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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큰철 Mar 15. 2019

5) 지하철의 취향

간당간당할 땐 지하철

“나 출발했음. 이따가 보자”


 늦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약속 장소는 명동, 머리를 말리며 앱으로 버스가 어디쯤 왔는지 확인한다. 서둘러서 나가면 버스시간에 맞출 수 있다. 스킨과 크림을 대충 찍어 바르고 가까스로 버스를 타는 데 성공한다. 어떻게 갈지 고민을 해본다. 이대로 가다가 왕십리에서 버스로 갈아타는 방법이 있고 지하철 2호선으로 갈아타고 DDP에서 4호선으로 한 번 더 환승하는 방법이 있다. 지하철 환승은 수많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해야 되고 긴 통로를 걸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는 반면 버스는 같은 정류장에서 다른 버스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래도 여기선 지하철을 선택해야 한다.


 시간적 여유가 많았다면 버스가 여러모로 이로운 선택이다. 하지만 퇴근길 도로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 도착시간을 예측하기 힘들다. 복불복의 느낌이랄까? 버스는 뻥뻥 뚫린 도로를 칼 신호 받아가며 슈퍼세이브를 만들기도 하지만 약속 장소를 한 블록 앞에 두고 하염없이 속을 태우기도 한다. 기다리는 사람을 위해서라도 도착 예정시간을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는 지하철이 좋다.


 왕십리 지하철역은 타는 사람들이 많다. 다행히 환승역이라 내리는 사람도 많다. 요즘은 앱으로 환승통로와 가까운 최적경로를 알 수 있지만, 몇십 초 빨리 가자고 혼잡해지긴 싫다. 적당히 걸어 사람이 적은 곳에서 기다린다. 지하철 문이 열리면 입구 쪽 사람들을 비집고 긴 좌석 쪽으로 들어간다. 예전에는 아늑한 출입구 옆 손잡이 쪽을 선호했지만 출입구 쪽은 사람이 버티고 서있을 때가 많아 더 붐빈다. 오히려 중앙이 사람들이 적어서 편안하다. 그리고 나는 중앙 쪽 좌석에 앉는 것을 좋아한다.


 평소엔 강남과 신촌, 왕십리에 약속을 많이 잡고 2호선을 자주 탄다. 2호선은 서울을 한 바퀴 돌면서 한강을 두 번을 건넌다. 구의와 신천을 잇는 잠실철교와 당산과 합정을 잇는 당산철교를 건널 땐 지상으로 나온다. 좌석 뒤 창으로 보이는 한강의 모습은 낮/저녁 상관없이 멋있다. 그래도 나는 햇볕이 반짝거리는 낮의 한강이 더 좋다. 한양대역과 뚝섬역 사이 중랑천을 건너는 구간도 짧지만 사랑스럽다.

성동교에서 바라보는 중랑천의 모습


 집에 돌아갈 때도 지하철이 좋다. 고작 몇 분이지만 지하철역까지 같이 걸어가며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눈다. 서로 반대방향인 친구들과 개찰구나 플랫폼에서 손을 흔들며 헤어지는 풍경은 지하철의 시그니쳐나 다름없다. 늦은 밤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은 사람들의 표정에는 많은 이야기가 서려있다. 또 버스를 한번 갈아 타야한다. 나도 역세권에 살고 싶다. 하지만 역세권에 살려면 돈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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