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마치고 여행을 다녀왔다. 남편이랑 둘이서. 이번 여행 목적지는 안면도다. 내가 사는 전주에서 안면도에 가려면 상당히 먼 거리를 돌아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보령 해저 터널이 뚫리기 전에는 말이다. 해저 터널이 생긴 이후로 두 시간이면 갈 수 있게 되어서 부담 없이 태안반도를 향해 집을 나섰다.
5년 전, 유럽여행 중에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이동하느라 초고속 전철인 테제베를 타고 해저 터널을 지난 적 있다. 속도감 때문에 귀가 먹먹해서 그랬기도 했을 테지만, 코가 크고 파란 눈 가진 유럽인들 틈에서 처음으로 해저 터널을 지날 때의 느낌은 그저 그랬다. 이국적인 느낌이었으나 눈에 보이는 해저 터널은 내가 늘 차를 몰고 지나다니던 어둑한 굴과 다를 바 없었다.
안면도에 가기 위해 보령 해저 터널을 지났다. 우리는 터널에 들어서기 전에 현장학습을 하러 가는 어린애들처럼 들떠서 서로 농을 건넸다. 수족관을 보듯 용궁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 아니냐고, 터널 지날 때 색색으로 촉수 흔드는 해파리를 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스페인 댄서처럼 외투막 펄럭이며 헤엄치는 갯민승달팽이들의 군무까지 볼 수 있을지 모른다며 깔깔대고 웃었다. 하지만 보령 해저 터널도 유럽의 해저 터널처럼 그저 내가 여태껏 지나다니던 터널일 뿐이었다.
봄기운이 완연하다고 해도 2월의 안면도는 겨울의 날카로운 갈퀴를 품고 있었다. 갈퀴에 할퀸 자국을 없애려 우럭 매운탕, 게국지 등등 매콤한 국물 요리를 여러 번 먹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집에 돌아와서는 심심한 음식이 먹고 싶었다. 나는 바깥 음식을 여러 끼니 먹으면 집밥이 먹고 싶고, 집밥을 또 여러 끼니 먹으면 바깥 음식이 먹고 싶어 진다. 변덕스러운 입맛을 가진 탓이다. 냉장고 안에 표고, 팽이, 느타리버섯이 눈에 보이길래 맑은 버섯 탕국을 끓였다. 생각 속에서 맑은 버섯 탕국은 매콤하고 짭짤한 바깥 음식을 중화시켜 줄 것 같았다.
<맑은 버섯 탕국>
주먹구구 레시피
재료: 표고, 팽이, 느타리버섯 한 주먹씩, 무 1/3토막, 쪽 파, 마늘, 새우젓 1/2스푼. 코인 육수 서너 알
1. 오막한 냄비에 먹기 좋게 자른 버섯 (표고, 팽이, 느타리버섯), 자른 무를 넣고 물을 자작하게 부은 다음 코인 육수를 넣고 끓여준다.
2. 마늘은 칼날로 누른 다음 듬성듬성 다져주고 쪽파는 5센티 길이로 잘라준 후 버섯탕이 끓어오르면 넣어준다.
3. 간은 새우젓으로.
버섯탕이 끓는 동안 설에 먹고 남아 얼려둔 불고기를 해동시켜서 팬에서 지글지글 볶았다. 불고기에는 쌈도 잘 어울린다. 깻잎, 상추 씻어서 물기 빼두고, 설에 부쳐둔 전도 한 접시 데우고, 호박 수프는 애피타이저로 먹으려고 두 어 숟가락씩 작은 그릇에 담았다.
명절 음식이 남아서 여러 끼니 먹으면 질리곤 했는데 여행 다녀와서 먹으니 뚝딱 집밥 한 상 차릴 수 있어서 좋았다. 심심하게 끓인 맑은 버섯 탕국은 개운하면서도 마음을 끌어당기는 맛이었다. 역시 집밥이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