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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ypyo Jan 01. 2024

나도 모르게 기다려 온 역사 소설

[책] 작은 땅의 야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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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교포가 쓴 일제강점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 소설이다. 몰입감이 최고였고, 글속에서 인물들이 살아 숨쉬는 것 같았다. 이야기속에서 나는 무언가를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서야 내가 읽고 싶었던 역사 소설을 찾았다는 반가움으로부터 그것이 일종의 그리움 때문이었다고 생각했다.


작가의 외할아버지는 김구 선생 옆에서 독립운동을 했다고 한다. 집안에서 한국어를 쓰고, 많은 한국 역사 이야기를 들어온 그녀는 자신의 기억로부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을 다시 끄집어냈다. 너무나 훌륭한 작품이 탄생했다.


이토록 너무나 한국적인 소설이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에 다시 한번 K-콘텐츠의 위대함에 자부심을 느낀다. 아마존 베스트셀러부터 권위있는 문학상 최종 후보에 이르는 등 출판 후 1년동안 정말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중이다. 덕분에 강제노동, 위안부 문제 등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제국주의 일본의 과오에 대한 질책이 다양한 국가로부터 이어지고 전쟁이 끊이지 않는 국제 사회에 정의와 평화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소설은 기생 옥희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야기는 3.1운동의 시발점인 1918년부터 해방 후 박정희 독재정권이 들어섰던 1964년까지 이어진다.


가난했던 그녀는 어릴적 가족으로부터 기생집에 팔리게 된다. 이후 평양에서 경성(지금의 서울)으로 가게 된다. 경성에서 기생으로 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예인이 되는데, 결국 전국적으로 유명한 영화 배우가 된다.


옥희를 중심으로 여러 남자가 등장한다. 한국의 토지와 광산을 차지한 일본 장교, 권세를 유지했던 친일파 사업가, 공산주의 독립 운동가와 그의 수제자인 거지 왕초 출신의 독립 운동가, 인력거를 몰다 자수성가한 자동차 사업가 등이다. 옥희가 그들 사이에서 겪는 사랑과 이별, 폭압과 투쟁의 이야기가 불행했던 시대상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옥희는 그녀를 둘러싼 한국의 사정과 국제정세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단지 살아남고자 했고 그녀에게 주어진 기예를 훌륭히 익혀 근사한 예인이 되어 선망을 받았다. 그리고 순애보에 한 평생을 바쳤다. 그녀가 가장 좋아했던 친구의 고백을 받아들이지 못함에 미안해했고, 그럼에도 그녀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앞에서 한없이 나약하게 때로는 강한 용기로 생명을 이어갔다.


소설은 이러한 인간 옥희의 순수한 시선으로 주변 인물들의 비장한 사투를 담아낸다. 그 문체는 참으로 아름답다. 그리고 바로 내 옆에서 옥희처럼 시대를 관통했던 인물이 놀라운 사실을 담담하게 들려주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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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예술은 어떻게 인간이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지 제시하고, 깊이 잠재된 양심과 영혼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문학은 그럴 수 있는 힘, 의무가 충분하다고 믿어요.”

김주혜 작가는 문학은 그저 하나의 읽을 거리가 아니라고 했다. 철학의 정수이며 불가능한 도전을 가능케 하는 하나의 원동력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난 감동이 어디를 향해 달려가는 것일까. 그곳은 창작이란 익숙한 사실에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알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알고 있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게끔 해야 한다. 우리에게 일제 강점기라는 암울한 역사가 있고 그로부터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온 위인들이 있다는 것은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것으로부터 누군가에게 삶의 지향점을 제시하는 건 특별하다.

일제강점기 동안 우리 조상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알량한 눈 앞의 이익이 아니라 몇천 년을 이어온 전통과 또 몇 천년을 이어갈 미래의 근본에 대한 열정이었다. 우리가 믿고 따라야 할 덕목이 부패와 사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의 안에 있다는 믿음의 발현이었다. 비루한 현실을 뛰어 넘을 만큼 그들의 이상은 담대하고 단단했던 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어떠한가. 지금 내가 믿고 따르는 것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을 느낌표로 바꿔가는 게 문학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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