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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yKwon May 24. 2021

만남

우리는 이렇게 돌고 돌아왔지만


#_


소라 품어줄 수 있으세요?


소라. 작은 얼굴에 커다란 귀, 옅은 갈색 밑으로 흰색 털이 적절히 섞인 아이. 소라는 몇 개월 전 한국의 동물 보호단체 웹페이지를 통해 보았던 작은 개였어. 우리는 아동 입양 상담에 한참 앞서 캐나다 내의 유기견 입양을 알아봤지만 일 년이 넘도록 아무런 진전이 없던 터였단다. 개를 키워본 경험도, 너른 마당도 없는 우리보다 좋은 조건을 가진 지원자들이 많았기 때문이지. 한국의 동물 보호소에는 새로운 가족을 기다리는 유기견들이 넘쳐났지만 코비드로 인한 이동 제한에 그 만남 역시 쉽게 성사되지 않고 있었어. 입양 인터뷰를 마치고도 기약 없는 기다림에 우리는 희망보다 포기라는 단어가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단다. 생명을 품는다는 게 어떤 기분일까. 우리의 둥지도 채워질 날이 있을까.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때, 그렇게 생각지 못했던 연락을 받았던 거야.


밴쿠버로 출국하는 자원봉사자 분이 계세요. 소형견만 기내 동행이 가능해서 소라가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네! 네! 메시지를 보내며 휴대폰에 대고 몇 번이나 소리를 질렀다. 대단한 건 없어도 포근한 잠자리와 배 부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 그리고 넘치는 사랑을 줄게. 네가 어디에 있더라도 꼭 다시 돌아가야 할 집, 평생 헤어지지 않을 가족이 되어줄게. 소라를 만날 때까지 이주일. 우리는 강아지용품을 사고 이런저런 공부를 하며 분주한 시간을 보냈단다. 처음이라 서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거든.



너무나 기다렸던

만남.



그리고 소라가 왔다. 열 시간의 비행에 더해 검역소에서의 대기 시간을 잘 견뎌준 아이였지만 두 눈에는 경계심이 가득했어. 집에 도착해서도 이동 가방 밖으로 나올 생각을 않더구나. 무서웠겠지. 누군가에게 버림받고 거리를 집 삼아 지내온 아이. 가족이 없단 이유로 안락사 직전까지 갔다가 구조된 아이. 어느 날 갑자기 멀고도 낯선 환경에 뚝 떨어진 아이. 어떻게 무섭지가 않겠니. 소라는 구조 당시 사진과 비교하면 전혀 다른 개라고 해도 믿을 만큼 단정한 모습이었어. 짧고 고르게 정리된 털, 쫑긋한 귀, 코 옆으로 몇 가닥씩 늘어진 수염. 적당하게 살이 오른 몸집을 보니 특이사항에 '뼈가 드러나도록 마름'이라고 적혀 있던 구조 당시 사진이 떠올라 목울대 끝이 따끔한 기분이 들더라.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이해해 줄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너는 내가 필요하고 나는 네가 필요한데 우리는 서로를 만날 방법을 몰라 이렇게 돌고 돌아왔구나, 하는 생각. 그날 밤 우리는 거실에 이불을 깔고 나란히 누웠다. 겨우 이동 가방 밖으로 나온 소라가 거실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웅크리고 있었기 때문이지. 얼마나 지났을까. 딱딱한 바닥에 누워 설핏 잠이 든 순간 품 안에 따뜻한 무언가가 느껴지는 거야. 눈을 떠보니 내 배에 등을 맞댄 채 잠이 든 소라가 보였어. 나보다 조금 빠른 박자로 들숨과 날숨을 쉬고 있는 작은 생명체. 다리를 감추고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있던 아이를 보고 나는 조그만 크로와상을 떠올렸다. 내 마음을 풍요롭게 해 줄 아이. 나의 작은 크로와상.


다행히도 소라는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해 나갔어. 산책을 할 때면 떨어지는 이파리만 보아도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치기 일쑤였지만, 그와 나 사이에서는 꼬리를 잔뜩 말아 올리곤 신이 나서 뛰어다녔지. 그러면 우리는 더 신이 나서 아이를 불렀어. 소다! 이리 와, 소다! 여기 여기! 소라는 탄산수처럼 톡톡 쏘는 밝음을 따라 소다라는 이름으로 개명되었어. Soda, my little croissant. 내가 아닌 생명을 책임지고 돌본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지 못했지. 나는 이제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소다와 아침 산책을 하고 출근 준비를 해. 늦은 오후에는 그와 소다, 우리 셋이 함께 동네를 한 바퀴 어슬렁거리고는 저녁을 먹지. 입맛 까다로운 소다를 위해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고, 부드러운 털들이 봄날의 꽃가루처럼 내려앉는 통에 하루에도 몇 번씩 청소기를 꺼내 들어. 잠들기 전에는 양치를 싫어하는 아이와 한바탕 씨름을 벌이고는 휴, 하루가 왜 이리도 짧아, 하며 한숨을 쉬지. 그러면 소다는 침대에 누워 가만히 나를 쳐다본단다. 커다란 귀를 한껏 펼치고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로. 나는 알지. 우리는 서로가 있어서 훨씬 더 행복하다는 것을.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힘들지만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말이야. 나는 소다의 커다란 귀에 대고 말한다. 소다야, 고마워. 엄마한테 와줘서 고마워.



나는 너를 영영 만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지.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 슬픈 사람이 나라는 착각에도 빠졌어. 엄마가 되지 못해서 엄마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부럽다가 미워지기도 했다. 나는 점점 더 작고 못난 사람이 되었지. 그래서 너에게 편지를 썼단다. 너를 만나려 노력했던 시간 속의 나를 기록하고 치유하면서. 소다를 만나고 나는 수 없이 많은 너의 존재를 배웠어. 너는 굶주린 채 거리를 돌아다니는 또 다른 소다일 수도, 피치 못할 사정으로 부모의 손을 떠난 아기일 수도, 잠시 안정적인 보호가 필요한 위탁 가정 아이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와 나를 반반 닮은 밤갈색 머리와 눈동자를 가진 너는 없어도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너는 참으로 많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우선 내 마음을 돌보기로 했다. 나를 잘 가꾸고 키워서 언젠가에는 또 다른 너를, 또 다른 소다를 돌봐줄 수 있는 내가 되어야지. 그렇게 다짐하니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한 너는 어디에나 있더라.


그러니까 우리가 만날 때까지 잘 지내렴.

엄마가 꼭 찾아갈게.






** Cover Photo by Kate Krivanec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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