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
연말을 맞아 동네에 새로 생긴 일식집에 갔다. 분명 처음 오는 곳인데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왜지?
곰곰이 그 낯섦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캐나다에 머물던 시절, 당시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주 3일 초밥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이 있다. 어느 월요일의 오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일하던 초밥집에 한 남자가 들어왔다. 흑인과 백인의 매력이 묘하게 섞인 남자는 마치 영화 화면을 뚫고 나온 듯 뛰어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미국에서 여행을 왔다는 그는 낯선 캐나다 동전들을 손바닥에 가득 펼쳐 보이며 난처한 듯 웃었다. 그는 캐나다 돈이 익숙지 않아 동전이 자꾸 쌓여만 간다며 동전을 사용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겠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아르바이트생으로서 손님에게 당연히 친절을 베풀어야 하기에-물론 그런 외모를 보며 사심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다소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오브 콜스~"
그 찰나 옆에서 초밥을 고르던 젊은 여성이 불쑥 끼어들었다.
"오, 제가 알려줄게요! 미국 어디서 왔어요? 캐나다에는 언제까지 있을 거예요?"
그녀는 남자가 질문에 답을 하기도 전에 다음 질문들을 속사포로 이어갔다. 동전은? 안중에도 없다. 하지만 경쟁자가 또 있었으니...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어느새 남자 곁에 서 있었다. 할머니는 남자의 팔을 살며시 잡았다. 나이 든 여성이 젊은 남자에게 가벼운 스킨십을 하는 데에 사회적 시선은 편견 없이 아주 관대했다. 단지 그 남자에게 먼저 말을 걸었던 젊은 여성만 할머니를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볼 뿐. 할머니는 남자의 팔을 놓지 않고 남자가 펼쳐 둔 동전에 시선을 두고 말했다.
"캐나다 동전은 내가 제일 잘 알지. 관광지는 어디 어디 다녀봤나?"
졸지에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그 진풍경을 구경하게 되었다. 젊은 아가씨부터 반백의 할머니까지, 국적과 나이를 불문하고 '아름다운 것'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그 순수한 열망이라니. 잘생긴 외모는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단순히 심미적인 즐거움을 넘어섰다.
창문 밖 풍경과 테이블 배치 등 가족과 함께 찾은 일식당이 추억 속 그 초밥집과 비슷해서 어딘가 익숙한 반가움이 들었나 보다. 덕분에 떠오른 옛 추억에 잠시 나도 리즈 시절로 돌아가 보았다. 추억을 되살리다 보니 문득 그날의 동전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 월요일의 일은 20여 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학 시절을 추억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가만 생각하니 그것도 월요일을 견디게 하는 비타민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
잘생긴 이방인 한 명을 두고 국경과 세대를 초월해 벌어진 그 유쾌한 ‘친절 경쟁’이라니...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던 시간도 이젠 오랜 추억이 되어버렸지만 누구에게나 월요일을 견디게 할 그런 '아름다운 기억' 하나쯤은 찾아보면 분명 있지 않을까.
요즘처럼 폰을 대고 결제하는 세상이었다면 결코 없었을 눈부신 시간들.
주머니 속에서 짤랑거리던 동전 소리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