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데스, 오르페우스, 에우리디케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알랭 래네, 2012)

by 김현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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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드는 것은 너무나도 무서운 일이다. 사람은 고약해지니까. 살아있는 모습은 추하다. 뻔뻔해지거나 못난 것을 사랑이라 치부하며 살아야 한다. 나의 부모가 그렇다.


어떻게 다들 괜찮다며 살아가는 거지?

나도 이런 세상에 속해야만 살아지는 걸까. 너무나도 두렵다. 나도 저들처럼 될 것인가?

이 불안을 설명할 수 있는가? 내 마음을 전하기엔 너무 어렵다. 세상은 너무나도 어렵다.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


단 하나, 믿고 싶은 것이 있다.

세상없이 살아도 좋다고 할 사랑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 이들의 말은 중요하지 않다. 흔들리고 싶지 않다. 오직 나와 사랑하는 이만 있으면 된다. 그 사랑을 나는 찾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진실로 믿고 있는가? 완전한 사랑은 찰나를 넘어설 수 있나.

나의 사랑 오르페우스, 내가 그대를 흔들 테니 흔들리지 말아 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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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소망과 불안을 담은 연극 [에우리디케]의 극작가 앙뜨완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연극에 참여했던 역대 배우들이 추모를 위해 성에 모인다.


앙뜨완은 그들에게 영상으로 인사와 부탁을 남긴다. 최근 리메이크 된 [에우리디케]를 봐주고 다시 공연될 가치가 있는지 말해달라고.


비디오로 촬영된 새 연극 [에우리디케]는 고전적 연극 무대와 달리 카메라 무빙이 가미된 기법에 모두 젊은 배우들이다. 인종도 다양하며 형식 또한 자유롭다. 일전에 연기했던 배우들은 쇼파에 앉아 영상을 바라보며 조금씩 자신의 배역에 몰입되어 대사를 읊조린다. 점점 관람과 공연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자리에서 일어나 파트너 배우와 합을 맞추거나 아예 가상의 무대를 거닐기도 한다. 모두 나이가 들었지만 연기 중인 그들은 언제나 젊은 시절에 있다. 그들은 늙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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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모든 형식의 경계를 허문다. 연극을 촬영한 것이 영화로 편집되고 그 자체로 새로운 형식의 연극이 된다. 쇼파에 있는 1대, 2대 오르페우스-에우리디케 커플과 비디오 속 3대의 모습은 시공간과 형식을 뛰어넘어 각자 오르페우스로, 에우리디케로 살아낸다.


연극이란 배우의 육체로 그 현장에서만 삶이 부여되는 찰나의 예술임에도 그들의 기억과 캐릭터를 향한 자기애 속에서 영원히 언제든 살아날 수 있다는 걸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감독 포지션인 극작가 앙뜨완은 자신이 믿고 싶은 모습들을 배우들의 육체를 통해 현신시키고 그들의 영혼을 통해 믿음을 재확인받는다.


순수함은 존재한다는 믿음. 추악하지 않게 늙어갈 수 있다는 믿음. 배우들이 그렇다. 노인이 되어가는 그들은 젊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로 돌아갈 수 있고, 그들은 여전히 불안해하고 의심하며 파멸할 수 있다. 그렇기에 아직 사랑에 대한 믿음을 저버릴 수 없다. 그들이 영원히 고뇌하는 만큼, 완전한 사랑이 없다는 결론도 영원히 지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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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이란 대단하다.

시간과 세대를 뛰어넘어 연계된다. 1대 -2대 -3대 배우진들은 교차편집이 아니라 반복 편집된다. 모두 같은 연기지만 다른 삶으로 존중된다.

공간도 그들의 연기 속에선 재창조된다. 쇼파 위가 침대로 변하고, 기차역으로 변하며, 지옥으로 변한다.

저곳을 넘어가면 숲 속에 개울이 있고, 그곳에는 진짜 사랑도 있다.


앙뜨완은 그곳을 향해 달려간다.

자신의 사랑이 이들처럼 순수한 채로 실존할 수 있다면, 그녀 또한 그에게 달려오리라. 세상의 모든 굴레가 주는 의심을 이겨내고, 불안을 넘어, 오직 사랑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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