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과 '러브 라이프'는 복잡한 심연을 향한 여정의 영화다.
지금 우리는 정말 괜찮은 걸까? 어떤 영화는 이런 근심에 휩싸여 찌푸린 미간처럼 세상에 드러난다. 평범한 얼굴 너머에 은둔한 어둔 마음과 미소로 가려진 사나운 진심으로 다가가고 들춰보고 내다보는 영화들은 그렇게 평온한 낯빛에 가려져 일찍이 헤집어진지도 몰랐던 심연을 꺼내 보인다. 그렇게 잔잔한 수면에 파문을 일으키는 조약돌처럼 세상에 던져진다.
“고등학생 시절 아버지가 기차에서 연쇄살인범 도망자를 봤다고 말했다. 나는 아버지 말을 믿지 않았지만 몇 년 후 연쇄살인범이 잡혔다는 뉴스를 봤고, 그가 아버지가 말한 그 연쇄살인범이라는 걸 알았다.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 경험이 이 대본에 영감을 줬다.” 가타야마 신조 감독의 말처럼 <실종>은 그의 경험에서 끌어올린 영화다. 끔찍한 흉악범이 아무렇지 않게 우리 주변을 배회할 수 있다는 현실의 리얼리티가 허구의 리얼리티로 반영돼 발전한 결과다.
“<러브 라이프>라는 제목은 스무 살 때 처음 듣고 그 뒤로 계속 즐겨 듣는 일본 싱어송라이터 야노 아키코의 노래 제목을 인용한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은 외롭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외로움이 다른 사람의 외로움과 이어져 사랑에 기반한 관계가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중심에는 그런 사랑과 외로움이 있기 때문에 <러브 라이프>라는 제목을 붙였다.” 후카다 코지 감독의 말처럼 <러브 라이프>는 사랑하는 행위와 감정 사이에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 공백을 물음표로 변환해 던지는 영화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아빠의 행방을 뒤쫓는 어린 딸은 아빠의 이름을 쓰는 연쇄살인범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대범하게 그를 추격하고, 추적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진실과 맞닥뜨린다. <실종>은 그렇게 의외의 질문을 던지고 단호한 답변을 붙잡는 영화다. 의심할 여지없이 악의 그 자체나 다름없는 존재의 덫에 걸린 것처럼 여겨지던 이가 철두철미하게 악의에 기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는 사실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점차 선의에 대한 신의가 삽시간에 붕괴되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아버지의 생신 축하를 준비하는 젊은 부부의 가정은 겉보기에는 단란해 보이지만 각기 다른 속내를 감추고 있다. 애 딸린 여자와 재혼한 아들이 여전히 못마땅한 시아버지는 며느리 면전에서 불쾌한 언변을 뱉고, 이를 말리는 듯한 시어머니 역시 남편과 다를 바 없는 속내를 툭 드러낸다. <러브 라이프>는 서로 아무렇지 않은 듯 마주하고 있는 이들이 속내에 자리한 불편한 진심을 숨기지 못한 탓에 일어난 균열과 함께 찾아오는 비극으로 진동하게 되는 관계에 관한 영화다. 예기치 못했던 변사는 일찍이 청산하지 못했던 관계를 갈무리하는 여정으로 이어진다.
<실종>과 <러브 라이프>는 전혀 다른 세계 속에서 태어난 영화처럼 보이지만 끝내 공통분모의 질문을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이기도 하다. ‘결국 그 이후에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악인의 희생양이라 믿었던 이가 애초에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반대편에 서있던 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가? 비로소 안정을 찾았다고 여겼던 지금이 이미 지나왔다고 믿었던 과거와 조우해 또 한 번 흔들린다면 어느 쪽으로 기울어야 할까? 결코 선명할 수도, 명쾌할 수도 없는 심리와 욕망은 물길을 내듯 흘러 예상하지 못했던 곳으로 다다른다.
<실종>은 엇나간 욕망으로 종착하는 파국적인 스릴러다. 그에 반해 좀 더 내밀한 드라마인 <러브 라이프>는 어긋난 관계를 다시 맞춰 나가는 회복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서로 판이한 이야기이지만 가족이라는 공통분모는 두 영화를 좀 더 사적인 영역에 두고 관찰하고 사유하길 이끄는 것 같다. 인간의 복잡다단한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을 한 단어 혹은 한 줄 남짓한 뉴스 헤드라인이나 가십거리로 정리할 수 없다는 것을 가족의 관점으로 납득시킨다. 하지만 결국 청산해야 할 일은 언제나 제대로 청산해야만 한다. 잘못한 일은 잘못을 뉘우침으로써, 끝내지 못한 일은 제대로 끝냄으로써, 그렇게 제 자리로 돌아오는 법이다. 그리고 돌아온다는 건 결국 기다리는 이가 있기에 허락된 의미일 것이다.
<실종>과 <러브 라이프>는 그래서 기다리는 마음에 관한 영화처럼 보인다. 흑백논리로 가둘 수 없는 복잡한 심연을 이해하는 건 결국 그런 마음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이해하고자 먼 길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그런 영화 말이다.
(제11회 무주산골영화제에서 배포한 프로그램 북에 게재한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