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이 아니라고 할 때 옳다고 믿었던 길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갖고 홀로 길을 나설 수 있을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꿋꿋이 걸어 나가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막상 그 상황이 현실로 다가온다면 자신이 가졌던 의견이 흔들리거나, 혹시나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는 않았는지 의심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따지며 다수의 눈치를 살피게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1대 2 상황만 되어도 의견의 신빙성은 2쪽으로 기울기 쉽다. 그런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손꼽히는 세종대왕은 그 어려운 길을 수도 없이 꿋꿋이 걸어 내었다.
조선 초기 역사는 과거를 벗어나 새로운 기틀을 다지기 위한 피나는 권력다툼이 끊이지 않던 시기였다. 권력의 중심과 반대되는 의견은 피로서 응징하고, 그러한 응징에는 가족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특히 세종대왕은 정통 장자도 아니었던 사람으로서 친인척들의 피바람을 산 증인으로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 온 인물이다. 따라서 권력의 무서움도 알고 의견의 대립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도 잘 알고 있다. 그런 그가 조선의 시간을 만들고, 조선의 하늘을 만들고, 조선의 글자를 만들면서 전쟁으로 나라의 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으로 지목될지도 모르고, 지배층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권력의 중심 사대부들을 모두 등 돌리게 할 수도 있는 일들을 해냈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고뇌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얼마나 많은 용기와 담대함이 필요했는지 우리는 감히 가늠하지 못할 책임감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혀 모르는 상황보다 직접 경험으로 실패의 결과를 너무나 잘 알면서도 모험을 한다는 것은 두려움 속에서 큰 결단이었을 것이다.
가장 큰 권력을 쥐었지만 어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아슬아슬한 하루하루 속에서 반대를 무릅쓰고 백성만을 생각하며 불가능해 보였던 꿈을 실현한 세종대왕이 얼마나 무거운 책임감을 짊어지고 목표를 향해 달려갔을지 그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영화가 이번에 개봉한 '천문'이었다. 영화 '천문'을 관람하기 전에는 단지 백성을 향한 애민 정신을 제대로 실천한 성군 세종대왕과 세종대왕의 꿈을 실현시킨 기술자 장영실이 어떤 어려움과 과정 속에서 그 많은 결과물을 탄생시켰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를 본 지금은 무거운 책임감을 짊어지고 옳은 방향을 항상 고민했던 세종대왕. 수많은 반대와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수많은 불가능에 도전하는 과정,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하듯 세종대왕이 자신의 꿈을 함께 할 수 있었던 동반자 장영실을 만나 마음의 위로와 힘을 얻었던 잠시의 과정까지. 세종대왕이 살았던 조선의 다양한 모습을 만날 수 있었고, 그 시대를 살았던 다양한 사람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왕이라는 자리에서 얼마나 큰 책임감이 주어지는지. 그리고 그 자리에 섰다면 그 큰 책임감의 무게를 지혜롭게 견뎌내야 하고 그 외로움과 고독을 반드시 이겨내야 한다는 것. 함께 일하는 측근들도 믿을 수 없는 불안과 약해지기 쉬운 상황 속에서도 꿋꿋이 백성을 향한 마음 하나만으로 위대한 조선만의 역사가 탄생했다는 것. 그리고 세종대왕과 그 꿈을 함께 했던 장영실과의 관계를 통해 막중한 책임감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진정한 리더의 모습도 만날 수 있었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외세의 힘을 빌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이기적인 수많은 기득권층과 함께 나라를 이끌어가면서 그 무게를 감당하기도 버거웠을 터인데, 그 무게를 견디는 것에서 더 나아가 끊임없이 발전하는 세종의 모습은 현대에도 꼭 필요한 리더의 모습이었다. 세월을 훨씬 앞질러 생각하며 많은 이로움을 위한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 소통을 통해 의견을 논할 줄 아는 지혜, 신분을 막론하고 실력으로 그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폭넓은 시야, 자만하지 않고 계속 지식을 넓힐 줄 아는 뜨거운 열정까지.
시간이 흘러 기술의 발전이 360도 뒤바뀐 지금, 편리함은 실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삶이 더 윤택해졌지만 오히려 진정한 리더의 모습,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모습은 찾기 힘든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아쉽다. 자신의 권력을 그저 자신의 이익과 자신의 이념을 지키는 데에만 사용하고 그 힘을 유용한 곳에 나누고 베푸는 따뜻함은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삶의 질이 향상된 만큼 옳은 가치를 추구하는 마음도 그만큼 많이 강해졌으면 좋겠다.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꿈꾸고, 꿈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은 현실이 되면 좋겠다. 권력에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그 권력을 이용해 이로움을 행할 수 있는 사람만이 리더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천문'이 보여준 시대에서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권력밖에 있는 사람들의 삶은 그다지 차이가 없는 것 같아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