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솔은정 Jul 14. 2024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통

2021.11.


방사선 치료가 끝나 3주간의 요양병원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병원생활은 너무나 싫다는 그이 말에 집에 있기로 했다.

금요일 저녁 수업 중에

그이 소리가 들려 놀라서 나가보니

거실 소파에 앉아 꺼이꺼이 큰소리로 울고 있었다.  

샤워하고 나와 삼십 분을 씨름해도  옷을 입을 수가 없어서

민머리를 붙잡고 우는 모습에 내 마음도 한없이 가라앉았다.

옷을 다 입혀주고

“여보. 실컷 울어. 이 상황 오기까지 꾹꾹 참았는데 울어야지. 많이 울어도 돼. “

“내가 너무 바보 멍청이 같지?"

“나 혼자서 해보려고 그런 거지!  계속 의지하고 살면 안 되니까 그랬지!"

뭐라고 할 말이 없어 둘이 껴안고 울었다.  


 

오늘 아침

방에서 카메라 가방을 붙잡고 있던 그이가 조용히 울고 있었다.

“카메라 보고 무슨 생각해?”

“이거 살 때 진짜 설레고 기뻤어. 이 카메라는 팔지 말아 줘.

나중에 재경이나 윤서 신랑 오면 카메라 줘.” 

“알겠어.  여보 아끼던 그 마음까지 다 전달할게. 그래도 울 여보 진짜 씩씩하고 용기 있네.  

 정리하고 있는 거야?”

“응. “ 

“그래.  하나씩 정리하고, 애들에게  남겨줄 편지도 시간 날 때 써봐요. 미래 손주들에게도, 

미래 사윗감에게도. “ 

아침에 둘이서 또 조금 울고 

오후에는 금산사에 산책을 다녀왔다.  


 죽음이 가까이 있음을 알게 되면

살고 사랑하고 이별하는 법을 더 잘 배우게 된다.



오늘은 내 몸이 너무 피곤한 탓인지 그이 간병하는 데 힘이 들고 짜증이 났다.  

밥 먹자고 하면 일단 안 먹는다고 하던 그가

의사 선생님이 먹어야 한다고 강조하니 저녁은 조금 먹었다.

목욕 다 시키고 나서 옷 다 갈아입히고 저녁 수업 준비하려고 하는데

재경이가 소리친다

“엄마, 아빠 옷 또 갈아입어요.” 

말없이 계속 옷을 갈아입는 그에게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소변보는데 조금 흘린 거 같다고 옷을 갈아입는 중이란다.

원래도 옷에 조금만 뭐가 묻어도 엄청 싫어하는데,

그이 걱정은 자기가 대소변 못 가리게 되는 일이라고 했다.

옷을 보니 전혀 젖어 있지 않은데도 강박처럼

늘 확인하고 또 확인해서 물이 한 방울만 묻어도 옷을 갈아입는다.  

화장실에 가보니 물바다가 되어 있다.

수도를 틀어 변기 앞 물청소를 하려고 했나 보다.  

“여보, 좀 불편하면 나를 부르라고 했잖아요.  혼자 하려고 하니 내가 더 일이 많아져서 정말 몸도 마음도 힘들다고!!” 

같은 패턴으로 몇 번 뭐라고 하다가

이 남자는 변하지도 않을 거고 결국 더 고집이 강해질 걸 알고 있는 내가 그냥 수용하고 내버려 두면 될 텐데 

오늘 저녁에는 정말 울고 싶었다.

내가 아픈 건 정말 하나도 배려가 없었던 이 남자는

마지막까지도 자기 자존심과 자기 체면만 생각하다 가려고 하는구나 싶은 마음이 올라와서

미운 마음이 막 샘솟았다가 그런 내 모습에 아차 싶었다. 


아기가 되어가는 그에게 내가 듣고 싶은 말은

“도와줘서 고마워. 사랑해.”인데

그는 도움 받는 게 싫다고 한다.  


얄밉고, 속상하고, 몸은 힘들고, 마음은 지쳐가는데

그이 의자 옆 탁자에 메모지가 있다.

" 식구들에게 짐이 되어가는 내가 너무나 싫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삐뚤빼뚤 쓴 메모를 보고  방에 와서 울고 말았다.


이 시간들이 유한함을 알면서도

쳇바퀴 돌고 있는 것처럼 끝나지만 않을 것 같은 그 두려운 고통에 빠져 있다가

그의 메모를 보고 정신이 버쩍 든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랑하는 것, 그리고 지금 해야 할 일을 찾아 하는 것,

그이가 하고 싶은 일 중 하나인 제주도 가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이전 21화 병실 동기-함께 입원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