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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훈 Mar 26. 2018

이제 한낱 추억이 되었더냐

이제 한낱 추억이 되었더냐

- 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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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겨울 어두웠던 나날들

아침부터 저녁까지 

손이 부르트도록 까던 도라지

점심으로 먹던 건빵, 

조금이라도 더 배부르라고

얼음보다도 차가운 수돗물에 불려 먹던

서러운 기억들


가난은 가난을 낳고

배고픔은 배고픔을 낳고

추위는 추위를 낳던 

아픔의 시절

이제 한낱 추억이 되었더냐


겨울. 아침잠에서 깨어난 

단칸방의 식구들은

밤새 벽에 얼어붙은 성에를 뜯어내면서

추위를 견디지 못해 

하나 뿐인 낡은 곤로를

방안에 들여다 놓고 불을 지핀다


매캐한 연기와 석유냄새

어지럽다, 구토가 난다, 

그러나 황홀하다

한 점 온기가 방안에 피어오르리라


동생의 동상 걸린 손, 

그 손이 다가온다

손등이 터서 피가 흐르는 동생의 손, 

눈 시리게 쳐다본다


아주 어렵게 그리고 숨차게

한 점 온기가 

우리 식구의 가슴에 싹 틔운다

이런 모든 것들이 

이제 한낱 추억이 되었더냐


시간의 흐름은 

슬픔을 

추억으로도 만들 수 있구나



석유풍로 : 일본에서 유래하였기에 일본어 표현인 곤로(焜炉, コンロ)라는 말로 더 자주 불린다. 외래어가 아닌 순수한 일본어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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