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
병원에 있는 그이에게 몇 가지 물건을 가지고 가려고 챙기는 중인데, 전화가 왔다.
"여보! 나 얼마 못 살아?"
"무슨 말이야?"
"여기 의사가 나보고 몇 개월 남은지 알고 계세요?라고 물어봐."
"뭐라고? 내가 지금 병원으로 갈게. 조금만 기다려요."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후두엽 쪽 암세포가 새로 생겨난 것만 알고 있었지. 그게 죽음과 연결될 거라고
우리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다만 치료가 더디 되고, 더 길어지는 건가 보다 생각하고 있었다.
서울대 주치의 선생님도 우리에게 하지 않은 말은 요양병원 선생님이 왜 그이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
갑자기 분노가 솟구쳤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선생님을 찾아가 남편에게 한 말이 무슨 뜻인지 물었다.
"어? 두 분이 알고 계신 줄 알았어요. 부위도 그렇고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아서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고, 나는 그저 눈물만 줄줄 날 뿐,
현실에 대한 저항과 분노, 그리고 갑작스러운 말에 두려움과 공포로 다가오니
그 모든 것이 의사 선생님에 대한 원망으로 가버렸다.
"그렇다고 어떻게 환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세요? 준비도 아직 안된 사람에게?
보호자인 저에게 먼저 물어보고 말씀하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암환자가 많은 이곳에서는 수시로 죽음이 오가는 곳이긴 하니까, 그들 입장에서는 남은 시간을
잘 정리하면 좋겠다는 안타까운 마음에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나중에야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가슴으로 오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방으로 와서 그를 꼭 껴안고 토닥였다.
"무서웠지?"
"내가 모르고 있는 것이 있어? 나 치료가 안돼? 얼마나 살 수 있대?"
"의사가 어떻게 다 알아? 하나님이 아시지!"
겁도 많고, 걱정도 많은 그이가 말이 없다.
"여보.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된대?
담당교수가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된다고 해? "
"의사가 신이 아닌데 어찌 알겠어? 여보, 불안하고 두려워?"
" 아니, 죽음이 무섭거나 두렵지는 않아.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면 정리를 좀 해야 하니까."
" 응. 여보. 우리에게 정해진 한정된 시간에 대한 태도를 여보가 결정할 수 있어. 소중하게 오늘 처음 본 듯, 다시 못 볼 듯 그렇게 사랑하며 살자."
"옷장 속에 옷을 보니 아끼느라 안 입던 옷을 보니 내가 한심하고, 옷도 아까워서 나중에 재경이 신랑 줄까 했는데 생각해 보니 사위는 나보다 훨씬 키도 크고 체격 좋을 테니 내 옷도 필요 없겠다."
" 응. 당신이 많이 입어. 아깝지 않게."
"나는 안 우는데 당신이 왜 울어?"
"그러게. 안 울고 싶은데. 내가 울보라 그래."
"여보, 꽃 보고 아름답다고 하는 이유는 생명이 유한함을 아니까 그렇대. 우리도 어차피 삶의 기간이 정해져 있는데. 사람마다 다를 뿐이야. 우리 죽음을 생각하지 말고, 남은 시간 잘 쓰자.. 치료도 잘 받고, 하고 싶은 것도 하고."
말이 더 없어진 그이에게 노트에 하고 싶은 말 많이 적어보라고 했다.
(그이는 착실나라 꼼꼼대왕이다.
자기가 깜박했다는 말은 하기 싫다는 뜻이라고 나에게 한 적이 있다.
모든 수첩에 일정과, 해야 할 일들이 언제나 가지런히 적혀 있었다.
내가 지나가면서 한 부탁들은 어떻게 저리 잘 기억하나 보면 수첩에 적혀 있었다.)
ALP(살림마을)에서 하는 죽음에 관련 프로그램이 있어, 아침햇살 스승님이 한 번 들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해 주신 덕에. 그이와 둘이서 줌으로 나란히 참여했다.
내가 살아 있는 날이 한 달이라면, 6개월이라면, 1년이라면,
남아있는 시간들이 이리도 애틋하고 소중함을 알게 된다.
그리고 하고 싶었던 것들은 그렇게나 크고 원대한 꿈들이 아니라 그저 일상을 누리는 거였다.
그가 하고 싶은 것은 참 소박했다.
-아내와 제주도 여행 가기.
-친구들 만나서 밥 사주기
-가족사진 찍기.
-동생들 초대해서 밥 먹기.
-회사에 한 번 가보기.
시간이 없다고 미루지 말고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모르니
더 많이 사랑하고 살자고 둘이서 이야기했다.
그이는 글씨도 참 잘 쓰는 편이었는데. 아픈 뒤로 글씨도 잘 써지지 않는다고 속상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