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산의 부장들'
충성이란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정성, 특히 임금이나 국가, 윗사람 등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충성이란 나를 버리고 다른 것을 위해 나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이다. 그것이 옳은 방향이라면 위대한 업적으로 칭송받는 산물이 남겠지만, 그것이 옳지 않은 방향이라면.
개인의 이득을 위해서 충성을 저버리는 것이 이기적인 매국이라면, 단지 개인의 희생만이 강요된 충성은 그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남산의 부장들이 보여주는 충성은 앉은자리의 권력의 힘이 부끄러울 정도로 단지 개인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것만 보였다. 그래서 모든 인물이 슬펐다. 흘러간 역사를 알고 있기에 더 아쉬웠다.
대통령은 무력으로 차지한 대통령이라는 권력의 자리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고독함을 맛보아야 했고, 그 자리를 만들어낸 수많은 뒷받침 역할들은 대의를 위한 일에 모든 것을 바치기보다 최고의 권력에 밉보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잘못된 선택을 했다.
박 대통령은 단지 개인의 이득만을 위해 혁명을 일으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를 따르는 이들은 단지 개인의 이득을 위해서만 동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이 하는 일에 그 어디나 완벽함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니 그 혁명에는 불순한 이물질도 끼어있었겠지만, 좋은 대의도 분명 함께 했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대의가 더 넓게 퍼져가는 대신 이물질이 점점 번져가면서 혁명의 의도는 불순한 방향으로만 흘러갔고, 누구의 행복도 없는 개인의 야욕만이 판치는 세계를 만들어냈다.
박 대통령의 '임자 옆에는 내가 있잖아, 임자 마음대로 해'라는 한마디는 그 어떤 칼보다 무서운 양날의 검으로 섬뜩한 여운을 남겼다. 그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은 나라를 위한 일이라는 생각에 과도하게 자신을 희생하며 모든 잣대를 오로지 하나의 권력에게만 맞춰 살아갔지만, 그 어떤 명예도 행복도 안정도 받을 수 없었다. 결국 불행한 결과만 있을 뿐이었다.
나도 나를 잘 모를 때가 있다. 좋은 기분으로 하다가도 타인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나빠지기도 하고, 오해를 하기도 하고, 한 장면이 눈에 들어와 갑자기 판단력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미세한 변화로 인해 하루에도 몇 번씩 후회를 하게 되는 것이 사람이다. 그런데 그 잣대를 타인에게 맞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나도 만족시키기 어려운 마당에 타인을 만족시키기란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기준에 어떻게 맞출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 사람도 나와 똑같은 사람인데 완벽한 기준이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
나라를 위해 한 권력을 뒷받침했던 인물들이 대의를 위해 모두가 한마음으로, 다른 욕심은 모두 버리고 나라를 위한 마음만 가지고 함께 협력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누구나 앉을 수 없는 권력의 칼을 쥔 역할만큼, 목적이 같은 역할이 주어진만큼 그 무게를 지혜롭게 감당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차피 나라를 위해 함께 자리를 한만큼 개인의 야욕과 명예, 만족을 버리고,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나라를 위한 논의만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경호실장이 자신의 본분만 지켰다면 이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왜 같은 목적으로 같이 앉아 있는 자리에서 같은 편을 제거하고 나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버릴 수 없는 것일까. 한참 지난 과거의 역사지만 지금의 현실도 마찬가지로 흘러가는 시대의 흐름에 영화를 보면서 더 서글펐다.
회사에서도 학교에서도 나라일을 책임지는 정부에서도 가족이 함께 하는 가정에서도 우리는 제각기 다른 삶을 살지만 공동체 안에서는 모두 같은 목적으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누군가가 사라져야 내가 살아남는 사냥의 시대가 아니라 함께 협력하고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현재의 발전된 사회다. 그런데 왜 우리는 꼭 나만 살아야 만족을 하는지 모르겠다. 막상 그렇게 누군가를 누르고 자리에 앉아보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으면서 후회할 텐데.
남산의 부장들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최고의 권력에서도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