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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윤숙 Apr 23. 2022

부르넬레스키와 마사초, 원근법의 탄생과 회화이론의 정립

합리적인 건축과 수학적인 회화

소싯적에 미술학원에 다녀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석고 소묘를 위해 처음 하는 일은 보조선을 그어 화폭을 커다란 격자로 나누는 것이었다. 그후 한쪽 눈을 감고 4B 연필을 든 손을 길게 뻗어 석고상의 비율을 잰 뒤 대강의 윤곽을 그린다. 그리고 나면 보조선을 지운다. 아무 의심 없이 배우는 방법이지만 생각해 보면 매우 이상한 방법이다. 나중에 지워버릴 보조선을 공들여 긋고, 멀쩡하게 두 눈으로 세상을 보던 사람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갑자기 한쪽 눈을 감는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언제부터 화가들은 이런 방법을 사용해 왔을까?


기록에 의하면 이런 방법을 처음 고안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필리포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 1377-1446)였다. 그는 하나의 소실점을 향해 뻗어있는 가상의 선을 따라 사물이 뒤로 멀어지는 듯한 시각적 효과를 주는 원근법(선원근법, 투시도법)을 고안했다. 이런 방식은 수학적으로 3차원 공간을 2차원 평면에 재현하는 매우 혁신적인 방법이었다.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건축


바사리(Giorgio Vasari, 1511~1574)에 따르면 브루넬레스키의 아버지는 아들이 공증인이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소년은 예술에만 몰두했고, 이를 눈여겨본 아버지는 아들을 금은세공 장인에게 맡겨 교육 받게 하였다.


소년 브루넬레스키 앞에 놓여 있었던 공증인과 예술가라는 두 개의 직업은 르네상스 시대에 새롭게 각광받는 직업이었다. 하나는 법을 공부하여 계약관계를 공고히 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기술을 바탕으로 조각과 회화 등 예술 작품을 만드는 일이다. 이 둘은 우리 눈에는 전혀 달라 보이지만 르네상스 시대엔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합리주의였다.


르네상스 시대를 이끄는 중심엔 은행업과 상업을 기반으로 한 도시의 금융 귀족이 있었다. 그들은 노동관계, 교역, 외교, 정치 등이 모두 타당하고 합리적으로 이루어지길 바랐다. 자본주의의 시작이라 불러도 좋을 만한 시대였다. 생산, 판매, 투자 등 다방면에서 계약이 이루어졌다. 이런 시대를 주도하는 사람들은 계획 없고, 목적 없고, 계산 안 되고, 통제할 수 없는 일체의 것들을 혐오했다. 공간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그림 1. 고딕 성당 구조

르네상스 시대에 고딕은 매우 끔찍한 양식이었다. 고딕성당은 초월적인 신의 공간을 보여주기 위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그 때문에 높이가 51m에 달했던 보베 대성당은 지은 지 12년 만에 천정이 무너져 내렸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신의 공간을 만들다 생긴 문제였다. 천상의 높이를 실현하려는 억지스런 고집 때문에 고안된 부벽과 공중부벽[그림 1]은 건물 외관의 아름다움을 해치는 것이었다.


합리적인 르네상스 시대는 이런 부조화를 용납하지 않았다. 르네상스 시대에 주로 세워진 건축물들은 소규모의 가족 예배당, 고아원, 팔라초(궁전) 등으로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건축물들이었다. 새로운 건축양식이 필요했다.


브루넬레스키는 중세의 기술을 익힌 장인이었는데, 로마 유학을 통해 고대의 건축물들을 실측하고 연구하였다. 그가 설계한 파지 예배당[그림2,3]의 정면은 그리스식 기둥과 로마식 아치가 결합한 형태로 질서정연한 아름다움과 우아한 품격을 보여준다. 엄밀한 수학적 계산을 통해 만들어진 형태였다. 브루넬레스키는 이렇게 고대와 중세의 유산을 종합하여 인간을 위한 유기적이고 합리적인 건축을 창조해냈다.


[그림2] 브루넬레스키, 파지 채플 외관, 정면 https://www.flickr.com [그림 3] 파치 채플 설계




원근법: 회화에 도입된 단 하나의 눈


마사초Masaccio, 1401-1428는 부르넬레스키로부터 원근법을 전수받은 젊은 화가였다. 그가 피렌체의 한 성당에 그린 <성 삼위일체>[그림4]가 공개 되었을 때 당시 사람들은 벽이 뚫린 것 같다며 매우 놀라워 했다. 원근법을 이용하여 사실적인 3차원 환영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가상의 공간이 아니라 매우 구체적인 건물 안에 실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림4] 마사초, <성 삼위일체>, 1425~8년경, 프레스코,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피렌체


마사초는 원근법으로 구현한 공간 안에 육중하고 단단한 형태의 인물을 배치했다. 납골묘 위에는 무릎을 꿇은 봉헌자들이 있고, 그 뒤로 성모와 성 요한이 서 있다. 성모는 한 손을 들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가리키고 있다. 아주 작은 동작이지만 성모의 손짓은 우리가 봐야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명백하게 지시하고 있다. 조토(Giotto di Bondone,1267~1337)에게 배운 것이 분명한 이런 인물상들은 우아하고 섬세한 매력은 없지만 매우 견고하여 마치 만져볼 수 있는 조각상처럼 느껴진다.




원근법, 회화의 이론이 되다


부르넬레스키가 발견하고 마사초가 회화로 구현한 원근법을 이론으로 정립한 사람은 15세기의 화가이자 인문학자였던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1472)였다. 그는 <회화론>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원근법을 자세히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선, 화면에 내가 원하는 크기의 직사각형을 그립니다. 나는 이 직사각형이 내가 그릴 대상을 내다보는 열려진 창문이라고 간주합니다.


[그림1] 원근법을 위한 횡단면, 또는 그물망사. 출처: 알베르티, 김보경 옮김, 회화론, 도서출판 기파랑, 131쪽


알베르티는 창문을 대신할 격자 형태의 그물 망사를 준비해 사물을 비추어 본다면 언제나 변하지 않고 한결같은 형태를 그릴 수 있다고 확언했다. 알베르티의 말대로 선원근법은 꽤 그럴싸하게 3차원을 2차원으로 옮기는 방법을 제시해 주지만 원근법으로 공간을 재현하는 방식은 인간의 시각 경험과 많은 차이가 있다.


첫째, 인간은 평면의 유리창이 아니라 원형의 안구에 맺힌 상을 본다. 또 인간의 눈이 두 개이기 때문에 인간이 보는 이미지는 사각이 아니라 타원에 가까운 형태가 된다. 그런데 선원근법은 한 쪽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사각평면 위에 재현하는 방법이기에 이와 맞지 않았다.


둘째, 선원근법은 움직이지 않는 하나의 눈을 위한 그림이다. 선원근법으로 재현된 그림을 실감나게 보기 위해선 특정한 위치에 서야한다.[그림5] 그 자리를 벗어나면 환영은 깨진다. 즉, 투시도법을 사용한 그림들은 특권적인 하나의 시점만을 허락한다.


셋째, 선원근법은 인간의 심리는 고려하지 않고 모든 공간을 수학적으로 재단했다. 예를 들어 같은 크기의 공간이라도 친밀한 정도에 따라 다른 심리적 크기를 갖게 된다. 헌데 선원근법은 이 모든 것을 수학적으로 통일시켜버렸다.


[그림5] 마사초, <성 삼위일체> 원근법 도해



브루넬레스키라는 천재를 만나 르네상스 시대는 우아한 외관과 조화로운 공간을 가진 합리적인 건축물을 설계하는 방법과 하나의 눈으로 수렴되는 조화로운 세상을 구현하는 원근법을 얻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고딕이 품고 있었던 다양성과 인간세상을 넘어선 세상을 보는 눈을 잃어버렸다. 얻은 것도 귀한 것이지만 잃어버린 것 또한 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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