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 후기

나디아 허 <동물원 기행>

by 칼란드리아
x9788997379965.jpg

*2017년 경에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어쩌다 보니, 구입한 지 두 달 정도 돼서야 읽게 되었습니다. 나디아 허는 대만 출신의 작가인데 에세이류를 주로 쓰는 것 같아요.


이 책 <동물원 기행>은 뭐랄까, 예상을 조금 비켜나가는 책이었는데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괜찮은 책이었습니다. 유럽과 아시아(라고는 해도 중국과 대만, 싱가포르)의 동물원 열네 곳을 가본 소감문(?) 같은 건데요, 그래서 전체 열네 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실 동물원을 테마로 잡긴 했지만 동물원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그곳의 동물 이야기, 그리고 그곳과 관련된 지리적, 역사적, 인문학적, 예술적 잡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에세이이기도 하지만 준인문학 서적으로도 볼 수 있을 듯합니다. 특히나 그냥 동물원이 아니라 '도시+동물원'의 이야기다 보니 동경을 품게 되는 것 같기도 해요.


곁다리 이야기들이 많다 보니 재미도 있고, 조용하면서도 다소 수다스러운 어떤 친한 여자 사람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지루하진 않습니다. 저자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많이 나오네요.


하지만 그 속에 사는 동물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된 단상들의 기술은 마음이 아픈 것들이 많았어요. 특히 프롤로그에 나왔던 코펜하겐 동물원에서 공개적으로 사살된 기린 이야기, 베를린 동물원의 북극곰 크누트의 이야기가 그랬고, 하얼빈 동물원의 코끼리 빈빈도 그랬네요.


동물들이 원래 자기가 살던 생태계가 아닌 다른 곳, 그것도 콘크리트 건물에 갇혀 살아가야 하는 것들이 동물보호론자들의 반대의 주된 이유지만, 그럼에도 동물원은 여러 이유로 꽤 오래전부터, 그리고 지금까지도 존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동식물원은 존재했지만) 돈문제는 동물들의 생존 자체와 직결되어 있고, 좀 더 완화하여 생각해도 그들의 거주환경과 연관되어 있기에 그런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안타깝네요.


'인간이 동물들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가' 하는 문제는 좀 복잡하죠.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육식에 대한 문제부터, 취미로 하는 사냥, 지금 조류독감 대처처럼 수천만 마리를 살처분하는 문제까지.


저도 동물원을 좋아합니다. 어릴 때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랬죠. 그래서 되는 대로 동물원에 가고 있고, 지금도 딸아이와 함께 종종 갑니다. 주로 서울대공원이나 에버랜드 주토피아긴 하지만요.


딸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에버랜드 사파리인데요, 특히 곰들의 묘기를 좋아합니다. 지금까지 열 번 가까이 본 것 같네요. 저는 볼 때마다 안쓰러움을 느낍니다. 건빵 몇 개 먹으려고 곰들이 저렇게 묘기를 부리는데 하루에도 수 십 번을 저러고 있을 거고, 날마다 저러고 있겠지요. 다른 동물들이야 그냥 가만히 있어도 상관없지만 곰은 유독 좀 혹사당하는 느낌이에요. 곰들이 좋아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곰과 얘기를 안 해봐서 모르겠네요.


하지만 동물원에 대한 저의 기억과 딸아이가 동물원을 기억하는 것은 모두 추억으로, 그리고 어쩌면 무의식의 한편에 자리 잡은 동물들에 대한 애정으로 남게 될 거라 믿어봅니다. 그냥, 그렇게 동물들에 대한 미안함을 그들에 대한 애정으로, 그리고 당위성으로 포장해보는 거지요.


이 책에서의 작가의 이야기들이 공감도 됐고, 또 좋은 문장도 많았습니다. 아쉽게도 사진은 별로 없어요. 전자책으로 읽고, PC에서 사진들을 다시 봤는데 사진을 통해서는 문장에서의 그 느낌이 제대로 전달되진 않습니다. 최선은 직접 가보는 것이겠지요. 그러고 보니 저는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동물원은 몇 군데 가 본 곳이 없네요. 기회가 된다면 다른 곳에 있는 동물원들도 가 보고 싶어 집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유시민 <청춘의 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