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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Jan 01. 2021

2021년을 맞이하며

또 한번 신년이 왔다.

12월 31일에서 1월 1일이 된다 하여 마법처럼 세상이 바뀌는 것이 아님에도 1년 365일 중에 단 한 번 해가 지고 뜨는 사이 새로운 시간이 올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소원을 빌고, 무언가를 기원하는 계기를 얻게 된다. 하루 사이에 세상의 풍경이나 개인의 만사가 드라마틱하게 바뀔 리 없겠지만 혹자는 최소한 집정리라도 해본다던가, 올해에는 꼭 금연에 성공하겠다는 다짐을 한다던가, 일상에 새로운 변화를 주고 싶다는 마음을 물리적으로 혹은 관념적으로 구체화시키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새해를 맞이한다는 의식은 이 세계에서 오랫동안 유효한 마법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삶을 기도하는 것을 넘어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기회가 1년 주기로 한 번씩 주어지는 것이다.


2020년에는 만나는 사람마다 비슷한 주문을 외우며 헤어졌다. 대체로 ‘제발 내년에는’이라는 희망으로 당장의 절망감으로부터 눈을 돌려보고자 했고, 끝내 ‘건강하라’는 주문으로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곤 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가까운 사이든, 어떤 인연으로든 잠시 말을 섞고 다음을 기약하게 애매한 사이든, 대부분 그랬다. 늘 나누는 인사였을 것이고, 그래서 매번 인사의 형식이 다양했을진대 2020년만큼은 모두가 하나의 염원을 가진 것처럼 그랬다. 2021년에 바라는 무언가를 묻게 되면 남녀노소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코로나 종식이라 말하는 것을 듣고, 봤다. 그때마다 2021년 새해 상공에는 그 어느 해보다도 거대한 원기옥이 달 대신 떠오를 것만 같았다.


남녀노소인종국적을 막론하고, 지구 상의 모든 이들이 지금껏 겪어보지 못했던 한 해가 지나갔다. 하지만 오는 해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다. 코로나 확진자는 네 자릿수가 넘어갔다는 뉴스는 1월 1일에도 계속되고, 방송사의 연말 시상식에서 거듭 들을 수 있었던 코로나 종식의 염원은 신년 뉴스의 마지막 인사를 통해 다시 반복된다. 올해에는 더 나아질 거라 희망하지만 더 나아지리란 기대감이 제국의 함대처럼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희망의 오른팔을 잘라버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희망이 필요하다. 두 발 물러서는 기분을 느낀다 해도 이미 나아가 본 경험이 있는 이상 다시 한 발을 내디딜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단순히 바란다는 마음만으로 기적 같은 변화가 백주대낮 무지개처럼 떠오를 리 없겠지만 대부분의 변화는 어떤 식으로든 염원하는 마음으로부터 자라나는 법이리라. 인류 역사상 세상 모든 이들 각자의 마음속에 맺힌 염원이 이렇게까지 한 방향으로 수렴했던 시절도 보기 드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당장은 아니라 해도 언젠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협이 사라질 것이라는 희망이 실현돼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도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시간이 오면 2020년은 과연 어떻게 기억될까 사뭇 궁금하기도 하다.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지긋지긋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살아가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강렬한 한 해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물론 ‘2020 어게인’을 외칠 사람은 없겠지만 ‘리멤버 2020’ 정도는 회고하며 살아갈 수는 있지 않을까.


과거에는 신년에 덕담을 권하는 것이 허공에 외우는 주문 같아서 즐기지 못했는데 나이가 들어서 너그러워진 것인지 혹은 관점이 흐릿해지는 것인지 몰라도 점점 부정보단 긍정으로, 비정보단 애정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쓰다듬으려 노력하는 이들에게 감명을 받고 막연하게라도 더 나은 가능성을 향해 손을 내밀고 싶다. 여전히 밑도 끝도 없는 낙관과 희망으로 점철된 무심함이나 무례함에는 등을 돌리고 싶지만 대체로 날카로운 긍정과 절박한 애정에 연대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2021년에 이 지난한 재앙이 물러갈지 알 순 없겠지만 모두가 염원하는 방향으로 조금이나마 나아가는 한 해가 되길 바라며. 다들 원하는 바를 온전히 이루진 못한다 해도 원치 않는 일을 최대한 피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한다. 부디 0에서 1로 가는 이 해에, 잃기 보단 얻을 수 있길.


개인적으로 2020년은 2006년 이후로 명함에 적힌 직업란을 걸고 밥벌이를 시작한 이후로 출근할 회사가 없었던 온전한 1년이었다. 혼자 살 길을 도모해야 하는 한 해였다. 대단한 항해를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난파할까 조마조마하게 시작했던 한 해가 생각보다 무난하게 지나간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한다. 덕분에 아직 다가오지 않은 허들에 걸려 넘어질까 미리 걱정하기보단 일단 뛰기 시작했다면 뛰어가는 데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한 해이기도 했다. 여전히 내일은 무엇이 있을지 막막하지만 일단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오늘을 보내야만 만날 수 있는 내일도 있음을 확신하게 됐다. 그리고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그렇게 오늘로 나이 마흔이 됐다. 나이 서른을 생각해본 적은 있어도, 나이 마흔은 좀 막막하다. 갑자기 다른 바다를 만난 기분이랄까. 아무튼 그렇게 마흔이 됐다. 영포티는 아니고, 걍포티가 됐다. 0에서 1로 가는, 2021년에. 다 계획은 없지만 그래도 이거 정말 상징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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