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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리J Oct 11. 2023

첫 해외여행을 혼자 다녀왔다고?

어쩌다 스위스

스위스 여행을 가기로 한 것은 충동적이면서도 계획적인 일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한창 수능 공부에 질려있을 때 멋진 풍경 사진을 보게 되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생각나는 사진의 중앙에는 눈 덮인 산봉우리가 뾰족하게 솟았고 양 옆으로는 침엽수가 우거졌다. 푸른 들판과 들판을 가로질러 흐르는 개울물, 그리고 산장처럼 보이는 통나무 집 한 채까지 오래도록 넋 놓고 바라봤다.


사진 아래에는 그 사진을 찍은 장소가 적혀있었다. 스위스.


분명 실물보다 못할 텐데도 그 사진에 담긴 평화로움에 빠져들었다. 스위스에 관해 찾아보니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국가로 유명했다. 스위스 여행은 주로 열차를 이용하는데, 열차여행을 좋아했던 터라 더 마음에 들었다. 찾아볼수록 스위스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커져갔다.


어느덧 스위스 여행을 꿈꾸는 것은 수험생활 중의 피난처가 되었다. 힘들 때마다 비행기표 가격을 확인하는 건 덤이었다. 수능 시험이 끝나자마자 바로 떠나겠다고 다짐하며 책을 펼쳤다.


물론 시험이 끝나자마자 떠나진 못했다. 끝이 날 것 같지 않던 수능이 끝나고 대학 결과까지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여행으로 다시 눈을 돌릴 수 있었다. 3월 이전의 비행기 값은 평소보다 비쌌으며 숙소도 자리가 없었다.


결국 비행기 값이 그나마 괜찮았던 8월 중순으로, 그동안 모아뒀던 돈을 털어 비행기표를 샀다. 어렸을 때부터 차곡차곡 모은 돈이었다. 한 달에 2만 원이라는 용돈과 명절마다 받은 돈을 저축해두기만 했지 꺼내서 쓴 건 처음이었다.


아쉬운 마음은 없었다. 스위스를 가겠다는 마음이 너무나도 강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을 전부 쏟아 넣는다고 해도 아깝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야 가족들에게 선언했다.


"나 8월에 스위스 간다."


반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여행까지 반년 넘게 남은 데다가 너무 현실성 없는 말이었는지 부모님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래, 라며 허락했다. 나중에 여쭤보니 정말로 갈 줄은 몰랐다고 다. 하긴 해외여행 경험도 없고 갓 성인이 된 자식이 상의도 없이 모아둔 돈을 털어 먼 나라로 여행 간다는 건 예상하기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첫 해외여행지를 스위스로, 게다가 혼자 떠나는 걸로 잡다니. 지금 생각해 봐도 쉽게 내리지 못할 파격적인 결정이다. 하지만 힘든 시절을 버티게 해 준 목표와도 같았기 때문에 그 순간에는 두려움이나 망설임은 전혀 없었다.


그렇게 나의 첫 해외여행이 정해졌다.



혼자여행의 가장 중요한 점을 꼽는다면 '준비'다.


스위스를 '혼자' 가겠다고 계획한 건 아니었다. 그냥 내가 원하는 시간에 맞춰서 표를 구매했고 간 것이다. 혼자 가야 된다거나 다른 사람과 시간을 맞추기 힘들다는 게 여행을 가지 않을 이유가 되지 않았다.


스위스에 가고 싶다는 친구가 있었다면 당연히 함께 떠났겠지만, 가까운 일본도 아니고 비행기를 타고 열 시간은 족히 가야 하는 스위스를 가겠다고 바로 결정 내리는 친구는 없었다. 그나마 비슷한 시기에 유럽여행을  계획한 친구도 스위스만 도는 것이 아니라 유럽 5개국을 돌기로 했기에 나 혼자 여행을 계획했다. 혼자 식당에 간 적도 없으면서 여행을 혼자 하다니!


혼자여행을 떠났다고 하면 깜짝 놀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예측불가능한 일을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기는 하다. 열차를 놓치거나 여권을 잃어버려도 옆에서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건 조금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 꼼꼼히 계획을 세웠던 것 같다. 열차를 놓칠 걸 대비해서 다음 열차 시간을 알아두고 여권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니까 대사관 주소랑 여권사진을 챙겨 넣고.


여행에서는 여러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완벽하게 대비할 수는 없지만 가능한 범위까지는 신경 써두는 게 편하다. 여행 스타일에 따라 그 범위는 달라질 수 있으나 혼자여행을 갈 때는 다른 가족, 친구들과 갈 때보다 더 준비하는 것이 좋다. 이 말은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준비를 좀 더 해야하는 점만 빼면 혼자 여행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는 말이다.



그렇게 갈만큼 가치가 있는 선택이었나요?


시간에 따라서 그 답이 달라지는 질문이다. 여행을 다녀온 직후의 내게 묻는다면 '글쎄요.'라고 답할 것이다. 여행 한 번 다녀왔다고 당장의 인생이 바뀌지는 않는다. 여행의 추억을 뒤로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건 확실하다.


하지만 지금의 내게 묻는다면 그만큼의 가치가 있었다고 대답하겠다. 여행은 그 이후로도 계속 나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여행을 막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가던 나는 알지 못했던 변화를 몇 년이 지나고서야 느끼고 있다.


앞으로의 나는 어떻게 대답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여행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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