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융 작가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소설가이자 작가이지만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학교의 아시아학과 교수이기도 하다. 그가 쓴 작품들은 여러 편이 있지만, 공교롭게도 나는 그중에서도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만 읽어 보았고, 그것만으로 그를 평가하고 있었다.
B급 감성, 블랙코미디. 이게 기존에 내가 그에 대해 느끼는 바였다. 만약 다른 작품을 읽었다면 또 다른 평가를 내렸을지 모르지만. 그런데 그의 작품은 해외에서도 꽤 번역이 되어 있다고 하니 정말 의외다.
그가 <문학이 사라진다니 더 쓰고 싶다>는 산문집을 냈다. 이 책에는 그가 슬로베니아에 거주하면서 느낀 이야기들도 있고, 문학이나 소설이 영향력을 상실해 가는 상황에 대한 유감과 고민을 보여준다. 그는 여전히 작가이지만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자신감이 있는 듯 없는 듯 독자에게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무겁진 않다. 그는 우리에게 같이 고민해보자고 하지만 그러한 사유의 분량도 많지는 않다. 나머지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내용들이다.
이 책에는 사진이 많이 실려있기 때문에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이 더 나을 것 같지만 나는 전자책으로 보았다. 사진과 함께 천천히 읽어가면 좋을 것 같다.
이런 비유는 적절하지도 않고 상상하기도 싫지만, 내가 사랑하는 존재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다면, 가령 사랑하는 어머니가 편찮으시다면 걱정의 시간은 바로 사치가 된다. 이유 여하 막론하고, 그 존재가 사라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함께 시간을 더 보내는 것. 그것이 나의 방식이다. 이 방식은 내가 문학을 대하는 태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정말 문학이 곧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나는 지금 문학을 더 즐길 것이다. 더 읽고, 더 쓰고, 더 문학에 대해 떠들 참이다.
개인의 독서가 개인의 역사라고 믿는다. 그러니 내가 읽은 책들은 나의 역사이다. 그리고 앞으로 읽을 책들이 나의 남은 역사를 만들 것이다. 멋진 서재에 앉아 새로운 역사를 이뤘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 역사는 작은 곳, 척박한 곳으로부터 멋지게 피어오르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무언가가 우리의 마음에 소중히 남아 있는 것은 그것이 디지털이기 때문도, 아날로그이기 때문도 아니다. 그냥 그 추억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가 되어서 세상이 각박해졌다느니, 아날로그 시대가 더 인간적이었다느니 하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저 우습기까지 하다. 한 시대를, 어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기술이 아닌 사람인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추억의 알맹이에는 나, 너, 우리와 같은 ‘사람’이 담겨 있다. 그 이외에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공감이 되는 내용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공감이 되었던 것은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다음의 문장들이다. (좀 긴 문장이라 내가 좀 정리를 했다)
이렇게 다른 것들이 책을 대체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 멈추기 위해서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은 스스로 멈추기 위해 읽는 것이다. 당신이 스스로 멈출 수 있는 사람이라면 책을 읽지 않아도 괜찮다.
세상은 멈추는 것을 낭비라고 정의한다.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더 빨리, 더 많이 보기 위해 멈춤을 제거하는 일에만 몰두한다.
그런데 독서는 다르다. 독서는 우리를 멈추게 한다. 우리는 멈춰서 '생각'이라는 것을 한다. 평소에 우리가 잘하지 않는 그 생각을 하게 한다. 그 문장에 대해서, 그 감동에 대해서, 그 문장과 감동 뒤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든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독서의 가치이자 이유라고 생각한다. 독서는 내가 나를 깨닫는 과정이다. 독서는 멈춰 서서 나를 돌아볼 시간을 만들어주는 장치다.
그는 멈추기 위해서 책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아!' 하는 탄식을 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멈춰 서서 생각하고, 나를 돌아보기 위해서.
그냥 가벼운 산문집이라고 생각했는데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도 던져주었고, 또 공감이 되는 부분도 많았다. 아무래도 그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