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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없어"라는 기다림

마른 기대 떨구며 기다린다

by 케빈은마흔여덟

붉고 노랗게 단풍이 물든다

마른 잎을 떨구면서도

나무는 언제나 내년을 기다린다


"가고 싶은 곳 있어요?" 물으면

어머니는 늘 같다

"없어"


"드시고 싶은 것 있나요?" 물으면

아버지는 늘 같다

"없어"


한 번쯤은 저 산도, 저 바다도

가보고 싶은 마음이었겠지


자식들 불편할까 발이 묶여

“없어”라며 접어두셨다


나는 알지 못한 채

내일로 미루던 사이

함께하지 못한 시간만큼

당신의 주름은 깊어만 갔다


자식들 물음에

늘 "싫다", "없다"던 그 말의 무게

비로소 조금 느낄 때쯤


멀리 가고 싶어도

마음껏 드시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앙상한 몸 되셨다


더는 미룰 시간이 없다


“바람이라도 쐬러 갈까요?” 물으니,

어머니는 “좋지” 하시고


“칼국수 먹고 바다 보고 올까요?” 물으니,

아버지도 “좋지” 하신다


바보같이 알지 못했다

평생 기다리고 계셨다는 걸

언제든 함께 하고 싶었다는 걸


그 "없어"는 거절이 아닌

나의 준비를 기다린

당신의 조용한 인내였음을


마른 기대 떨구며 언제나 기다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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