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광고보다 커머스 시대
누구나 자신이 기울인 노력에 걸맞는 보상을 받길 원할 것이다. 인플루언서가 되는 과정에도 당연히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기껏 고생해놓고 애먼 데 에너지를 쏟은 꼴을 면하고 싶다면 MCN들의 비즈니스 트렌드를 파악해보기를 권한다. 그들은 인플루언서들의 동업자이기에 인플루언서로서 벌 수 있는 큰 돈이 어디로 흐르고 있는 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돌이나 연예인들이 연예 기획사에 소속된다면 인플루언서들은 MCN에 소속된다. Multi-Channel Network의 줄임말인 MCN은 쉽게 말해 인플루언서 소속사로, 연예 기획사와 동일하게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속하는 업계이다. 캐스팅부터 육성, 콘텐츠 제작, 채널 성장 등 소속 인플루언서들의 체계적인 성장을 돕는 각종 활동들을 지원하고 기업들로부터 일감을 수주 및 중개해주는 일을 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이슈에 보호자로서 법적 대처를 함께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들의 그라운드는 뉴미디어 시장이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속성을 가진 곳이기 때문에 모든 MCN 기업들은 그때 그때 흐름에 맞는 신규 비즈니스 모델 개발이 상시 숙제다. 또한 MCN의 수익 구조는 대개 소속 인플루언서와 브랜드를 연결해주는 대가로 얻는 수수료 모델이기에 이들은 멋진 한 건을 해내기 위해 늘 브랜드들의 움직임을 예민하게 주시하고 있다. 따라서 MCN은 인플루언서 마케팅 시장의 흐름을 상당히 예리하게 캐치해내는 고단수들이라고 볼 수 있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숏폼이라는 형태가 전무했으나 어느 순간부터 열린 숏폼 대세 트렌드에 따라 현재 숏폼 비즈니스를 추가하지 않은 MCN이 없는 것처럼 이들은 돈이 흐르는 금맥을 탐지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특성화 고등학교처럼 간혹 특정 분야를 대상으로 하는 MCN들이 탄생하기도 하는데 전부 다 인플루언서로서 큰 돈을 벌 수 있는 영역이라고 봐도 좋다. 미래를 예측하는 단서는 역사에서 나온다. 내가 뛰는 필드라면 과거부터 이어져오는 흐름을 파악할 필요가 다분하다.
뉴미디어 시대가 농익어 가던 2010년대 초중반 무렵 대한민국 MCN 산업도 꿈틀대기 시작했다. 유튜브를 중심으로 소수의 크리에이터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던 그때, 연예인들의 전유물이었던 광고 영역에 인플루언서들이 하나 둘 등판하기 시작했다. 2015년쯤엔 인스타그램이 대중화되면서 인플루언서라는 개념도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201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인플루언서가 마케팅 주역으로 자리매김하며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기업들의 필수 코스가 되는 수순으로까지 이어졌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2 광고산업조사>에 따르면 뉴미디어의 광고 취급액은 레거시 미디어를 크게 웃돌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금은 규모나 성장 속도 등 만면에서 인플루언서의 무대인 뉴미디어 그중에서도 SNS 마케팅이 대세라는 것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대한민국 MCN 산업이 탄력받기 시작한 지는 사실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2013년 한국 최초로 출범한 CJ E&M의 DIA TV를 필두로 MCN 업계가 본격 주가를 올리기 시작한 건 2018년도 무렵이었다. 5년 남짓 된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플랫폼 수익 구조와 알고리즘 변화, 콘텐츠 신유형 등장 등의 이슈로 인해 MCN 비즈니스 모델에 꽤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업계에서 일하며 크게 체감됐던 것들 위주로 설명해보겠다.
MCN은 당대 대세인 SNS 플랫폼 스타들을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사람들이다.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틱톡 순으로 대세 플랫폼이 순차적으로 변함에 따라 그들의 협업 대상도 점차 다각화 되었다. 초기 네이버 파워 블로거들과도 일을 했던 MCN들은 유튜버를 지나 지금은 메타버스 속 버추얼 인플루언서들과도 일을 한다. 제각기 명칭도 플랫폼도 다르지만 SNS 스타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앞 챕터에서 설명한 인플루언서 직업 본분에 충실한 자들로서 그들을 따르는 집단의 규모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광고주들의 니즈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 자기네 상품을 한 번이라도 더 노출하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하루에 수용 불가능한 수의 사람들이 방문하는 SNS 스타들의 계정. 당연히 광고주들의 1순위 광고 집행 대상이 된다.
이를 간파한 MCN은 인플루언서와 광고주 사이에서 광고 비즈니스를 오래 시행해왔다. 회사 전속인 경우에는 전속 계약 시 설정한 RS(Revenue Share; 수익 분배 비율)에 따라 월 광고비 정산 내역에서 일정 비율을 취득하고 비전속 파트너십 협업의 경우는 광고 매칭에 따른 건별 수수료를 받는 식으로 진행된다. 대개는 광고 집행을 원하는 광고주가 컨택을 해오는 인바운드 식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 광고를 따와서 연결 및 매칭해주는 아웃바운드 영업도 진행한다. 단순 협찬, PPL에서 브랜디드 콘텐츠, 콜라보 콘텐츠 등 광고 유형도 갈수록 다양해짐에 따라 MCN들은 각 집행 상황에 맞는 광고 지원 내용도 넓혀왔다.
광고 효율이 톡톡하다는 것이 알려지며 큰 인기를 끌게 된 인플루언서 마케팅은 대개 이러한 광고 집행을 말한다. 만일 특정 인플루언서에게 광고를 의뢰하고 싶은 광고주라면 인플루언서가 속해 있는 MCN에 연락해 회사를 통해 광고를 집행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2019년 유튜버 뒷광고 논란
MCN 시대의 개막부터 줄곧 뜨거운 사랑을 받아온 광고. 여전히 인플루언서 마케팅은 현재 진행형이지만 아쉽게도 그 위용은 과거 전성기 때 만큼은 절대 아니다. 한때 광고는 MCN 연 매출의 태반을 차지하며 기업을 상장하니 마니 하던 수익 기여 일등공신이었지만 한 유튜버가 폭로하며 시작된 뒷광고 논란으로 인해 전성기의 끝을 맞이하게 되었다.
2019년 유튜버 뒷광고 논란은 그야말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유튜브는 안 보는 사람이 더 드문 제 2의 TV같은 존재인데 당시 논란에 휩싸이지 않은 채널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국민이 분노한 사건, 비유를 하자면 믿었던 내 언니가 돈에 눈이 멀어 그동안 나에게 거짓말을 해온 것이 밝혀진 셈이었기에 팬들의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인플루언서들이 광고로 먹고 산다는 것은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때문에 팬이라면 광고를 스킵하지 않고 전부 봐주기도 하고 되려 광고를 더 하라고 부추기기도 한다. 이렇듯 원래 기브 앤 테이크가 잘 되는 게 팬과 인플루언서의 관계이다. 그런데 괜히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광고이면서 광고 아닌 척을 해대니 신뢰 문제로까지 번지며 등 돌리는 팬들이 대거 양산됐던 것이다. 진짜 문제는 인플루언서들이 허위로 추천한 상품을 팬들이 대량 구매하며 구매 책임까지 떠안았다는 것이다. 소비자 기만에 이어 구매 책임 전가까지. 도의적 책임이 매우 크다. 다행히 해당 논란 이후 공정거래위원회가 강화된 표시광고법을 시행하긴 했지만 그로 인해 영상 내 고지하게 된 유료광고 표시는 마치 뒷광고 파문을 연상케 하는 스위치 마냥 작용하는 효과가 있었다. 광고는 덮어 놓고 스킵이라는 분위기도 그쯤부터 형성됐고 그렇게 광고는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 MCN들의 넥스트 수익 모델, 커머스는 이러한 배경 위에서 점차 주목받게 됐다.
마켓
2015년을 전후하여 넥스트 SNS는 인스타그램이라는 흐름이 점차 또렷해졌다. 그리하여 그쯤 네이버 파워블로거들이 대거 인스타그램으로 본진을 갈아타거나 확장하는 흐름을 보였다. 다른 플랫폼들과 달리 인스타그램은 비주얼 중심적인 성격이 강하다. 예쁜 것, 근사한 것, 좋아 보이는 것을 직관적으로 전시하기 좋은 플랫폼 특징상 인스타그램은 유난히 쇼핑이 활발한 공간으로 진화했다. 사실 이전의 파워블로거들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블로그 마켓이라는 형태였는데 이웃이 판매글 아래 비밀 댓글을 남기면 블로그 주인이 구매 정보를 달아주는 식으로 거래가 진행됐다. 이렇듯 개인에게 물건을 사고 파는 '마켓'이라는 형태는 꽤 오래 지속돼 온 온라인 상거래 방식이다. 쇼핑하기 최적의 공간인 인스타그램이 나타나며 더욱 활성화된 것 뿐이다.
공동구매 혹은 주문제작 방식으로 진행되는 인스타그램 마켓은 점차 참여자가 많아지더니 2017년쯤 더욱 본격적인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트렌드코리아 2019> 에서 세포마켓이라고 공식 명명되며 보편화되기 시작한 인스타 마켓은 이곳 셀러들이 팔아 치우는 어마어마한 판매량이 소문나면서 지금은 모든 브랜드들도 공식 인정하는 하나의 유통 경로가 됐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신유형 업체들이 대거 양산되는 흐름이 촉발됐다. 공동구매 셀러들만 전문으로 하는 특화 MCN 부터 시작해서 SNS 전문 벤더사, 공구 전용 브랜드 기획사 등 SNS 커머스를 집중 공략하는 업체들이 이때 탄생했다.
현재 MCN 업계는 커머스 MCN과 광고 MCN, 이렇게 크게 2유형으로 나뉘는 분위기가 있는데 내부 유통 전문성 보유 여부에 따라 갈린다고 보면 된다. SNS 마켓은 사실상 유통 산업이다. 따라서 커머스 MCN들에게 보이는 주된 특징이 있다면 유통 지식이 빠삭한 온라인 유통업자들이나 상품 제조사 혹은 상품 기획 스타트업들이 사업 영역을 확장한 사례일 때가 많다는 것이다. 광고와 달리 유통은 뒷단에서 손봐야 할 것들이 상당히 많다. 분야 지식이 필요한 특성이 있어 확실히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잘 할 수밖에 없는 리그이다. 그래서인지 기존의 광고 MCN들은 하던 대로 계속 광고만 붙드는 경향이 있다. 비교적 최근에 설립된 숏폼 전문 MCN들은 커머스가 메인으로 부상한 시점 이후부터 생겨나서 광고와 커머스를 모두 영위하려는 흐름을 보인다.
굿즈, 라이선싱 사업 (IP기반)
대형 유튜버들을 중심으로 광고 비즈니스를 해온 초창기 MCN들을 광고 MCN이라고 보면 된다. 뒷광고 논란 이후 큰 폭으로 줄어드는 매출에 따라 위기감을 느낀 그들이 들고나온 새로운 자구책 중에 하나가 바로 굿즈라는 수익 모델이다. 아이돌 콘서트 현장에서 판매하는 MD 상품들처럼 인플루언서 팬심을 저격한 덕질 아이템을 생산해 판매하는 형태인데 주로 티셔츠를 많이 만들고 키링이나 손거울, 모자 등 다양한 형태로도 제작한다.
MCN 전속 계약을 하게 되면 인플루언서들의 IP(Intellectual Property; 지식재산권)는 계약 기간 동안 MCN이 소유 권리를 갖게 되므로 회사 주도 하에 라이선스 사업의 일환으로 인플루언서 굿즈가 생산된다. 굿즈 생산 인프라를 보유한 MCN들은 회사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기획부터 제작, 배송, CS, 재고 관리까지 모두 대행해주는 원스탑 솔루션 굿즈 회사들이 MCN들과 제휴를 맺어 사업을 전개하기도 한다.
인플루언서 브랜드
분야를 주름 잡는 인플루언서들은 셀링 파워가 어마무시하다. 업계에서 경험한 바로는 하루 주문자 수만 몇만 단위에 오픈 직후 마감이 될 때도 자주 있었다. 홈쇼핑급으로 잘 파니 당연히 파급력 높은 인플루언서들은 늘 같이 브랜드를 만들자는 업체들의 러브콜을 받는다. 대형 인플루언서들은 상위 MCN들이 소중하게 모시고 있을 때가 많기 때문에 레퍼런스 급으로 잘 된 인플루언서 브랜드들은 대형 MCN과 알짜 제조사, 인플루언서 이렇게 3자의 합작품일 때가 많다.
비즈니스 관점에서 상품을 직접 만드는 이유는 인플루언서가 직접 상품 개발에 참여함으로써 시중 상품의 아쉬운 점을 보완하기 위함에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마진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상품을 떼와서 파는 경우엔 업체가 남기는 이윤이 붙어 개당 마진이 낮아지지만 직접 만들면 상품 원가에서 시작해 내가 원하는 만큼 판매가를 형성할 수 있어 개당 마진이 훅 높아진다. 그래서 다소 번거롭더라도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브랜드를 직접 만드는 것이다. 본인 프라이드 때문에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쇼핑을 많이 하고 인플루언서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 소비자층은 2030 여성들이다. 때문에 인플루언서 브랜드들은 이들의 주관심사인 뷰티, 패션 분야에서 많이 만들어진다. 특히 뷰티 분야에서의 사례들이 두드러지는데 적당한 품질에 합리적인 가격대로 접근성을 좋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상품은 인플루언서가 운영하는 채널에 구매 링크를 올려 판매하거나 주기적인 공동구매를 통해 최저가 타임딜을 진행하기도 한다. 상품성이 좋거나 반응이 핫한 경우에는 보다 대대적인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올리브영 같은 H&B 스토어나 오픈 마켓 입점이 이뤄진다.
지금까지 MCN 비즈니스 모델의 변천사를 살펴봤다. 뭔가를 길게 쓰긴 했지만 크게 광고와 커머스로 양분된다는 흐름을 말한 것뿐이라 사실 변천사라고 할 것도 없는 것 같다. 이제 피땀 눈물의 결실은 광고보다 커머스 영역에서 맺어질 확률이 높다는 것 하나만 알아두면 된다. 다소 지루할 수도 있는 히스토리를 풀어놓은 이유는 인플루언서들의 넥스트 스텝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광고를 주력으로 하는 국내 대형 MCN 3사는 2023년 모두 적자를 기록했다. 그저 적자면 모를까 몇몇 회사들은 부채비율 또한 상당하다. 일각에서는 기업의 존폐 여부가 논의되는 실정이다. 반면 커머스를 주력으로 하는 MCN들은 적더라도 영업이익 흑자를 내며 지속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광고 MCN들의 위기설은 사실 다양한 변수들이 중첩된 결과다. 초대형 크리에이터들이 하나의 기업급으로 성장하며 이탈을 한 것도 한 몫하지만 전반적으로 유튜버들이 광고주들로부터 받는 페이 자체의 규모가 작아진 것도 크다. 시장 상황이 증명하듯 인플루언서 광고 시장은 명백한 침체기다. 가라 앉는 배에 올라탈 자 있는가? 광고를 메인 돈벌이로 염두 중이거나 영위하고 있는 인플루언서 모두에게 반드시 태세 전환이 필요한 때다. 인플루언서 커머스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장에서 이어가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