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부자들에게 1억은 작은 돈일지 모른다. 하지만 내 삶의 궤적 위에서 1억은 늘 멀리서 빛나는 별 같았다. 예순다섯이 되도록 통장에 1억이라는 숫자가 머물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집을 사고팔며 잠시 스쳐 간 흔적이 있었을 뿐, 그 돈은 그림자처럼 오래 머물지 않았다.
이런 내가 어느 날 문득, ‘1억을 벌겠다’라는 다짐을 품게 되었다. 아이들 키우며 돈이 절실했던 젊은 날에도 하지 못한 생각을, 이제야 하게 된 것이다. 마음 한구석에서 작은 파문이 일었다.
‘정말 가능할까? 통장에 그런 숫자가 들어올 수 있을까?’
스스로 던진 질문은 한동안 허무하게 메아리쳤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본 동영상 하나가 내 안을 흔들었다. 성현우라는 이름의 의사. 그는 천만 원으로 시작해 5년 만에 55억을 만들었다고 했다. 자극적인 성공담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지만, 이상하게 그의 목소리에 오래 귀 기울이게 되었다. 그가 출연한 여러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주식투자로 돈 잃는 이유.”
“주가가 오르기 전 나타나는 신호.”
“싼 주식과 비싼 주식을 구분하는 법.”
제목만 봐도 솔깃했지만, 정작 나를 붙잡은 것은 그가 보여준 태도였다. 의사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는 미래를 두려워했다. 우리 아들도 의사이기에 의사들의 수입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알고 있었던 터라, 처음에는 그의 말을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어떤 사연이 있겠거니 하고 색안경 끼고 바라보았다. 그러나 영상을 끝까지 시청하면서 그의 직업보다 그의 투자 철학에 점차 신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는 주식 투자를 선택했지만, 흔히 말하는 ‘분산 투자’에 안주하지 않았다. 한 종목을 끝까지 지켜보며, 때로는 묵묵히 기다리고, 때로는 단호하게 결단하는 길을 걸었다. 위험을 피하지 않되,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 화면 너머에서 바라본 그의 모습은 단순히 성공한 투자자가 아니라, 자신의 원칙과 믿음을 꿋꿋이 지키는 사람 같았다.
무엇보다 그는 의사라는 직업을 소중히 여기며, 퇴근 후나 퇴근 전의 시간을 활용해서 끊임없이 주식을 공부해 나갔다. 특히 그의 영상에서 반복된 “시련 뒤에는 반드시 열매를 딸 수 있다”라는 말은 오래도록 마음속을 맴돌았다. 단순히 돈 버는 법을 알려주는 말이 아니었다. 실패와 손실, 고난과 기다림 속에서 견디고 나면 반드시 보상과 결실이 따른다는 의미였다.
처음에는 멀게만 느껴졌던 1억이라는 목표가, 이 영상을 만난 순간 조금씩 현실의 무게로 다가왔다. 시련의 시간을 견디는 것이 단순한 기다림이 아니라, 미래의 열매를 준비하는 과정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 순간, 내 투자 여정도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패하고 흔들리는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원칙과 신념을 붙들면 언젠가는 결실을 맞이할 수 있다는 믿음. 이런 믿음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수많은 차트와 그래프 앞에서 지레 포기했을 것이다.
성현우 의사가 전하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메시지는 내 마음속에 나침반처럼 자리 잡았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면 된다. 견디면 반드시 열매가 온다.’ 이 말들을 하나씩 곱씹으며, 단순한 투자 이야기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태도까지 배울 수 있었다. 젊은 의사에게 배우고 나자 아쉬움이 찾아왔다.
‘좀 더 일찍 이 세계를 알았더라면...’
그의 책 『개미 5년, 세후 55억』을 사서 읽었다. 처음엔 기법을 배우려 했지만, 책장을 덮고 나서 오래 남은 것은 그의 철학이었다.
“손실이 나더라도 자기 자신을 의심하지 마라. 내가 나를 믿지 못하면 세상 누구도 나를 믿어주지 않는다. 기법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만, 철학과 믿음은 언제나 굳건해야 한다. 넘어지면 다시 시작하면 된다. 다만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나는 이 문장을 오래 붙잡았다. 돈 버는 힘은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믿는 태도와 시간을 견디는 인내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어쩌면 나는 늘 스스로 의심하느라 한 발 내딛는데 머뭇거려 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달라졌다.
기업의 리포트를 읽을 때는 숫자 이면의 이야기를 상상하고, 경제 뉴스를 들을 때는 그 흐름 속에 내 삶이 어떻게 닿을지 생각했다. 작은 주가의 움직임에도 한때는 조급했지만, 지금은 조금 더 긴 호흡으로 바라보려 한다. 손실이 나면 그것을 실패라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한 발 더 깊이 배우고 있다는 증거로 여긴다.
이제 1억이라는 목표는 단순한 금액이 아니다. 이것은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고, 나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약속이었다. 언젠가 통장에 찍힐 1억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성과가 아니라, 이 여정을 통해 쌓아 온 믿음의 결과일 것이다. 오늘도 다짐한다. 넘어져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언젠가 그 별빛 같은 숫자가 통장에 머물기를 바란다고.
이런 마음을 굳게 먹으면서도 왜 1억을 모아야 하는지 목표가 떠오르지 않았다. 피천득의 수필 <은전 한 잎>의 주인공 노숙자처럼, 인간의 순수한 열망인지도, 은전 한 잎 그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는지도 몰랐다. 어느 날 우리 부부의 수입지출 규모를 묻던 아들에게 불쑥 앞으로 1억을 모으겠고 말했다. 아들은 나이 들어 무슨 수로 1억을 벌 것이며, 1억이 왜 필요한 거냐고 내 말을 받아쳤다. 주식해서 벌거라고 했더니 그러다 패가망신 당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며 가지고 있는 돈과 자기가 주는 용돈까지 싹 다 쓰라고 했다.
아들 말을 듣고 나니 이제까지 굳게 먹었던 마음이 흔들렸다.
‘목표도 없이 1억을 모은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데 얼마 후, 내 삶에 진짜로 1억이 필요한 날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