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환희, 고통과 격정으로 가득한 연극
로렌조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 1598~1680)는 조각가 피에트로 베르니니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조각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미켈란젤로가 다시 태어났다'는 찬사를 받곤 했다. 실제로 베르니니는 건축, 조각, 회화, 무대 디자인, 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재다능한 천재였다는 점에서 미켈란젤로에 비견될만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성격 면에서는 큰 차이를 보였다. 미켈란젤로는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내성적이고 고독한 사람이었다. 반면 베르니니는 사교적이고 외향적이어서 동료 예술가들과 시민들, 귀족과 교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그를 아끼고 존경했으며 가정에서도 좋은 남편이자 다정한 아버지로 인정받았다.
능력과 성격, 그 무엇도 빠지지 않았던 베르니니는 작곡을 하고 희곡을 쓰기도 했다. 이처럼 특이한 이력은 그가 살았던 시대와 관련이 깊다. 17세기는 연극의 전성기였다. 이탈리아에선 수많은 극장이 건축되고 무대 장치와 무대미술 등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당시 무대미술의 목적은 관객이 그것을 실제처럼 느끼도록 그럴듯한 환영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원근법, 명암법, 색채 사용 등 다방면에서 사람들의 눈을 속일 수 있는 새로운 화법이 도입되었고 이렇게 발전한 무대 미술은 역으로 회화와 조각에 영향을 주었다.
베르니니는 뛰어난 솜씨로 실내 장식과 조각을 통해 연극 무대와 같은 환영을 만들어냈다. 그는 마치 연극 연출가처럼 관람객의 마음을 흔들 만한 장면을 세심하게 고르고 인물들을 배치했다. 그로 인해 그의 조각들은 열정과 환희, 고통과 격정의 순간을 보여주는 뛰어난 배우들처럼 관람객을 매료시켜서 환상의 세계로 초대하고 있다.
로마에 있는 보르게세 미술관에 전시된 베르니니의 초기 조각들은 마치 시간에 갇혀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인물들은 멈춰서 있고 관람객은 찰나의 순간을 배회하는 시간여행자가 될 수 있다. 그곳에 놓인 조각들 중에 베르니니가 25살에 완성한 조각상 <다비드>[그림 1]는 바로크 조각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다비드가 골리앗을 향해 돌팔매를 던지는 순간을 표현하고 있는데, 다비드는 마법에 걸린 것처럼 온몸을 비튼 채로 멈춰서 있다. 그로 인해 관람객은 다비드의 동작을 자세히 살피기 위해 조각상 주변을 맴돌게 된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이처럼 조각을 주위를 배회하는 관람자가 없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들은 도나텔로의 조각들처럼 벽감에 갇혀있거나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처럼 정면에서 서 있는 관람자를 의식하고 만들어졌다. 하지만 베르니니의 <다비드>는 정면이 어디인지 특정할 수 없다. 한껏 비틀린 자세의 다비드는 자신이 서 있는 공간 전체를 향해 에너지를 내뿜고 있기 때문이다. <다비드>가 표출하는 힘은 그 표정에서도 느껴진다. 주름 잡힌 미간과 힘주어 다문 입, 가상의 적을 노려보는 다비드의 눈은 순간의 표정을 포착하는 바로크 미술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관람객의 마음은 그의 표정을 보며 그의 감정에 동화되고 그가 마법에서 풀려난 다음을 상상하게 된다.
이렇게 관람객의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이끌어 내는 베르니니의 솜씨는 <아폴론과 다프네>[그림 2]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이 조각상은 요정 다프네가 쫓아오는 아폴론을 피해 달아나다가 나무로 변신하는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짓누르는 듯한 마비감 같은 것이 사지를 사로잡았다. 부드러운 가슴 위로 엷은 나무껍질이 덮였고, 머리카락은 나뭇잎으로, 그녀의 두 팔을 가지로 자랐다. 방금 전까지도 그토록 빠르던 발이 질긴 뿌리들에 붙잡혔고, 얼굴은 우듬지가 차지했다. 빛나는 아름다움만이 남아 있었다. -오비디우스, 천병희 역, <변신이야기>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는 그 장면을 위와 같이 노래했다. 베르니니는 시인이 노래한 대로 다프네가 여인의 모습에서 나무로 변해가는 과정을 매우 신빙성 있게 그려내고 있다. 그와 더불어 이 천재적인 조각가는 놀라운 솜씨로 대리석으로 표현할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파고든다. 다프네의 손끝에서 돋아난 나뭇잎과 바람에 날리는 아폴론의 얇은 옷자락은 끌과 정으로 조각된 돌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얇고 하늘거린다.
바로크 시대에 끓어올랐던 연극에 대한 열정은 성당을 장식하는 종교미술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성녀 테레사의 법열>[그림 3]은 성녀 테레사의 자서전에 등장하는 한 일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천사가 내 가슴을 창으로 깊숙이 찔러 살 조각이 묻어 나오는 듯했다. 천사는 신의 사랑으로 불타는 나를 내버려 두고 가버렸다. 너무 아파서 저절로 신음 소리가 났지만 지극한 평온함이 나를 감싸, 나는 그 상태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았다.”
성녀가 고백하고 있는 종교적 무아경은 살점이 뜯기는 고통과 사랑의 불꽃이 교차되고, 신음 소리와 머물고 싶은 평온함이 공존하는 순간이었다. 베르니니는 이 역설적인 상황을 한 편의 연극처럼 연출했다. 성녀는 구름 위에 떠 있으나 손과 발은 아래로 축 늘어져 있다. 장난스러운 미소를 띤 천사와 환희와 고통으로 신음하는 성녀의 표정이 명확한 대조를 이루고, 천사의 얇고 가벼운 옷과 성녀의 두껍고 무거운 옷이 대비를 이룬다. 화가는 기록과 달리 천사의 손에 창이 아닌 작은 화살을 쥐어주었다. 이로 인해 천사의 손모양과 움직임이 한결 가볍고 우아해질 수 있었다. 성녀는 화살이 이미 몸에서 빠져나갔지만 아직도 신의 사랑으로 인한 환희와 고통을 느끼고 있다.
이 작품은 조각이자 회화이고 동시에 한 편의 연극이다. 조각에 가미된 색과 질감은 이 작품을 회화처럼 보이게 한다. 성녀를 받치고 있는 구름은 회색 대리석으로 거칠게 묘사되었고, 화살과 쏟아지는 빛은 가느다란 금빛 금속으로 표현되었다. 빛이 시작되는 곳에는 보이지 않는 창을 만들어 실제 태양 빛이 조각 위로 쏟아져 내려오게 만들었다. 이 빛은 성녀를 비추는 신의 빛이자 조각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배경이다. 이 같은 배경과 액자처럼 조각을 둘러싼 건축구조물은 이 작품을 회화처럼 보이게 한다.
한편 움푹 들어간 공간은 연극 무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곳에 쏟아지는 빛은 주인공을 비추는 조명처럼 작용한다. 더욱 재밌는 것은 성녀와 천사가 놓인 제단을 무대처럼 바라보는 관객들이다. [그림 4] 이들은 조각상을 주문한 코르나로(cornaro) 가문의 사람들로 성녀에 대한 책을 읽거나 토론을 하면서 객석에 앉아 있다. 인물들 뒤로 보이는 기둥이 늘어선 실내 풍경은 그것을 진짜 극장 박스석처럼 보이게 한다. 그런데 예배당에 들어선 관람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 관람석도 또한 하나의 무대가 되고 거기에 앉아있는 인물들도 관객의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가 된다.
변전하는 세상 속에 고정된 것은 없다.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것을 추구하는 고전주의의 시대는 저물었다. 바로크 시대는 삶의 역동성과 끝없는 변화를 인식하게 된 시대이다. 그와 더불어 인간에게 덧씌워진 이상화된 관념도 날아가 버렸다. 본래 귀하고 천한 사람이 따로 있지 않고 인간은 각기 자신이 주어진 역할을 하며 살아갈 뿐이다. 이런 세계관이 퍼져나가는 시대에 예술가들은 환각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미술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베르니니는 그런 시대에 건축·조각·회화 모두를 종합한 연극과 같은 환영을 만들어냈다. “온 세상은 하나의 무대이고, 모든 사람들은 한낱 배우일 뿐”인 세상에서 그는 그 무대와 배우들을 아름답게 만드는 탁월한 연출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