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yKwon May 25. 2021

엄마가 되지 못해 슬픈 당신에게


#_


바람이 부는 대로 몸을 맡기듯 살고 싶었다. 이러면 이런대로 저러면 저런 대로 살아도 그만이라고. 습자지처럼 얇은 귀와 심지를 가진 덕에 세상의 모든 삶이 멋있게만 보였다. 열심히 일하고 아낀 돈으로 이른 은퇴를 꿈꾸는 파이어 족, 현재의 행복을 누리고 즐길 줄 아는 욜로 족, 아이를 갖지 않는 대신 자신의 삶에 더 충실하길 원하는 딩크 족, 혹은 삼대가 함께 살며 늘 시끌벅적한 대가족까지. 하지만 마트의 냉동고에서 아이스크림을 고르듯 내 입맛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게 인생이었다면 나는 분명 엄마가 되었을 것이다. 아이와 똑같은 세제 냄새가 풍기는 옷을 입고 저녁 식탁에 나란히 앉아 갓 구운 생선을 나눠 먹는 그런 엄마가. 어쨌든 인생은 마음처럼 되는 게 아니니, 나는 어떤 식으로 살든 그런대로 괜찮을 줄 알았다. 세상의 모든 삶은 저마다의 매력이 있으니까.


엄마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 내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처음엔 알지 못했다. 그 감정을 깨달은 것은 어느 봄날이었다. 친구 집 뒷마당에 앉아 일광욕을 즐기는데 파란 하늘 아래 드리운 빨랫줄이 시야에 들어왔다. 적당한 햇살과 바람이 친구의 아이들 옷을 바삭하게 말리는 중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빨래를 하는지 모른다며 툴툴대는 친구와 아이들을 안은 채 내 삶의 무게라며 싫지만은 않은 소리를 내뱉는 친구의 신랑, 그들 위로 펼쳐진 형형색색의 빨래들. 순간 왈칵 눈물이 났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슬픔이 당황스러웠다. 나는 자꾸만 빨개지려는 눈을 내리깔고 빨갛고 노란 아이들의 옷 대신 녹색의 잔디를 노려봤다. 어쩌면 우리 부부는 경험할 수 없을 사소한 일상들이 세상 어떤 영화보다도 극적으로 느껴졌다. 대체 그깟 빨래가 뭔데. 


그날부터 우울감은 가랑비처럼 내 마음에 내려앉았다. 젖은 옷을 입었을 때의 꿉꿉함처럼 나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밖에선 웃고 혼자가 되면 울었다. 사람들의 삶은 시간과 함께 나아가는데 내 삶은 영원히 멈춘 것만 같았다. 내게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다를 것이 없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조금 기운이 났을 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언젠가 태어날지 모를 아기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으로 내가 겪은 감정들을 기록했다. 그 사이 우리는 임신을 준비하던 신혼 부부에서 난임 부부, 그리고 비자발적 딩크 부부가 되었다. 편지의 주인은 태어나지 않았지만 이렇게나마 쓸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아니면 내 우울감은 그 감정들을 먹고 무럭무럭 자랐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 좀 괜찮냐고 묻는다면 내 답은 매 순간 다르다. 아이가 없는 나는 때때로 슬프고 앞으로도 종종 슬플지 모른다. 하지만 웃는 날이 슬픈 날보다 많아졌다. 


세상엔 나와 같은 당신이 많다는 것을 안다. 엄마가 되고 싶어서, 엄마가 되지 못해서 슬픈 당신. 나는 우리가 스스로를 다독일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약해진 마음의 감정들을 가만히 두드리고 달래주어 더 이상 슬프지 않을 수 있도록. 엄마가 되지 못했지만 행복한 당신이 될 때까지. 





이전 09화 만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