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여러 가지 재료가 한 그릇에 어울려 맛을 내는 비빔밥만큼이나 다양한 채소와 고기가 어우러진 음식이 있다. 잔칫상이나 명절 상에 자주 오르는 잡채다. 잡채는 원래 익힌 여러 가지 나물을 섞은 후에 양념해서 상에 올리던 궁중음식이었다고 한다.
잡채는 조선 시대에 이충이라는 사람이 광해군에게 진상해서 왕의 입맛을 사로잡아 벼슬을 하사 받았을 정도로 맛이 뛰어났다고 한다. 그 시절의 잡채는 채소를 일일이 썰어서 볶은 다음 그릇에 담고, 꿩고기 삶은 국물에 된장을 섞고 밀가루를 풀어 걸쭉하게 해서 뿌렸다고 한다. 상상만 해도 고급스럽고 맛있었을 것 같다. 궁금한 맛이기도 하고 말이다.
요즘처럼 당면이 들어간 잡채는 황해도 사리원에 당면공장이 생기면서 1919년에 처음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로 1930년대 이후에 잡채를 만들 때 본격적으로 당면을 넣어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당면을 부드럽게 삶아서 건진 후에 시금치와 당근, 버섯, 양파, 고기를 채 썰어 볶아 무쳐내는 잡채는 불고기, 비빔밥과 함께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다. 잡채 안에 들어간 달큼하고 짭조름한 당면의 맛과 탱글탱글한 식감을 외국인들이 아주 좋아한다고 들었다.
잡채를 떠올리면 당면이 먼저 생각날 정도로 요즘 먹는 잡채는 당면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나는 당면을 좋아하지 않는다. 당면은 고구마나 감자에 들어있는 녹말을 가루로 내서 만든 국수다. 그러니 밀가루보다 칼로리가 높아 혈당지수를 올리는 주범이고 살찌는 음식이다. 그렇다고 당면을 아예 안 넣고 조선 시대 잡채처럼 만들기는 어렵기도 하고 아쉽다.
당면을 덜 먹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다가 당면 분량을 반으로 줄이고 대신 콩나물과 묵은지를 넣고 잡채를 만들었다. 이게 웬일인가. 콩나물의 아삭함과 묵은지의 깊은 맛이 당면과 어우러지니 기가 막혔다. 광해군이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큰 벼슬 한자리 따내는 것은 문제없을 맛이었다. 그 이후로 느끼하지 않은 콩나물 김치 잡채는 나의 시그니처 메뉴가 되었다.
콩나물 잡채 만드는 법
재료: 당면, 콩나물, 왕새우, 당근, 새발 나물, 들기름, 통깨, 간장, 흑설탕, 마늘
1. 당면은 미지근한 물에 불려 삶은 다음 양념(간장, 들기름, 마늘, 흑설탕, 통깨)해두고 묵은 김치는 씻어서 찢은 다음 물에 잠시 담가두었다가 물기를 뺀다.
2. 콩나물과 세발 나물은 살짝 삶아서 각각 양념해두고(간장, 들기름, 마늘, 통깨), 당근은 채 썬 다음 소금 약간을 넣고 볶는다.
3. 새우는 끓는 물에 데친 후, 껍질을 까서 반으로 포를 뜬다.
4. 모든 재료를 큰 그릇에 담고 섞은 다음 접시에 담는다.
콩나물 잡채는 모든 재료를 섞어서 접시에 담아내도 좋지만, 접시 가운데에 당면을 담고 콩나물과 당근, 세발나물과 새우살을 가장자리에 돌려가며 담으면 보기가 좋다. 상에 올린 다음 먹기 직전에 버무려 먹으면 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