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윤숙 May 16. 2022

보티첼리, 부조화로 이룩한 조화

 시(詩)가 된 그림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는 자연적인 인물 표현과 원근법에 능한 화가였다. <동방박사의 경배>를 보면 그가 원근법과 다양한 인물 표현에 능숙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티첼리, <동방박사의 경배>, 1475년경, 패널에 템페라,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로렌조 데 메디치는 그림의 왼편(말 옆)에 서 있는데, 당대 최고 권력자 답게 자신감 넘치고 여유로운 자세를 취하고 있다. 반면 그의 가문의 조상들은 세 명의 동방박사가 되어 공손하게 아기 예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화가는 그림의 가장자리에서 주황색 옷을 입고 서서 관객을 당당하게 바라보며 이 아름다운 광경을 자신이 창조했다는 것을 과시하고 있다.


이렇게 자신감 넘치는 화가의 자세는 중세의 장인들과 확연히 달라진 화가의 지위를 보여준다. 보티첼리는 고대의 지혜와 기독교의 정신을 화합하려는 신플라톤 사상을 연구한 인문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고대 철학에 조예가 깊었던 메디치 가문의 총애를 받으며 그에 걸맞는 작품들을 제작했다.



신화를 통해 성서를 말하다


<봄>은 이교도의 신화를 이용해 철학적인 진리를 구체적으로 담아낸 회화였다. 이 그림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가장 단순하게 보면 이 그림은 숲에서 아름다운 봄날을 즐기는 사람들의 여유로운 한 때를 표현한 작품이다.


보티첼리, <봄>, 1478년경, 패널에 템페라,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그렇지만 그리스 신화를 아는 이들에게는 다양한 신들이 보일 것이다. 특히 오비디우스의 『로마의 축제들』을 즐겨 읽은 사람이라면 오른쪽에 있는 제피로스(봄의 서풍)가 클로리스(대지의 정령)에게 다가가서는 순간, 클로리스가 꽃의 여신 플로라로 변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 그림은 자연과 시간의 변화, 아름다운 순환을 시각화한 작품이 된다.


하지만 그림의 해석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보티첼리는 이교도 신들의 그림으로 기독교의 가르침을 담아내고자 했다. 제피로스와 클로리스의 만남은 인간의 사랑을 상징한다. 반면 왼편에 있는 삼미신은 천상의 사랑, 다름 아닌 신의 사랑을 상징한다. 그림 중앙에 위치한 비너스와 큐피드는 인간의 사랑이 아닌 신의 사랑을 보라고 가리키고 있다. 마지막으로 맨 왼편에 서 있는 전령의 신 헤르메스는 지팡이로 구름을 가리키며 인간이 진정으로 바라보아야 할 곳이 천상임을 암시한다. 


이런 해석을 종합하면 이 그림은 한편의 아름다운 시다. 인물들이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닌 단어가 되고 그림 전체가 신의 사랑을 기억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매우 종교적인 메시지를 담은 서사시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의미를 읽지 못할지라도 <봄>은 충분히 보는 즐거움을 주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여신들의 아름다운 손짓과 부드럽게 날리는 옷자락, 꽃이 핀 숲과 풀밭을 사뿐히 밟고 인는 여신들의 하얀 발. 모든 것이 아름답다. 




 부조화를 통해 조화를 이루다


보티첼리는 여인들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데 놀랄만한 재주가 있었고, <비너스의 탄생>으로 그의 실력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바다에서 태어난 미(美)의 여신 비너스는 조개껍질을 타고 해안으로 밀려오고 있다. 왼편에 있는 바람의 신은 여신을 바닷가로 이끌고, 오른편에 있는 계절의 여신은 외투를 들고 미의 여신을 맞이한다.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1484~1486, 패널에 템페라, 우피치, 피렌체


이 그림은 매우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이는 사실 많은 것을 포기하고 얻은 것이었다. 우선 보티첼리는 르네상스의 위대한 발견인 원근법에 연연하지 않았다. 비너스가 도착한 해안가는 수학적으로 계산된 공간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그는 정확한 인체 비례에 따라 인물을 분명하게 묘사하지도 않았다. 보티첼리의 비너스는 목이 지나치게 길어졌고, 왼쪽 어깨와 팔이 축 늘어져있다. 그런데 바로 그 때문에 비너스의 윤곽은 우아하고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고, 꿈에서 본 것처럼 아련한 아름다움을 만들어 냈다. 이는 자연적 비례에 구애받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표현이었다.


보티첼리는 르네상스 예술에 색다른 활력을 불어 넣었다. 그는 자기 시대가 이룬 예술적 성과들을 흡수하면서도 인습에 갇히지 않고 자기만의 개성을 자유롭게 드러냈다. 그것은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형태가 주류가 된 르네상스 시대에는 낯설고도 매혹적인 것이었다.

이전 03화 도나텔로, 두 세계를 넘나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