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에 처음 아빠가 되었던 시기가 생각납니다
지금은 조금은 무덤덤 해졌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저와 아내에게 완전히 껌딱지가 되어 살아가던 어린 시절이 지나고, 이제 반항기 가득한 중학생의 시기를 겪고 있는 지금 어린아이 시절의 아빠로서의 역할과는 상당히 달라진 관계가 된 것 같습니다.
지금은 밀접하게 그 녀석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보면 질색할 시기이기에 어쩌면 더 가까워지는 것보다는 스스로 알아서 하기를 기다려 줘야 하는 시간인 것 같기도 합니다. 누군가 그랬죠. 가장 훌륭한 양육의 비결은 스스로 조금씩 자녀의 삶에서 물러나는 거라고.
그들의 인생 스토리에서 조금씩 후퇴해서 그들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서구권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저와 한국에서만 교육받은 아내와는 상당히 생각하는 것이 다릅니다.
자녀의 성장 방향에 대한 논란이 가장 큰 차이죠. 교육관에 대한 차이. 결국 아이가 어떻게 좋아하는 것을 찾는가에 대한 궁금증 보단 일단 학원을 통해 점수를 획득해야 한다는 주장. 이런 부분은 사실 결혼 전에는 절대 궁금하지도 않고 알 수도 없는 영역입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우리 부모들은 자녀의 삶에서 빠져 줘야 합니다. 취업을 해서도 출근할 옷을 골라주는 그런 부모가 되고 싶지는 절대 않습니다. 그 녀석들도 다 독립해서 잘 살아갈 겁니다. 그러라고 지금 열심히 학교 다니는 거 아니겠어요?
처음 자녀를 가지게 되면 육아용품을 산더미처럼 사게 됩니다. 미국 출장 갈 때마다 거의 이민 가방 한 개씩 아이 옷을 사서 들어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계절별, 아이가 크면서 나이별로 사야 할 것들이 왜 그렇게나 많던지. 아내가 목록을 손에 꼬옥 쥐여줍니다.
아들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조금 막막했습니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아들이 본격적으로 내 아들이 된 시점은 아무래도 그 녀석이 ‘아빠’라고 불러 줬을 때인 것 같습니다. 그 뒤로는 가장이라는 책임감의 무게가 훨씬 더 무거워졌죠. 직장보다 가정을 더 중요시하게 된 시점도 그때쯤인 것 같습니다.
지금은 밥 차려주고, 간식 내주고. 운동하는 걸 옆에서 감탄해 주고. 점수 잘 나오면 폭풍 칭찬해 주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칭찬해 줍니다. 언젠가 자기만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응원해 줍니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서 서서히 퇴장해 나가겠지요. 언젠가 아내도 이걸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된들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오늘의 질문: 사랑하는 가족을 어떻게 응원해 주고 계신가요?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그러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