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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샘 Dec 08. 2018

[명화와 역사] 9, 크림전쟁과 나이팅게일 (1853)

[명화로 보는 19세기 역사이야기] 9, 크림전쟁과 나이팅게일 (1853)


지금도 간호학과 학생들은 재학 중에 '나이팅게일 선서'를 한다. 간호사 나이팅게일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고자 이 같은 선서를 하는 것인데, 당시 나이팅게일은 수많은 사상자가 속출하고 콜레라가 번창하던 크림전쟁에 용기 있게 등장하여 수많은 사람을 간호하고 돌보았을 뿐 아니라 현대 간호학을 정립하였다.

흑해의 북쪽에는 '크림(Krym) 반도'라는 달콤한 이름을 가진 지역이 있는데, 북쪽으로는 우크라이나에 연결되고, 동쪽으로는 케르치 해협을 사이에 두고 러시아와 마주 보고 있다. 크림반도는 구소련 시절에 우크라이나에 편입되었으나, 1991년 자치권을 얻어 우크라이나의 자치공화국이 되었다. 그러나 주민 대부분은 러시아인으로 구성되어 2014년 러시아 귀속 찬반투표에서 97%의 찬성으로 다시 러시아로 귀속되면서 세계적인 긴장감을 고조시키기도 하였다.

16세기 이래 아시아와 유럽 그리고 아프리카에 걸쳐 대제국을 건설했던 오스만제국(지금의 터키)은 19세기 들어서며 그 세력이 점차 약화되었고, 오스만제국의 영토를 호시탐탐 노리던 러시아는 예루살렘의 그리스 정교도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선전포고를 하며 1853년부터 1856년까지 약 3년동안 벌인 전쟁이 크림전쟁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90만대군에 맞서 오스만제국은 물론 프랑스 제2제국과 대영제국의 동맹군 60만명이 3년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러시아를 패배시킨다.

그러나 이 전쟁이 역사상 의미를 갖는 또 한 가지 사실은 무엇보다도 간호위생학의 발전에 커다란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동맹군의 부상자들은 크림반도에서 흑해를 건너 이스탄불로 옯겨졌지만, 의사도 간호사도 충분하지 않았기에 부상병의 대부분이 열악한 환경속에서 죽어나갔다. 이 때 우리가 잘 아는 ‘백의의 천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등장하여 38명의 간호대를 조직하여 이스탄불의 위스퀴다르 병원으로 갔다. 당시 군병원은 이름만 병원이지 부상병들이 응급치료만 받고 군복을 입은 채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못하고 방치되 있었다. 나이팅게일은 우선 환자들의 위생 상태를 개선하기 위하여 깨끗한 환자복을 입히고 침대시트를 청결하게 관리하며 합리적인 병원체계를 갖춰 나갔다. 또한 부상, 질병, 사망 통계를 정리하여 병원의 위생상태를 개선하여 병원에서 통계학을 적용하였고, 그녀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야전병원에서 환자 사망률은 42%에서 2%로 감소했다고 한다. 그녀의 활약으로 사람들이 성금을 모아 전쟁이후에 런던 세인트토머스 병원에 ‘나이팅게일 간호학교’를 설립하여, 많은 여성이 간호 전문 인력으로 일할 수 있게 되었고, 이로 인해 여성의 사회 참여와 함께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는 큰 변화까지 가져왔다. 

이러한 나이팅게일은 1820년 영국의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교양과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다. 17세 때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평생을 바치겠다고 선언하여 주위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에 간호사는 비천하고 부도덕한 직업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가족의 거센 반대로 시도가 좌절된 이후, 플로렌스는 여러 차례 청혼을 거절해 가면서 의학서적을 읽고 병원과 요양소들을 견학하다가 33세 때인 1853년에 소규모 자선 요양소의 책임자가 되었다. 1854년 크림전쟁 때 영국에서 파견된 자원봉사대로 실전에 참가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사랑과 헌신의 ‘천사’의 이미지이지만, 실제로는 간호학과 병원행정을 정립한 냉철한 행정가이자 통계학자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녀를 영국 성공회에서는 성인으로 추앙하여 매월 8월 13일을 나이팅게일 축일로 지키고 있다고 한다.

 ++ 제리 배럿 (Jerry Barrett, 1824~1906) <위스크다르에서 부상병을 맞이하는 나이팅게일 (Florence Nightingale receiving the Wounded at Scutari )> (1856), National Portrait Gallery, London



1985년 영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나이팅게일과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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