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P막 에피소드-초민감자의 슬기로운 회사생활 3

40대 여자의 인생 P(현재) 막 일상다반사

by 작소정

나는 아주 민감하다. 태어날 때부터 그랬는지 그렇게 키워졌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어릴 때부터 남들은 잘 느끼거나 캐치하지 못하던걸 나는 귀신같이 알았고 그걸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순간 나는 이상한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그걸 숨기고 사회생활을 했었다.


나는 맛에 아주 민감하다. 내가 딱 원하는 짜기가 있었고 냄새가 아닌 향에도 민감하고 뒤에 남은 아주 미묘한 맛을 좋아했다. 냄새에 민감한 게 아니라 아주 디테일한 맛에 민감했다. 그래서 엄마가 너무 까다롭다고 힘들어하셨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할 때는 그런 걸 철저히 숨기고 그저 따지는 거 별로 없는 무던한 사람으로 나를 숨겼었다. 내 의견이 없는 점심시간에는 남들이 가자는 대로 먹으러 가기 일쑤였고 내가 너무 싫어하는 식당이라 할지라도 그저 목숨부지를 위해 먹는 행위를 하기만 했다. 처음엔 너무 싫었지만 점심자체에 무언가 만족감을 얻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버렸더니 이젠 자유로워졌다. 단, 약간 난감할 때는 나는 하얀색 국물을 잘 먹으려 하지 않는데 사람들은 그걸 원하고 같이 셰어 해서 먹어야 할 땐 난감할 때가 많았다. 그럴 땐 그냥 내 그릇에서 김치를 떨어트린 척 섞어 먹거나 아니면 아예 먹지 않거나 했었다.


사실 내가 민감한 분야는 따로 있다. 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 감정, 목소리 등 타인에게 아주 민감하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잘 모르는 연예인을 정말 잘 마주치는 것 같다. 아무리 가리더라도 난 잘 찾아낸다.

여하튼 이런 특성 때문에 상대방이 나에 대해 호감인지 아닌지를 귀신같이 알아낸다. 남들은 모르지만 나는 그걸 느끼기 때문에 너무 힘들다. 사실 나도 사람인지라 나를 좋아라 하는 사람들에게 호의적이지만 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내 모든 걸 숨기고 잘하는 게 어렵다. 그래서 나는 영업을 정말 못하고 하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정말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업무의 특성을 떠나서 모든 게 영업이었다. 남들에게 거짓말도 해야 하고 둘러대기도 해야 하고 하지 않은 걸 했다고도 하고 안한걸 했다고도 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너무 힘들었다. 특히 연차가 올라갈수록 이런 건 너무 당연하게 여겨졌고 나는 점점 지쳐가고 있다. 사실 내가 했던걸 했다고 하는 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만 하지 않을걸 했다고 얘기해야 하는 상황에선 나의 거짓말이 드러나기 일쑤였고 결국 신뢰를 잃었다.


이게 이쪽 업무의 특성인지 다른 분 야도 사실 비슷한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이런 게 나와는 맞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아주 진실하고 정직하고 법규를 잘 지키고 그러지 못한 상황이 오면 상당히 힘들어하는 성향이 있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내 성향과 반대되는 걸 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많이 벌어진다. 이런 게 나를 너무 힘들게 한다.


어쩌면 나는 사회생활이라는 거 자체가 안 맞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런 글을 쓰면서 예전 회사들을 돌이켜 보았다. 아주 첫회사부터 나는 힘들었던 것 같다. 다음 회 사는 그렇지 않은 회사를 갈려고 노력했었고 어쩌면 기존에 무언가 되어있는 회사보다는 스타트업회사들이 내 성향과 맞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런 회사만 골라 다녔다. 어쩌면 사회생활과 맞지 않는 내성향으로 다닐 수 있는 회사 중에는 맞는 분야였지 않나 싶다. 우선 모든 걸 내가 알아서 해야 했고 스스로 찾아서 해야 했고 그 모든 시스템을 내가 만들어야 했다. 오히려 그게 나에게 맞았던 것 같다. 마치 내 브랜드를 하듯이 회사에 나를 갈아 넣어서 일을 했었고 야근은 내 일상이었고 그 싫어하던 영업도 하면서 거래처도 발굴하는 등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회사와 같이 성장하는 게 꿈이었지만 그런 회사의 자금은 그걸 감당하지 못했고 거의 준비만 하다 도산하기 일쑤였다. 그게 내 커리어가 되었고 나는 점점 회사를 짧게 다니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오히려 이런 소규모의 회사에선 나름 잘 지냈던 것 같다. 단, 내가 싫어하는 무례한 사람이 없는 경우에만 해당했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래도 사람들과 꽤 잘 지낸 기억이 난다. 그런데 문제는 어중간하게 큰 회사였다.


지금의 회사도 그런 회사다. 어중간하게 디자인실이 2개나 있고 타 부서가 있지만 인원은 많아야 1,2명인 그런 곳. 그런데 나를 너무 힘들게 하는 건 무례한 사람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나는 사람과 사람사이에 예의를 중시하는 편이다. 그래서 사람들과 격이 없이 지내는 게 힘들지만 대신에 선을 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회사는 그걸 매번 넘는 회사다. 이전 디자인팀에 실장이 그랬다. 그 사람은 내가 본 한 2번째로 무례한 사람이었다. 그나마 내가 2번째라고 한건 예전엔 그게 사장이어서 그랬던 건데 이 사람은 나 같은 직원임에도 불구하고 선을 넘는다.


내가 제일 극혐 하던 부분은 나의 정직성과 관련되는 건데 내가 하지 않은 성과를 내가 했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부분이 제일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 다리만 걸치면 다 확인될 부분인데 모든 브랜드를 본인이 론칭하고 디자인했다고 얘기하고 다니는 게 본인이 그렇다고 믿고 사는 건지 거짓말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한다는 사실 자체가 내 입장에선 너무 혐오스러운 부분이었다.


거기다 사장이나 오너들에게는 한없이 부드러우면서 본인 아랫사람들 특히 본인이 휘둘러서 휘둘릴 수 있는 사람에겐 미친 듯이 하대하는 그런 모습이 역겹기까지 했다. 특히나 그렇게 본인을 고소하지 않을 순한 사람만 뽑는다는 게 너무 소름 끼치기도 했다.


이런 특징을 가진 사람을 나르시시스트 라고 한다고 한다.


알아보니 나의 성향상 그런 사람과 나는 완전 상극이었다. 그래서 더 힘들었었나 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나와 성향이 비슷한 사람을 당연히 좋아하는 게 있다. 특히 말을 버릇없이 하거나 예의 없이 윗사람을 대하는 부하직원을 극혐 한다. 그가 일을 잘하던 능력이 출중하던 어차피 부하직원의 능력은 거기서 거기이고 그럴 바에야 나는 능력이 좀 부족하더라도 나와 성향이 맞는 예의 바른 사람이 나은 것 같다.


아이들이 착각하는 부분이 있는데 모든 아이들의 특성이었던 것 같다. 일을 좀 빠릿빠릿 잘하는 직원들에겐 칭찬을 하고 잘한다고 얘기를 많이 해줬더니 본인들이 일을 너무 잘하는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뭔가 열정이 있는 친구들은 항상 선을 넘었던 것 같다. 본인이 윗상사보다 낫다는 착각을 하고 무시하기 시작한다. 항상 예의 있게 존중해 줬던 나로서는 어이가 없는 상황이 되고 결국 나도 사람인지라 예의 없는 그들에게 태도에 대해 지적을 하게 되면 그들은 어이없어하며 퇴사를 하게 이르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그런 일이 한 2번 정도 있다 보니 그 후론 직원들도 골라가며 칭찬을 하게 되었고 예의 없는 직원들에게 지적은 하지 않고 그냥 무시하고 그저 내가 일이 많아져도 그 일을 그냥 내가 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왜냐면 그게 마음이 편하니까.


다행인지 착하고 예의 바른 친구들을 더 많이 만나서 부하직원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었는데 부서이동을 하고 나서 내가 제일 싫어하던 업무시간에 이어폰 꼽고 일하고 일을 시키면 짜증을 드러내고 인사도 하지 않는 부하직원을 만나다 보니 안 그래도 많은 업무 스트레스가 더 심해지는 기분이다.


정말 이런 상황들이 그냥 다 짜증이 나는 요즘이다. 원론적으로 회사생활 자체가 맞지 않은 사람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다 포기하고 싶다. 은퇴시기를 조금 당겨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모아둔 돈은 고사하고 빚만 가득 있는 지금 상황에서 지금 하는 일을 안 한다는 건 어쩌면 나에겐 삶의 마감을 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걸 너무 잘 알지만 이렇게 싫은 일을 싫은 사람들과 하면서 나를 학대하는 삶을 사는 게 맞는 걸까? 누군가에게는 그냥 넘길 수 있는 삶일지 모르지만 초민감자인 나에게는 너무 힘든 하루하루 이다.


그러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는 걸까? 나는 하루하루가 고통이다. 무언가 안 좋은 소리와 표정을 느끼는 날엔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생각이 많아져서 결국 맥주에 힘을 빌려 생각을 멈춰야 한다.


진짜 그 누군가에게 묻고 싶다.


나처럼 이렇게 초민감자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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