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는 한국 마트가 정말 친절하다고 했다. 그는 우리 집에서 5분 거리의 마트에서 장을 봤는데, 대형마트는 아니지만 그냥 동네마트라기엔 규모가 꽤 큰 곳이었다. 그는 자기가 가면 아주머니들이 자기에게 한국말을 잘한다며 칭찬도 해주시고, 요리하는 방법도 알려주신다면서 nice ladies라고 했다. 한국은 마트에서 레시피도 알려주냐며 신기해했고 나는 그가 외국인이어서 그런 경험을 한 거라고 알려줬다. 외국인 혼자 헤매고 있으니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 것 같아 감사했다.
그러다 한 번은 둘이 같이 장을 보러 갔는데 장을 보러 들어가자마자 아주머니 두 분이 바로 물어보셨다. 아가씨가 00대에서 000 공부한다는 그 여자친구구나?
그가 마트 직원분들과 그 정도로 열심히 수다를 떨었는지는 몰랐었다. 나는 1년 반 가량을 거기서 장 보면서도 직원분들과 한 번도 얘기해 본 적이 없는데 그는 한 달 만에 친해졌다니... 그 친화력이 대단하다 싶었다.
그 후로 같이 장을 볼 때마다 아주머니들은 반갑게 인사를 해주셨고 내가 마트에 혼자 갈 때도 남자친구는 잘 있는지 물어보셨다.
그는 한국에서는 홍시가 일찍 나온다며 좋아했다. 그가 좋아하는 석가나 왁스애플은 한국에선 찾을 수 없었는데 감은 한국에도 많았다. 알고보니 대만사람들도 감으로 곶감을 만들어 먹었다.
어느 날 그와 마트에 갔는데 그가 감이 안 보인다며 열심히 찾았다. 그때는 11월 말이었기에 나는 당연히 이젠 안 나오지 않겠냐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그가 깜짝 놀랐다. "뭐? 감이 벌써 안 나온다고?"
알고 보니 대만에선 1월까지도 감이 나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감 더 많이 사 먹을걸!"
그는 겨울에 감을 못 먹는 게 슬픈지 장 보러 갈 때면 아주머니께 또 물었다.
감 없어요? 감?
아주머니들께선 늘 고개를 저으셨다. 쯧쯧... 이제 감 볼일은 없을 텐데 맨날 감을 찾네!
항상 야채코너와 과일코너 쪽에서 일하시던 분이 계셨는데 어느 날은 남자친구가 또 감을 찾자 말씀하셨다. "과일은 이러다 또 갑자기 들어올 수도 있어. 나오면 알려줄게." 헛된 희망을 품은 그는 마트에 갈 때마다 혹시나 했지만 매번 찾을 수 없었고 12월이 되니 감을 다시 만날 가능성은 아예 없어졌다.
하루는 집에 가는 길에 전화를 걸었더니 그가 신나서 말했다.
"감자야 우리 집에 감 있어!"
"오잉 어떻게?"
그가 마트에 가자 한 아주머니께서 파는 건 아니라 그냥 주는 거라며 감 세개를 주셨다고 했다. 무려 박스에 담아 안 흔들리게 고정까지 해서 넣어주셨다. 그 감은 평소에 먹던 감이랑 다르게 엄청 크고 끝이 도토리처럼 뾰족하게 생겼었는데 먹어보니 너무 맛있었다. 과육이 결이 그대로 느껴졌는데 '네가 그동안 먹은 감은 가짜고 내가 진짜 감이다!'를 외치는 감이었다.
이건 도대체 무슨 감이지? 이 감은 이 겨울에 어떻게 살아남을수 있었을까?
우리는 다음날 같이 마트에 갔고 그 아주머니를 찾았다. 과일코너에서 일하던 분이 주셨을 거라는 내 예상과 다르게 감을 주신 분은 계산을 해주시던 분이었다.
"이건 경북에서 온 대봉시야. 우리 오빠가 보내준 거를 내가 집에서 직접 익힌 건데 학생이 하도 감 찾아서 준거야. 이거는 자연적으로 익힌 거야."
그때 대봉시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12월 한겨울에 감을 얻어먹다니... 그것도 이렇게나 맛있는 감을... 감에 집착하는 외국인이 웃기다 하실 수도 있었는데 손수 익힌 귀한 감을 나눠주신 게 너무 감사했다.
그가 연습한 문장을 다시 한번 말했다. "저는 정말 감동받았어요."
아주머니는 웃으시면서 그 전날 그가 오늘 안 오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셨는데 와서 다행이었다고 하셨다.
그가 대만으로 돌아가고도 그 아주머니께선 나에게 그는 몇 학년인지, 나는 몇학년인지, 나중에 결혼을 할 건지도 물어보셨다.
어느 날은 장을 보는데 쓱 내 옆에 오시더니 그는 이제 한국에 안 오냐고 물으셨다. 나는 그때는 그가 교환학생으로 온 건데 관광비자는 국경이 닫혀서 당분간은 못 올 거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아주머니께서 대뜸 말씀하셨다.
"만약에 둘이 나중에 결혼하면 아가씨가 대만으로 가. 남자들은 남의 나라에서 적응을 못해. 우리 아들도 외국에서 살다가 이혼했어. 사이는 좋았는데 적응해서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여자가 가는 게 나아."
나는 남자친구처럼 넉살 좋게 대화하는 재주가 없었다. 당황해서 대답을 찾다가 그냥 알겠다고만 말씀드렸다.
그에게 내가 들은 얘기를 전해주니 그는 한국에 가면 꼭 그 마트에 가자고 했다. 하지만 그 아주머니는 언젠가부터 마트에서 보이지 않았다. 나도 그가 한국에 다시 들어오기 전에 이사를 했다.
한 번은 그와 그의 부모님과 둘러앉아 대화를 하는데 그가 한국에서 대봉시를 받았던 얘기를 했다. 그 아주머니의 호의가 남자친구 마음에 깊게 남은 것 같았다. 그는 지금 생각하면 감사의 의미로 우리도 뭐라도 마음 표현을 할걸 그랬다고 했다. 나도 가을이 되고 마트에 홍시가 보이면 외국 청년을 위해 집에서 직접 대봉시를 가져다 주신 그분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