당겨준 이들에게, 한 편으로 쓸쓸함이 다가 오지만 오늘은 축제다. 음악은 흐르고 밤은 깊어 간다. 이제 편안한 숙소에서 잠을 청한다. 달이 뜨고 다시 해가 든다. 함께한 친구들을 또 각자의 여정을 찾아 간다. 나 또한 다시 내가 그리던 세상의 끝으로 다시 걸을음 돌린다.

 이별을 하면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우리는 서로의 여행에 행운과 안녕을 빌어 주었다. 나는 또 다시 혼자가 되었다. 혼자 처음 걷던 그날 보다 시간이 지난 오늘이 더욱 외롭고 낯설게 느껴진다. 또 다시 생각이 잠긴다. 그곳에서 아무것도 볼수 없으면 어떻게 하지. 난 또 무엇을 찾아서 떠나고 헤매야 할까. 그럼에도 걸어가는것 이제 타성이 되어버렸다. 그 순간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산티아고 순례기를 걷던 날 처음 만났던 중년 여성의 순례자였다. 그녀는 나를 항상 걱정해 주었고 챙겨주었다. 낯선 곳에서 엄마의 품을 느끼게 해 주었던 그녀였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달려가 안았고 서로의 여정과 이제는 서로의 곁에 없는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걷다가 헤어지다가를 반복하며 걸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2층 침대에 몸을 맡긴다. 내일은 바다를 만날 생각에 부푼 꿈을 꾸면서 잠이 들었다.

 드디어 오늘은 바다를 만날 수 있는 날이다. 또 하루를 걷는다. 가볍다. 시간이 지난다 무겁다. 시간이 지난다. 냄새가 난다. 바다 냄새! 드디어 왔다. 아침의 해가 떠 오르듯이 점점 바다가 내 눈에 보인다. 멈춘다. 이 순간을 위해 한국에서 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달려 왔던가 바다를 잡으려듯 계속 바다를 보며 걸어 간다. 이제 조금 만 더 걸으면 세상의 끝으로 간다. 더 이상 가고 싶어도 걸을 수 없는 곳까지 걸어간다. 이제 바다는 내곁에서 함께 걸어주는 새로운 동행자가 되었다. 늘 그랬든 시간이 흐르면 도착했다. 한 걸을 한 걸음 이제 3km만 걸으면 세상이 끝이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 곳으로 나를 이끌었던 내 인생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불확실한 내 인생에서 확답을 얻고 싶어 세상의 반대편으로 달려왔던 내가 너무 안쓰러웠다. 설령 그곳에 날 기다리던 것들이 기다리고 있지 않아도 그 덕에 내 가슴은 뛸수 있었다. 그 순간 그녀가 내려 오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도착한 후 돌아 오는 길이었다. 우리는 서로 안았다. 그리고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처음으로 이 길을 걸을 후 처음으로 멈추지 않는 눈물이 흘렀다. 이것이 그녀와의 마지막임을 알았고, 그녀의 포옹은 나에게 '괜찮다.'괜찮다.'라고 말해 주었다. 그렇게 또 걸어갔다. 그럼에도 또 걸어갔다. 드디어 마주했다.

 보이지 않는 수평선을 따라 바다 건너 편을 바라 보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저 어딘가에도 시작이 되는 시점이 기다고 있을것이다. 끝이라 생각하고 걸었던 이 길의 끝과 위에서 배운 것은 결국 끝이란 없다는 것, 또 새로운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그리고 또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그리고 그곳에 선 순간 세상의 모든 것이 소멸하는 조용했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는데도 고용하다. 그곳의 모든 사람들은 한 곳을 주시한다. 노을이 지는 순간 그 순간을 영원하길 바라면서 주시 한다. 그러다 결국 바로 옆에 있는 서로를 쳐다 본다. 이 순간이 아름다운 이유는 서로의 곁에 함께 있어준 누군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는 노을을 보면 문득 떠 올리는 이들이 있기에 지는 노을을 그렇게 놓아주는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곳엔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내가 있었다. 젓가락질 하나 서툴렀던 내가 어느새 어른이 되었고 넘어 졌고 넘어졌고 비틀거렸는데도 결국 일어 섰고 울고 상처나고 투정부리며 살아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면서도 털고 일어나 걸어 온 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 기다려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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