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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Mar 22. 2024

고수향 좋아하나요?

4화

쌀국수를 좋아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쌀국수 먹을 때 고명으로 얹어 먹는 고수 향을 좋아한다. 왜 고수 향이 좋으냐고 묻는다면 ‘그냥’이라고 말하겠지만, 과학적인 메커니즘에 의하면 알데하이드 화학 물질의 향을 감지할 수 있는 유전자가 없어서 진한 향에 덜 민감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한 연구 논문 발표에 의하면 유전자에 따라서 사람마다 냄새를 다르게 느낀다고 한다. 나는 고수를 먹으면 농축된 미나리 향이 난다. 미나리 향을 좋아하는 나로선 고수를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고수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빈대 냄새가 난다고도 하고, 인공적인 향이 가미된 비누 냄새, 암내, 또는 마르지 않은 걸레에서 나는 썩은 냄새가 난다고 한단다.


이런 사람들도 고수 향에 중독되면 헤어나올 수 없다. 고수의 독특한 풍미는 두리안이라는 과일처럼 중독성이 아주 강하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도 고수 향을 싫어하던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고수 예찬론자가 되었다. 그가 고수를 좋아하는 이유는 튀김 요리나 기름기 많은 음식을 먹을 때 느끼함을 잡아준다는 점이다. 그는 삼겹살을 먹을 때 고수를 미나리와 함께 먹는데 고기 맛이 한결 좋아진다고 한다.


나는 고기의 누린내가 싫어서 삼겹살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느 날 고수 예찬론자를 따라 고수와 함께 삼겹살을 먹었는데 고수 향 덕분에 삼겹살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그 뒤로 고수와 함께 먹는 삼겹살이라면 거절하지 않고 먹게 되었다. 그렇다고 삼겹살을 즐겨 먹는다는 말은 아니고 고수가 좋다는 말이다.   


나는 고수를 먹을 때 주로 쌀국수와 함께 먹는다. 동남아를 여행하다 보면 쌀국수를 자주 먹게 된다. 방콕의 와타나파닛에서 먹었던 쌀국수는 진한 소고기 국물이 느끼했지만, 고수와 라임을 넣고 먹으니 괜찮았다. 다낭의 퍼홍에서 먹었던 쌀국수는 맑은 닭고기 육수에 가는 면발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국물에서 고수 향이 은은하게 올라와서 좋았다. 라오스를 여행할 때는 쌀국수를 연이어 이틀이나 먹었다. 방비엥에서 먹은 쌀국수는 이제까지 먹은 쌀국수 중에 내 입맛에 가장 잘 맞았다. 고수와 라임을 마음대로 넣어 먹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던 것 같다.




 


지난 주에 방비엥에 갔을 때 리버사이드 호텔에서 이틀을 묵었다. 호텔 조식으로 쌀국수가 나왔는데 큰 기대감이 없었다. 맛집도 아니고 호텔의 조식에서 현지식이 제공된다는 것이 미더웠다. 하지만 예상을 깨뜨리고 호텔에서 나온 쌀국수의 맛은 만족스러웠다. 고깃국물이 기름지고 진한 태국의 쌀국수와 깔끔하다 못해 밍밍한 베트남 쌀국수의 딱 중간 맛이었다.


 호텔 식당에 뷔페식으로 차려진 쌀국수는 쌀국수를 미리 그릇에 담아놓는다. 손님이 국수 그릇을 집어 들면 호텔 직원은 연갈색의 고깃국물을 부어준다. 덩어리로 뭉쳐있던 쌀국수가 따끈한 육수를 만나면 힘없이 풀어진다. 그때 다양한 토핑을 먹는 사람이 직접 선택해서 넣을 수 있다. 나는 쌀국수 그릇에 잘게 썬 배추와 튀김가루를 넣고, 쫑쫑 다져놓은 고수를 수저로 듬뿍 떠서 넣었다. 라임도 두 조각 손으로 꽉 짜서 뿌렸다.


리버사이드 호텔 앞에는 숑강이 흘렀다. 식당은 바쁘게 흐르는 강물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었다. 이른 아침, 둥그런 산 위로 말갛게 세수하고 나온 듯한 햇살이 숑강 위로 부서져 내렸다. 탁자 위에 놓은 쌀국수에서는 고수 향이 퍼졌다. 후루룩 쌀국수 한 입 먹자마자“와”하는 탄성이 나왔다. 고깃국물과 라임의 상큼한 맛 때문에, 머릿속까지 시원해졌다. 거기에다 고수의 향긋함에 눈이 커지고 어깨가 들썩거렸다. 강물 냄새와 함께 어우러진 고수 향은 순박하지만 진한 라오스의 맛이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방비엥에서 이틀 연속 먹었던 쌀국수가 자꾸 생각났다. 숑강을 바라보며 먹었던 쌀국수 그릇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내가 사는 전주에도 유명한 쌀국수 가게가 있지만, 방비엥에서 먹은 그 맛은 아니다. 그렇다고 집에서 쌀국수를 만들어 먹자니 보통 복잡한 일이 아니었다. 몇 시간을 들여 고깃국물을 내야 한다. 고수와 라임도 구해야 한다. 쌀국수도 필요하다. 당장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 쌀국수여!






그이에게 라오스에서 가장 좋았던 때는 숑강 앞에서 쌀국수를 먹던 시간이라고 말했다. 또 먹었으면 참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이가 말했다. 마트에 쌀국수 컵라면이 있지 않느냐고. 거기에 고수를 넣어 먹으면 라오스의 쌀국수 맛이 나지 않겠느냐고. 유레카!


설레는 마음으로 마트에서 쌀국수 컵라면 두 개를 들고 왔다. 고수와 함께. 끓는 물을 컵라면에 넣고 잘게 다진 고수를 한 수저 듬뿍 넣었다. 라임 대신 레몬즙도 서너 방울 떨어뜨렸다. 쌀국수가 퍼지는 동안 컵라면 뚜껑 사이로 고수 향이 솔솔 풍겼다.


 그이 컵라면에도 고수를 넣으라 했다. 그런데 고개를 흔든다. 자기는 고수 향이 싫다며. 아니, 고수 향이 싫다고? 라오스에선 아무 말 없이 잘 먹었잖아. 결국, 나 혼자 라오스식 쌀국수를 먹었다. 고수 향이 쌀국수 컵라면과 어울리니 근사했다.


고수에서 나는 냄새는 알데하이드이다. 고수 향이 싫은 사람들은 고수를 짓이겨 페스토를 만들어 먹으면 좋단다. 알데하이드가 휘발성이기 때문에 짓이기면 향이 약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한다. 그이와 함께 고수를 즐기기 위해 고수 페스토를 만들어봐야겠다.


고수를 자주 먹으면 좋은 점은 항산화 성분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풍부하게 들어있는 베타카로틴은 노화의 원인인 활성산소를 없애주는 효과가 탁월하다고 한다. 이 외에도 칼슘과 비타민 K가 들어있어 뼈 건강에 좋단다. 칼륨도 풍부하고 예로부터 건위제로 사용될 만큼 소화에도 도움을 준다고 하니 자주 먹으면 좋을 것 같다. 물론 적당량을 먹는 것은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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