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투자하기 전, 우리는 종종 이렇게 묻는다.
“지금 이 돈으로 시작해도 될까?”
하지만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누구나 돈을 불리고 싶어 하지만, 돈이 목적이 되면 길을 잃는다. 투자 이전에 해야 할 일은, 자신의 현실을 정확히 바라봐야 한다. 재무상태를 아는 일은 단순히 잔고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인생의 지점에 서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그것은 ‘돈의 지도’를 그리는 동시에, ‘마음의 좌표’를 세우는 과정이다.
큰돈 투자하기 전, 남편과 함께 재무상태를 파악했다. 들어오는 금액과 매달 빠져나가는 고정비, 불규칙한 지출, 신용카드 결제 내역, 보험, 예금, 그리고 투자금까지. 재무상태를 파악하는 일은 귀찮기도 하고, 복잡해서 머리가 아팠다. 가계부를 오랫동안 쓰지 않아 아라비아 숫자만 봐도 어지럽고 스스로 민낯을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항목의 숫자를 노트에 하나하나 적어가며 수입과 지출을 기록했다. 특히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통장을 정리했다. 연금 들어오는 통장, 책 인세 들어오는 통장, 아이들 용돈 들어오는 통장 등등. 여러 개의 다양한 통장을 정리하다 보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재무상태를 파악한다는 것은 돈의 구조를 정리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일이었다. 어디에서 얼마가 들어오고, 어디에서 낭비하는지 알게 되자, 비로소 삶의 우선순위가 보였다.
재무상태를 파악하고 나서부터 돈이 필요하다는 막연한 생각에서 벗어나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우고 투자에 임했다.
“이번 해에는 반드시 1억을 만들자.”
우리가 세운 목표에 닿기 위해 종목 흐름을 세심히 살피고, 무지의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금씩 확신이 생겼다. 무엇보다 애널리스트들이 분석한 기업 정보를 찾아보며 도움받았다. 전문적인 그들의 분석은 큰 힘이 되었다. 이렇게 쌓은 1년이라는 시간과 시장의 좋은 흐름 덕분에 우리는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돈이 많으면 불안이 사라진다.”라고. 하지만 불안을 없애는 건 돈의 크기가 아니라 돈의 구조를 이해하는 일이다. 내 돈이 어디서 들어오고, 어디로 흘러가는지 아는 순간 마음에 통제감이 생긴다. 이런 통제감은 곧 ‘경제적 자존감’이다. 주식투자를 계기로 우리 부부만의 ‘재무지도’를 새로 그렸다. 은행 앱 열고, 신용카드 사용 내역 정리하고, 예금과 투자 비중을 계산했다. 그러다 보니 이상하게도 현실을 직면하는 용기 속에서 안정이 자라났다.
재무상태를 파악하는 일이 투자의 절반이다. 준비 없는 투자는 우연에 기대는 모험이고, 준비된 투자는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신뢰의 서약이다. 지금 당신이 투자라는 새로운 항해를 준비하고 있다면, 먼저 당신의 재무상태를 들여다보라.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출발의 확인이다. 당신이 서 있는 곳을 아는 순간, 나아갈 길이 비로소 명확해진다.
남편과 함께 재무제표를 파악하고 나서 얼마가 들어오고, 얼마를 쓰며, 무엇이 남는지 적어보니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지금의 생활 수준을 유지하려면, 한 달에 최소 이백만 원 정도의 추가 수익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모자라는 금액이 많지도, 적지도 않았다. 단지 우리가 익숙하게 살아온 삶의 온도를 유지해 줄 만큼의 숫자였다.
사람마다, 또 가정마다 필요한 돈의 크기는 다르다. 하지만 은퇴 후의 삶은 누구에게나 비슷한 고민을 안긴다. 수입은 줄어드는데, 지출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연금으로 생활하면 충분하다”라고,
“이제는 쓰는 걸 줄이고 비우면서 살면 된다”라고.
실제로 살아보니, 사람들의 말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줄어든 수입만큼 소비를 줄인다는 것은, 단지 돈을 덜 쓰는 문제가 아니라 삶의 리듬을 바꾸는 일이었다. 여전히 친구를 만나 커피 한 잔 마시고 싶고, 계절이 바뀌면 새 옷 한 벌쯤 사 입고 싶다. 때로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 낯선 바람을 맞고 싶은 마음도 든다. 누군가에겐 사치로 보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이 모든 순간이 삶을 계속 살아가게 하는 작은 동력이다.
나이가 들수록 욕망이 줄어든다고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누리고 싶다. 이런 마음이 있기에, 여전히 돈을 관리하고 투자 공부하며 하루를 다르게 배운다. 언젠가는 여행이 귀찮아지고, 먹고 싶은 음식이 줄어들고, 물건에 대한 욕심이 사라질 날 오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직은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조금 더 풍부하게, 조금 더 나답게 살아가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노트북을 켜고 장이 열리길 기다린다. 주식시장에서 내는 수익이 단지 숫자가 아니라, 삶의 온도를 지켜주는 불씨가 되길 바라면서.
돈은 거울이다. 돈의 거울은 습관을, 욕망을, 그리고 감정의 방향을 그대로 비춘다. 거울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볼 때, 비로소 투자할 자격이 생긴다. 투자란 결국 “나의 재정 상태와 필요를 얼마나 잘 아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 앞에서 매수 버튼을 누르기 전, 늘 이렇게 묻는다.
“이 돈이 내 삶을 흔들지 않을 만큼 여유로운가?”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을 때 거래를 시작한다. 이것이 마음의 안전벨트이자,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얻은 우리 부부의 투자 원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