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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lly Jan 12. 2020

입양 준비

괜찮아, 가족이야!

아침. 평소보다 내려간 기온을 체크하고 따뜻하게 옷을 챙겨 입었다. 혹시 낯선 장소가 춥지는 않을까, 하루 종일 오들오들 떨지는 않을까 싶어 선택한 옷은 두꺼운 폴라티에 검은 청바지 그리고 패딩이다. 사실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옷차림이지만 오늘은 왠지 더 신경이 쓰였다.


약속 시간에 늦는 걸 싫어하는 나는 마을버스 도착 앱을 확인하고 정류장까지 냅다 뛰었다. 우리 집이 6층인데, 엘리베이터가 잡히지 않자,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뒤에서 따라 오는 남편이 조심하라며 뭐라 뭐라 얘기하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무사히 버스에 올랐다. 이 버스를 놓치면 15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달리기가 옳았다. 출근시간에 배차가 15-20분이라니. 교통 소외지역이 바로 우리 동네구나.


그리고 9시 딱 맞춰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오늘은 예비양부모 교육이 있는 날이다. 입양을 원하는 부모들은 교육을 통해 법적인 이수시간을 채워야 한다.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루 종일 빡빡한 강의를 들어야 하는데 나는 오늘로 잡혔다.


내가 입양을 진행하는 기관은 서울 번화가에 위치해 있다. 앞에서 환영 인사를 하는 담당자는 오늘 교육에 타기관에서 입양 진행하는 사람,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도 있다고 알려줬다. 바로 오늘이 올해 들어 처음 진행되는 입양교육이었던 거다. 얼마나 마음이 급하고 빨리 진행되길 원했으면 이른 아침에 지방에서 올라왔을까, 그 마음이 어렴풋이 짐작됐다.


강의는 오전에 두 강의, 오후에 사례발표를 포함한 세 강의로 진행됐다. 입양의 절차, 아동 발달에 따른 양육, 입양 말하기 그리고 실제 입양부모와 입양인의 사례발표까지 긴 시간에 걸친 강의였다.


모든 강의가 모든 내용이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기관에 25년 근속했다는 직원은 ‘시설아동=버려진 아동’이라는 논리를 펼치며 자기들이 보호하는 아동은 그렇지 않다며 이상한 논리를 펼치기도 했고,  미혼모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도 ‘어린 나이에 다들 술과 담배를 하고’ 등등 가볍게 일반화시키기 까지 했다.


“여보, 저 사람 왜 저렇게 말하지? 시설 아동은 문제가 있고 입양 가면 안 된다는 것처럼 들리잖아.”


물론, 큰 맥락에서 보면 기관에서 오래 일 한 사람으로서 기관을 대변하고 사람들에게 믿음을 갖게 하는 건 당연한 일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꺼내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의심하게 만드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다른 강의들은 대체로 좋았다. 특히 입양인 사례발표가 가장 유쾌했다. 올해 스무 살이 됐다는 여학생은 아주 발랄했고 딱 그 나이만큼 예뻤다. 내 아이가 저렇게만 자라준다면 싶을 정도의 구김 없는 친구였다.


“모든 입양 친구들이 매일매일 난 왜 입양됐을까 생각하며 살지 않아요. 우리 엄청 바쁘거든요. 친구들이랑 놀아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고.. 그냥 우리 인생을 살기 바빠요.”

“꼭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입양 사실을 말해주세요. 저는 6살 경에 알았는데 나중에 중고등학생 때 알았으면 엄마한테 엄청 배신감 느꼈을 거예요.”


작년 9월. 입양기관에 첫 방문 상담을 잡고 딱 5개월 만에 다시 기관을 찾았다. 아직 내 케이스가 언제 진행될지 잘 모르겠지만, 그때와 다르게 지금은 이 일을 ‘시작’ 했다는 생각이 든다.


중간중간에 많은 고민이 있었고 남편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교회 식구들에게 진행 상황을 알리고 기도를 부탁했고 친한 친구에게 넌지시 말을 하기도 했다. “나 서류 넣었어.”

그리고 한참을 기다렸지만 기관에서는 아무 연락도 없었다. 그러다 지난 연말, 기다리다 못해 먼저 전화를 넣었다.


“아직도 많이 기다려야 하나요?”


돌아오는 대답은 ‘그렇다’였다.

나는 내 마음이 한순간 싸늘하게 식을까 겁이 났다. 이러다 그냥 뒤로 내빼버릴 것만도 같았다. 모든 게 내 마음 내키는 대로, 내가 준비되는 대로였다. 남편은 그런 나를 늘 아무런 재촉 없이 기다려줬다.


“저희, 남아로 바꿀게요.”


큰 결정이었다. 처음 신청할 때 여아로 결정했고 일 년 넘게 기다리라는 말을 들었다. 입양 부모들이 모두 여아를 원하는데, 늘 남아의 비율이 조금씩 더 많아 여아 매칭까지의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거다.


대세를 따르는 대열에서 이탈을 결정하기가 쉬웠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나는 내 마음이 어디론가 도망가 버리기 전에 이 일을 끝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갑자기 서류 진행이 시작됐고 오늘 교육까지 오게 됐다. 교육장을 가득 메운 예비부모들. 저들은 각자 어떤 사정으로 입양을 결정했을까.


절대적 확신이 있기는 할까.


나는 종종 흔들리고, 마음을 쓸어내리며 주저앉을 테지만.... 괜찮아, 여기 이렇게 많은 동지들이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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