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은 배신이 아니다
직장인으로 연봉을 올리는 데는 이직 만한 게 없었다.
내가 일했던 회사는 60여 명의 소규모 회사부터 2,500명이 넘는 패션 회사, 그리고 172개국 사람들이 일하는 174,000명이 일하는 메가급 초대형 패션회사까지 있었다. 대부분의 외국 회사들은 한국과 같은 수직적인 직위체계와 달리 직급이 세분되어 있지 않다. 직원과 매니저, 디렉터로 상대적으로 수평적인 구조다. 매년 연봉협상제도가 있긴 하지만 초창기 직원을 고용했을 때의 기대치가 있으므로 한 회사 내에서 2~3년 안에 연봉을 많이 올리는 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하물며 직급이 많이 나뉜 한국에서 연봉을 많이 올리는 건 외국보다 훨씬 더 어렵다.
신입사원의 경우는 적어도 3~5년을 한 직장에서 버텨줘야 하지만 경력사원의 경우에는 이직을 하는 것이 연봉을 올리는데 현실적으로 최고의 선택이다. 연봉뿐만이 아니라 실력을 키우는데도 좋은 기회다. 회사들은 24시간 더 실력 있는 직원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언제라도 직원을 바꿀 태세가 갖춰져 있다. 반면 직장인들은 더 좋은 회사로 가기 위해 회사가 자신을 대체할 다른 인재를 찾는 만 큼의 노력을 하지 않는다.
기업정보분석업체 한국 CXO연구소가 2019년 100대 기업의 직원수 대비 임원 비율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임원 1명 당 직원수는 평균 128.3명, 백분율로는 0.78% 였다. 평직원이 임원이 될 수 있는 확률이 1퍼센트도 안 된다. 대부분의 대한민국 직장인들은 차근차근 ‘승진 계단’을 밟으며 회사생활을 한다. 대졸 신입사원이 임원이 되려면 평균 22.4년이 걸리고, 부장까지 승진하는 사람은 신입사원 100명 중 5명에 불과하다.
당신은 과연 이 5명 중 하나가 될 수 있을까?
『그들은 어떻게 임원이 되었을까?』에선 적을 알아야 백전백승할 수 있다면서 샐러리맨 기자 3명이 직장인들의 꿈인 ‘임원’에 대해 파고든다. 임원이 되면서 생기는 가장 큰 차이는 역시 연봉이다. 수많은 임원을 만나 대화를 나누며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열정’ ‘성실’ ‘처음처럼’ 바로 이 세 가지다. 그 이외에 리더십, 추진력, 뛰어난 전문지식, 원만한 대인관계, 성실성, 폭넓은 네트워 크,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평판,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언변, 뛰 어난 외국어 실력, 무엇보다 ‘눈에 띄는 실적 등 좋은 성과’를 지목했다.
앞에서 이야기한 능력들을 갖추기 힘들다면 직장인도 다른 회사에서 주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제안하고 싶다.
미주, 유럽, 아시아 등 여러 나라에서 많은 회사에 다니면서 확연 히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50가지 비밀』에서는 회사의 입장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회사는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 원치 않는 직원을 제거하기 위해 해고보다는 스스로 그만두게 만든다. 회사에서 적대적인 차별을 한다거나 임금이 너무 낮거나 성공 가능성이 없는 업무만 하도록 한다면 당신이 타깃이 되었다는 뜻이다.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에 회사는 직원의 잘못을 까놓고 얘기해 주지 않는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안전한 곳도 아니다.
회사는 똑똑한 직원보다 회사가 원하는 일을 해 줄 직원을 원한다. 내 경험 상 회사의 규모가 클수록 당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 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상사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이다. 누구에 게나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면 관리자로 성공하기 어렵다. 이것은 팩트다. 내가 겪은 사실들이다.
직장인으로서 더 나은 직장생활을 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일하는 분야의 생리를 잘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디에, 어떻게 파고들 것인지 자기 자리를 잡아내는 것이다. 스페인으로 이주를 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스페인 패션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회사들을 분석하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패션 디자인 분야에서 5년 정도의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스페인의 유명한 패션 회사들은 크게 보면 세 도시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전 세계 2,000개가 넘는 의류 브랜드 망고 Mango, 비즈니스 캐주얼 마시모 두띠 Massimo Dutti, 빅토리아 시크릿의 스페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속옷 브랜드 오이쇼 Oysho, 스페인 특유의 현란한 색채와 화려한 패턴으로 유명한 데시구알 Desigual, 1920년 창립한 주얼리 및 액세서리 브랜드 투스 Touse 등이 있는 바르셀로나 지역, 그리고 피혁 제품으로 널리 알려진 명품 브랜드 로에베 Loewe, 스페인 최고 백화점 엘 코르테 잉글레스 Corte Ingles, 럭셔리 파인 주얼리 수아레스 Suarez 등이 위치한 마드리드 지역과 세계적으로 유명한 트렌디 스파 브랜드 자라 Zara, 한국에서 20~30대 여성들이 좋아하는 빔 바이 롤라 Bimba&Lola, 내 가 일했던 스페인 럭셔리 브랜드 CH 카롤리나 헤레라 CH Carolina Herrera가 위치한 스페인 북부다. 연봉 통계를 내 보는 것도 앞으로의 이직 방향을 정하는 데 좋은 이정표가 되어 준다.
내가 몸담은 패션 세계는 연봉이 짜기로 정평이 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사)한국 패션 디자이너 연합회에서 발표한 2019년 디자이너의 평균 연봉은 4,570만 원이다. 최저는 고졸 사 원의 경우 2,569만 원이고, 대졸 초임인 경우 3,350만 원(예상 월 실 수령액 2,397,386원), 최고는 일반 회사의 8~10년 차 경력을 가진 부장 급 정도 되었을 때 8,359만 원이다. 하지만 디자이너들이 받는 연봉을 얘기해보면 실제 수령액은 숫자보다 훨씬 낮은 경우가 많다. 내가 실제로 받았던 스페인 첫 직장 월급은 4년이 넘는 경력에도 1,500유로였다. 물론 스페인에 서 일했던 경험이 없었다는 걸 고려해야 하지만 세금을 제외하면 1,380유로 정도를 받았다. 2007년 기준으로 보면 연봉 2,200만 원 남짓 정도다.
사실 이런 일은 나라를 옮길 때마다 겪는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바닥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이었으므로 첫 직장의 연봉에는 크게 집착하지 않았다. 같은 나라에서 5년이라는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직을 하면서 더 낮은 연봉으로 시작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스페인에서 일했던 경력이 없었으므로 경쟁자들 보 다 훨씬 더 불리했다. 그래서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도전적인 조직문화’를 장려하는 곳에 발을 먼저 딛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기업이나 중견기업보다 중소기업을 겨냥했다. 그리고 그런 장점을 최대한 이용해 매해 연 연봉 협상을 한 배에서 다섯 배 이상으로 올렸고 연봉이 원하는 만큼 되지 않았을 때는 인센티브 형태로도 협상했다.
연봉 협상 테이블에 내가 들고 들어간 것은 일 년 동안 회사에 가져온 이익에 대한 증거 자료였다. 내가 올린 수익의 총금액이 정확히 얼마인지는 내가 알 턱이 없다. 담당자에게 직접 물어 그 숫자를 파악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 금액을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는 없다. 혹 담당자에게 문책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1년 동안 내 능력으로 만들어 낸 성과, 베스트셀러 디자인 Top 20의 90% 이상이 내 디자인이었다는 것, 그로 인해 회사가 얻은 이익을 콕! 짚어서 이야기했다. 대체되기 힘든 사람이 되었을 때 연봉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스페인어라고는 한마디도 못하면서도 스페인으로 이주를 한 뒤에 들어간 첫 직장에서 2년 만에 디자인 디렉터가 되었다. 4년 후 에는 자라가 속해 있는 Inditex 대기업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이직하면서 또 한 번 연봉이 크게 점프했다. 그 후 1년이 되지 않아 내 마지막 직장생활의 화룡점정이 되어 준 Sociedad Textil Lonia그룹 CH Carolina Herrera와 Purificacion Garcia 두 브랜드의 수석 디자이너 자리에 오르기까지 딱 6년이 걸렸다. 그럴 수 있었던 원동력은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잘하는 일을 하며 나만의 성취감 채우기에 집중하여 몰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월급 1,500유로를 받던 나는 6년 사이에 억대 연봉에 1,000명 이 넘는 본사에서 단 11명만 받았던 인센티브까지 받게 되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었고, 그런 환경에 서 기회를 잡게 된 것엔 분명 운도 있었다. 내 회사를 세우기로 마 음을 먹기 전까지 스페인에서 내로라하는 회사들에서 러브콜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스페인에서 직장을 다니는 많은 사람의 불만 중 하나가 쥐꼬리 만한 월급이다. 그리고 그 사실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같은 회사에 다녔던 직원 중에서도 너무나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평생직장처럼 한 곳에서만 있었던 사람이 있다. 회사 역시 그 사람들이 가족, 친척이 모두 있는 삶의 터전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알고 있었다. 그들의 연봉은 안타까울 정도로 낮았다. 동료들은 그에 대해 불만이 컸지만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았다.
회사가 자청해서 연봉을 올려줄 리는 없다. 개인 사정에 따라, 나이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작을 수 있다. 한 직장을 숙명으로 여기며 일하는 것은 본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실력에 비해 너무 낮은 연봉을 받는 그 동료들을 보면서 왜 불 만을 품고 있으면서도 연봉 협상을 시도하고 어필할 기회를 만들지 않는 것인지는 안타까웠다.
스마트한 직장인이 되자.
이직은 배신이 아니다.
배신은 대부분 회사가 먼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