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기대 떨구며 기다린다
붉고 노랗게 단풍이 물든다
마른 잎을 떨구면서도
나무는 언제나 내년을 기다린다
"가고 싶은 곳 있어요?" 물으면
어머니는 늘 같다
"없어"
"드시고 싶은 것 있나요?" 물으면
아버지는 늘 같다
"없어"
한 번쯤은 저 산도, 저 바다도
가보고 싶은 마음이었겠지
자식들 불편할까 발이 묶여
“없어”라며 접어두셨다
나는 알지 못한 채
내일로 미루던 사이
함께하지 못한 시간만큼
당신의 주름은 깊어만 갔다
자식들 물음에
늘 "싫다", "없다"던 그 말의 무게
비로소 조금 느낄 때쯤
멀리 가고 싶어도
마음껏 드시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앙상한 몸 되셨다
더는 미룰 시간이 없다
“바람이라도 쐬러 갈까요?” 물으니,
어머니는 “좋지” 하시고
“칼국수 먹고 바다 보고 올까요?” 물으니,
아버지도 “좋지” 하신다
바보같이 알지 못했다
평생 기다리고 계셨다는 걸
언제든 함께 하고 싶었다는 걸
그 "없어"는 거절이 아닌
나의 준비를 기다린
당신의 조용한 인내였음을
마른 기대 떨구며 언제나 기다리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