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와 찬이는 이란성 쌍둥이였다. 찬이는 형우를 닮아서 키가 작고 살집이 없었다. 두상은 작았으며 둥그스름하게 돋아난 이마 위로 까맣고 숱 많은 눈썹이 양쪽으로 넓게 벌어져 있었다. 큰 눈은 레몬 모양을 닮아서 눈시울과 눈꼬리가 날카로워 보였다. 나지막하고 작은 코, 얍실하면서도 작은 입은 영락없이 곱상한 형우의 어린 시절 모습 같았다.
민희는 찬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찬이처럼 키는 작았지만 몸집은 통통했으며 얼굴이 동글동글하고 덜 익은 복숭아처럼 탱탱했다. 미간은 제법 넓어 보여서 마음 씀씀이가 무던해 보였고 눈꺼풀이 얇실한 눈은 쌍꺼풀 없이 날렵해서 호기심이 많아 보였다. 오뚝한 코밑으로 입이 살짝 튀어나와 있었는데 코와 입술로 이어진 인중이 제법 길었다.
세현은 석 달 전 조성진 피아노 독주회를 계기로 민희와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상담사의 조언대로 음악을 좋아하는 유사성이 세현과 민희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것 같았다. 찬이는 여전히 세현에게 먼저 말을 걸어오는 법은 없었고 그녀가 묻는 질문에 “아니요”, “몰라요”,"싫어요"라는 딱 세 가지 대답으로만 반응했다. 그러다 가끔 세현의 말에 수긍이 가는 대목이 있으면 고개를 가볍게 위아래로 두어 번 천천히 끄덕이는 것이 의사소통의 전부였다.
세현은 주말에 당직이 있을 때를 제외하곤 형우가 살고 있는 에너벨리 타워에 갔다. 아이들과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이었지만 럭셔리한 에너벨리 타워에 가는 일은 세현에게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세현도 어려서부터 60평대 이상의 고급 아파트에서 살았기 때문에 친구들 집이 대단해 보인다거나 부럽다고 느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형우의 집은 세현의 집과는 아예 딴 세상 같았다. 형우의 집에 갈 때마다 같은 서울인데 이렇게 차원이 다른 곳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현은 지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형우가 살고 있는 52층 버튼을 누르자 엘리베이터는 초고속으로 순식간에 올라가다 48층부터 속도를 서서히 줄이더니 52층에서 얌전히 섰다. 그녀가 긴 복도를 지나 형우 집 앞에 다다라서 초인종을 누르자 문안 쪽에서 잠금장치가 스르륵 열리는 소리가 났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형우가 환하게 웃으며 복도 쪽으로 걸어 나왔다.
“어제 늦게 끝나서 피곤했을 텐데 일찍 왔네?”
“일찍 와야 많이 놀고 가죠!”
세현이 신발을 벗고 형우를 바라보며 코를 찡긋거리며 웃자 형우는 몸속에 엔도르핀이 갑자기 솟아오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지나치게 활짝 웃었다.
"그렇게 좋으세요?"
"응. 하하하."
“애들은요?”
“민희는 제 방에 있고 찬이는 피트니스룸에 갔어. 요즘 녀석이 외모에 관심이 많아져서 그런지 제법 운동을 열심히 하네.”
“운동 열심히 하면 좋죠. 운동해서 근육이 많아지면 공부할 때 좋잖아요. 저도 중학교 때까지 검도를 했어요.”
“그래? 세현이가 검도를 했다고? 놀라운데?”
“엄마가 억지로 시켜서 한 거지만 중학교 때 했던 검도 덕분에 고등학교 때 엄청 도움이 되었어요. 책상에서 다른 애들보다 더 오랫동안 버틸 수 있었거든요.”
“하하하 그랬구나. 세현이가 지구력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정말 운동 덕분이었나 보네.”
“그런 것 같아요.”
“근데 녀석은 공부 때문에 운동을 하는 건 아닌 것 같아. 몸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는 걸 보면 여자 친구라도 생긴 건지 원 참.”
“아무렴 어때요. 열심히 운동하라고 격려만 해주세요.”
“그래야겠지? 허허허. 아참 자기야. 우리 찬이 운동 끝날 때까지 민희랑 셋이서 46층에 있는 라운지에나 다녀올까? 거기에 입주자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전용 카페가 있는데 커피 맛이 아주 좋아. 민희는 거기에서 주는 핫초코를 엄청 좋아하고.”
“우와 정말요? 그럼 민희 불러서 어서 가요.”
"응 그러자."
46층 라운지에 있는 카페는 모던하면서도 세련된 분위기에 중앙에는 현대식으로 조성된 미니 정원이 있었다. 검은색 대리석으로 된 바닥 위로는 피노키오처럼 다리가 가는 테이블과 펀칭된 크림색 가죽 의자가 한 쌍씩 짝을 이루고 있었다. 천정은 밝은색 우드로 장식되어 있어서 따뜻한 느낌이었다. 중간중간 다운된 블루 컬러와 붉은색의 액자가 걸려 있어서 전체적인 색감은 균형감이 있어 보였다. 세현은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형우와 마주 앉았고 민희는 세형 옆에 다소곳하게 앉았다. 주문한 커피와 핫초코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민희의 성악 레슨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셋의 대화가 진지해졌다.
“민희는 그럼 성악을 전공하고 싶은 거야?”
“예.”
“민희가 노래를 참 잘하는가 보다. 나는 피아노를 꽤 잘 쳤거든? 근데 노래는 정말 못했어.”
“쌤은 피아노 잘 치세요?”
“응. 나는 피아노 전공을 하고 싶었어. 피아니스트가 그렇게 멋있어 보였거든. 근데 연극배우도 되고 싶었고, 체육 선생님도 되고 싶었어. 하하하.”
“이야. 세현이는 정말 어려서부터 에너지가 많았네. 그리고 욕심쟁이였네.”
민희와 세현의 대화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던 형우가 눈을 크게 뜨며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저는 커서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어요. 엄마는 한 가지만 잘하면 된다며 공부에 집중하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그렇게 싫더라고요. 끝까지 피아노는 포기할 수 없어서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레슨을 받았어요. 그때 엄마가 무척 싫어하셨어요. 엄마는 제가 의대에 가길 간절히 원하셨거든요. 그것도 일반 의대에 가서 피부과 의사가 되길 바랐어요. 하지만 피아노를 치느라 시간을 뺏기다 보니 결국 치대 밖에 가지 못한 거예요.”
“에이 치대 밖에라니. 같은 치대 출신으로 좀 서운한대?”
“사실 치대는 의대 진학이 어려운 학생들이 가는 거니까 제 말이 아예 틀린 표현은 아니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치대에 들어간 것도 대단한 일이야.”
“그런가요? 호호호. 근데 민희야! 민희는 왜 성악가가 되고 싶은 거야?”
“음... 노래하면 기분이 좋아져요. 그리고 엄마가 반주해 주실 때 제가 가장 잘하는 일이 노래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그렇구나. 민희가 노래하는 것이 그렇게 좋다면 그쪽 길로 가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야겠는걸?. 내가 오늘은 집에 올라가서 반주해 줄까? 민희가 부르는 노래를 들어보고 싶어.”
"......"
민희는 부끄러워 대답은 하지 못하고 얼굴을 붉히면서도 세현의 제안이 싫지 않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형우가 딸의 어깨를 감싸며 다독거리고 있는데 찬이에게 집에 돌아왔다는 전화가 왔다. 형우와 세현, 민희는 집으로 올라가서 찬이와 넷이서 점심을 먹었다. 에너벨리 타운에는 집으로 호텔 셰프를 초청해서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형우는 세현이 오는 날에는 늘 셰프에게 미리 식사 예약을 해두곤 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셰프가 돌아간 후 넷은 집에서 ‘비트를 느껴봐’라는 영화를 봤다. 완벽주의자인 주인공의 이야기와 함께 오합지졸의 어린 댄서들이 훈련하는 장면을 보며 형우와 세현, 민희는 깔깔대며 웃었다. 찬이는 영화보다 셋이 웃는 모습이 우스워서 피식피식 웃었다.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들과 뭉클한 내용이 교차되는 영화가 끝나고 나니 집안 분위기가 풍선처럼 붕 뜨는 것 같았다.
“민희야! 우리 아까 얘기했던 거 해볼까?”
세현이 눈짓을 하자 민희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디 우리 민희 노래 좀 한번 들어볼까?”
형우가 고갯짓을 하며 소파에서 일어서자 찬이도 얼떨결에 따라 일어섰다. 다 같이 피아노가 있는 민희의 방으로 들어갔다. 세현은 자연스럽게 피아노 쪽으로 다가가 의자에 앉으며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민희야, 어떤 노래 부르고 싶어?”
“이거요.”
민희는 베토벤의 ‘그대를 사랑해’ 악보가 있는 반주 책을 찾아다 악보대 위에 올렸다. 세현의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춤을 추며 G장조로 시작되는 선율의 반주가 시작되었다. 민희는 두 손을 배 위에 지긋이 올리더니 "이히 리베 디히"로 시작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순간 세현은 깜짝 놀랐다. 어떻게 자그만 체구에서 저리 울림이 큰 목소리가 나올 수 있을까? 꾀꼬리가 운다고 해도 믿을 만큼 민희의 목소리는 고우면서도 성량이 풍부했으며 어른스러웠다. 세현의 반주에 맞춰 노래 부르던 민희도 놀라는 눈치였다. 세현의 피아노 반주 실력 또한 완벽했기 때문이다. 민희의 노래가 끝나고 세현의 반주가 끝자 형우는 박수를 쳤다.
“이야~브라보! 우리 민희 노래 정말 잘하네. 요즘 성악 공부 열심히 한다더니 실력이 폭풍 성장했나 봐. 그리고 세현이도 피아노를 그렇게 잘 치는 줄 몰랐는데 정말 끝내준다. 와 진짜 이건 연주회에 온 느낌이 드는걸?”
형우의 칭찬에 세현과 민희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부끄러워하면서도 환하게 웃었다.
“근데 쌤은 D장조로 바뀌는 부분 첫 마디 첫 음절에서 실수하셨고요. 민희는 G장조에서 D장조로 다시 바뀌는 부분 세 번째 마디 들어갈 때 반음이 떴어.”
찬이가 세현과 민희를 바라보며 표정 없는 얼굴로 말했다.
"뭐라고? 찬이 너 정말 그걸 알았어? 진짜 놀랍구나. 어쩜 청음이 그렇게 좋으니. 와. 정말 베토벤이 살아 돌아왔다고 해도 믿겠어. 찬이 너 절대음감이구나?”
세현은 찬이의 능력에 소름 끼치게 놀라서 오래도록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형우는 벙 찐 표정을 지었고 민희는 찬이를 향해 눈을 흘기며 입을 삐죽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