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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고운 Feb 19. 2022

꽃마리를 기다리는 마음

봄 이언만 봄이 아닌, 숨 가쁜 시간을 견디며       

입춘을 넘어 모레가 雨水인데

매서운 추위에 쫓기듯 퇴근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가 9만 명을 넘어 내일엔 10만 명도 넘을 듯합니다.

오미크론 변이가 모두를 할퀴고 지나가야 비로소 꽃이 보이고 웃음소리도 들을 수 있지 않을까요?


작은 풀꽃에 마음을 뺏겨 

봄이면 무거운 카메라를 짊어지고 땅바닥을 기어 다닌다.

너무 늦게 찾은 사랑,

땅바닥에 엎드려 삼각대를 세워 육안으로는 쉽게 보기도 어려운 작은 풀꽃에 수동 매크로 렌즈 초점을 맞추고 연신 리모컨을 눌러 촬영하고 일어서면 무릎, 팔다리 뼈마디가 뚜둑! 따닥! 비명을 지른다.


 


                                                            꽃마리를 사랑해     

  요즘 작은 들꽃을 촬영하는 재미에 빠졌다. 맨눈으로 잘 보이지도 않는 그 작은 꽃을 촬영하여 집에 돌아와 컴퓨터 화면에서 열었을 때 드러내는 그 아름다움이라니! 거들떠보지도 않던 풀꽃에 깃든 우주를 발견하는 기쁨은 젊은 날 사랑을 알면서 느끼던 희열에 뒤지지 않는다.     


  뒤늦게 알아버린 사랑은 틈만 나면 날 풀밭으로, 공원으로, 천변으로 이끌어간다. 일찍 알았더라면, 몸이 좀 더 유연한 시절에 알았더라면 좋은 사진을 얼마든지 찍을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운 생각이 날 안타깝게 한다. 허술한 몸으로 땅바닥에 쪼그려 앉아서 삼각대를 낮추 대고 수동 렌즈 초점을 맞추어 몇 커트 찍고 일어서면 무릎과 발목관절에서 ‘우둑 두둑’ 소리가 나고 목이 뻣뻣해서 한참씩 쉬어야 한다.


  미풍에도 쉼 없이 흔들리는 풀꽃은 셔터 속도를 높여 촬영해도 흔들리기 일쑤다. 삼각대를 세우고 흔들리는 녀석들의 움직임에 맞추어 촬영하는 일은 어렵다. 한 번 나가면 수백 컷을 담아오지만, 그 가운데 맘에 드는 건 몇 장 안 된다. 끙끙 앓아가며 촬영하고 돌아올 즈음엔 녹초가 되지만, 도대체 멈출 수 없는 작업이다. 그 작은 꽃과 봉오리, 잎에 난 섬모에 포커스를 맞추어 한 장의 사진이 만들어지는 건 아예 행운에 속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진을 보며 얻는 흐뭇한 행복은 순전히 덤이다.




  우주의 크기는 137억 광년 거리라고 한다. 빛이 1초에 약 30만㎞를 가는데, 137억 년 동안 빛이 가는 거리는 얼마일까? 우리의 수 개념으로는 표현조차 불가능한 거리다. 지구의 지름이 12,765㎞이라지만 우주 가운데 지구는 밀가루 한 알에도 미치지 못하는 크기다. 그 작은 지구의 대한민국 전주시의 삼천 천변에 핀 좁쌀보다 작은 풀꽃, 그 속에 우주가 들어있다.

  그 작은 풀꽃이 거대한 우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2㎜ 크기는 137억 광년이라는 거대함 속에서 존재의 크기를 표현할 수조차 없다. 하지만 그 작은 꽃 안에는 우주의 섭리가 다 들어있다. 탄생과 죽음의 흐름 속에 생명의 기쁨과 결실을 위한 유혹도 있다. 작은 꽃을 찾는 작은 곤충과 그 작은 곤충을 노려 거미줄을 치고 기다리는 작은 거미도 있다. 작은 세계에도 있을 건 다 있고 외려 큰 것들보다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지난봄, 풀이 돋기도 전에 가장 먼저 핀 작은 풀꽃은 ‘큰 개불알꽃’이었다. 그리고 ‘별꽃’과 ‘지칭개 나물’, ‘꽃마리’ 등을 처음으로 만났다. 인터넷에서 이름을 찾아 어렵게 통성명을 했다. 그렇게 만나 얼굴을 익힌 꽃들이 내게로 왔을 때, 나는 그만 사랑에 퐁당 빠졌다. 그토록 작은 것이 그처럼 아름답고 멋진 자태를 보여주리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세상에 어떤 꽃이 그들보다 아름다우랴.


  중첩되지 않고 단순한 듯 아기자기한 그 꽃들. 그 꽃잎들은 장미나 동백처럼 꽃잎이 겹겹으로 붙어 숨지 않아 단순하고 솔직했다. 아무것도 감추지 않고 온통 드러내 보여주는 순수함과 앙증맞은 자태에 매료되었다. 간드러지고 나긋해서 여린 듯하지만, 바람과 꽃샘추위를 다 견디고 피어 황홀한 자태를 뽐냈다. 




  렌즈 테크닉으로 불필요한 부분은 흐려 생략하고 꽃잎과 봉오리, 치밀하게 일어선 섬모를 표현해낸 사진은 난을 묵화로 쳐낸 듯 고졸한 자태가 내 가슴을 뛰게 했다. 가녀린 몸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꽃에 초점을 맞추고 촬영하는 일은 늙은 내 체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힘든 것보다 얻는 기쁨이 훨씬 컸기에 자꾸만 풀밭을 찾아가야 했다.     


  내가 봄부터 촬영한 사진 가운데 제일 좋아하는 풀꽃은 ‘꽃마리’이다. 하늘색 꽃잎에 노란 씨방이 보이는 2㎜ 정도 크기의 꽃이 어긋나기 차례로 피는 아주 작은 꽃이다. 무심히 지나치면 볼 수 없을 만큼 작고 가냘픈 꽃마리는 매크로 렌즈로 촬영해보아야 비로소 그 멋진 자태를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찍은 사진 가운데서도 특별히 아직 다 피지 않아 반쯤 꽃잎을 연 꽃마리 사진을 좋아한다. 몇 번이나 꽃마리를 촬영했지만, 활짝 핀 꽃은 조화처럼 무표정했고 평평해서 별 감흥이 일지 않았다. 다행스럽게 꽃마리는 개화 시기가 길고 여기저기 핀 곳이 많아 여러 차례 다시 촬영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떤 날 우중충하고 꽃샘바람이 강하게 불던 공원에서 꽃잎이 덜 열린 꽃마리를 만났다.


   꽃잎과 봉오리의 섬모에만 초점이 맞아 내 눈에 가득 들어오는 그 느낌은 최고의 미인을 앞에 둔 숫총각의 가슴처럼 방망이질했다. 조금 더 대비와 채도를 높여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설정해서 다시 본 꽃마리는 내게 현기증이 일게 했다. 그 작은 꽃이 저리도 아름다울 수 있다니! 그 사진을 본 뒤에 여러 차례 다른 풀꽃에서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보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어느새 6월이 왔다. 작은 풀꽃들은 뜨거운 태양에 시들고 녹아 없어지거나 씨앗만 매달린 채 말라가는 계절이다. 좀 더 부지런했더라면 좋은 사진을 만들 수 있었을 터인데 이런저런 허사에 시간을 들이느라 때를 놓쳤다. 여름과 가을에 피는 풀꽃도 있다니 찾아보아야 할 터이지만, 만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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