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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Aug 10. 2023

커트 보니것 <제5도살장>


이 모든 일은 실제로 일어났다. 대체로는 어쨌든, 전쟁 이야기는 아주 많은 부분이 사실이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이 드레스덴에서 자기 것이 아닌 찻주전자를 가져갔다는 이유로 정말로 총살을 당했다. 내가 아는 또 한 사람은 개인적으로 원수진 사람들에게 전쟁이 끝나면 총잡이를 고용해 죽여버리겠다고 정말로 협박했다. 그리고 기타 등등. 하지만 이름은 모두 바꾸었다.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고들 한다. 나도 물론 앞으로는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나는 전쟁 책을 끝냈다. 다음에 쓰는 책은 재미있을 것이다. 이번 것은 실패작이고, 실패작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소금 기둥이 쓴 것이니까. 그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들어보라:
빌리 필그림은 시간에서 풀려났다.
그 책은 이렇게 끝난다. 
지지배배뱃?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을 알고는 있었지만 아직 읽어보진 못했다. 얼마 전에 '알쓸인잡'에서도 소개된 바가 있었고, 유명한 작품이다 보니 내용은 대략 알고는 있었다. 그러다가 북클럽 6기 웰컴도서로 신청했고, 마침 독파 챌린지로 올라와서 겸사겸사 독파로 읽게 되었다.


내용을 알고 있다고 해도 텍스트를 통해 읽는 것은 또 달랐다. 알려진 대로 이 책은 그의 자전적 소설이면서도 또 허구이기도 하다. 트라팔마도어 외계인, 시간 여행은 명백한 허구다. 하지만 이 작품 속에서 가장 혼란스러웠던 것이 그것들이 주인공 빌리 필그림이 실제로 경험한 것인지 아니면 상상 속 혹은 그의 기억 속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그것이 실제였다고 주장하고 스토리에서도 사실인 것처럼 묘사되지만 그를 제외한 (그리고 몬태나 와일드핵이라는 여배우와 극히 일부의 사람들)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않았다. 


그는 시간에서 풀려나게 된 이야기를 했다. 1967년에 비행접시에 납치되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비행접시는 트랄파마도어 행성에서 왔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트랄파마도어로 끌려갔고, 그곳 동물원에 알몸으로 전시되었다. 그렇게 말했다. 동물원에서는 그를 몬태나 와일드핵이라는 이름의 지구인 전직 영화배우와 짝지어주었다.


이 책은 반전소설이라고도 하지만 사실 반전은 그다지 두드러지게 보이지 않는다. 전쟁 속에서 그가 겪었던 것들,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누구인지를 묻는다. 드레스덴 폭격은 연합군에 의한 것이었지만 그는 독일군에게 잡힌 미군 포로이면서도 드레스덴 폭격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드레스덴은 이제 달 표면 같았다. 광물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돌은 뜨거웠다. 그 동네의 다른 모든 사람이 죽었다.
뭐 그런 거지.
곡선들은 멀리서 볼 때만 부드러웠다. 곡선을 올라가는 사람들은 그 선이 위태롭고 고르지 못하다는 것 - 만지기에는 아직 또 종종 불안정 해진다는 것 - 중요한 돌을 건드리면 당장이라도 더 무너져내려, 더 낮은 곳에서 더 안정된 곡선을 이루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전쟁의 비극은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으며,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는다. 모두가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되는, 인간성이 가장 밑바닥으로 치닫는 극한 상황이 된다. 그런 면에서 그가 전쟁 기간 중 겪은 것 것은 오히려 외계인에게 납치되어 그들의 문화와 사상을 접하게 되고 또 동물원에 갇혀 지내는 것보다도 더 끔찍한 경험일 것이다. 


그런 게 그러한 경험이 SF와 맞물렸다. SF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SF적인 요소가 이 작품 속에서는 중요했고 또 적절했다고 생각된다. 특히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오가거나 거의 동시에 경험하는 것은 그의 혼란스러움을 표현하는 방법일 것이다. 


빌리는 입술을 핥고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마침내 물었다. 
"왜 나죠?" 
"정말 지구인다운 질문이군요, 필그림 씨. 왜 당신이냐고? 말이 나와서 이야기인데 왜 우리여야 할까요? 왜 뭐여야 할까요? 그냥 이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호박에 들어 있는 벌레를 본 적 있나요?"
"네." 빌리는 사실 사무실에 문진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안에 무당벌레 세 마리가 들어 있는, 광택이 나는 방울 모양의 호박이었다. 
"자, 여기 우리도 그런 거죠, 필그림 씨, 이 순간이라는 호박에 갇혀 있는 겁니다. 여기에는 어떤 왜도 없습니다." 
"그것을 당신에게 설명하려면 다른 지구인이 필요합니다. 지구인들은 설명을 잘하더군요. 왜 이 사건이 이런 식으로 구조가 잡혀 있는지 설명하고, 또 어떻게 어떤 일을 이루거나 피할 수 있는지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나는 트랄파마도어 사람이고, 당신이 쭉 뻗은 로키산맥을 한눈에 보듯이 모든 시간을 보고 있습니다. 모든 시간은 모든 시간이죠. 그건 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미리 알려줄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있는 거죠. 그걸 한순간 한순간씩 떼어놓고 보면, 우리 모두가, 내가 전에도 말했듯이, 호박 속에 갇힌 벌레라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자유의지라는 걸 믿지 않는 것처럼 말하네요." 빌리 필그림이 말했다.
...
"지구인을 연구하느라 그렇게 많은 시간을 쓰지 않았다면, '자유의지'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전혀 몰랐을 겁니다. 나는 우주의 유인 행성 서른한 곳을 찾아가 보았고, 그 외에도 백 개 행성에 대한 보고서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오직 지구에서만 자유의지 이야기를 합니다." 트랄파마도어인이 말했다.
또 트랄파마도어인은 인간을 다리가 둘 달린 생물로 보지도 않는다. 그들은 인간을 커다란 노래기로 본다 -"한쪽 끝에 아기 다리가 달려 있고 다른 쪽 끝에 노인 다리가 달려 있는 노래기"라고 본다, 빌리 필그림은 그렇게 말한다.


전쟁 이후 그는 그의 삶을 살았지만 사실 정상적인 삶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의 가족들에게도, 그를 대한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그는 PTSD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자신의 방법으로 극복하고자 했다.


빌리는 전쟁 영화들을 거꾸로 보았다가 다시 제대로 보았다 - 그러다 보니 비행접시를 마중하러 뒤뜰로 나갈 시간이 되었다. 그는 밖으로 나갔다. 푸르스름한 상앗빛 발이 축축한 샐러드 같은 잔디를 밟아 뭉갰다. 그는 발을 멈추고, 이미 죽은 샴페인을 꿀꺽꿀꺽 들이켰다. 세븐업 같았다. 하늘로 눈을 들어 올리지 않았지만, 그 위에 트랄파마도어에서 온 비행접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머지않아 비행접시를 보게 될 터였다. 안팎을 다 보게 될 터였다. 머지않아 그것을 보낸 곳도 보게 될 터였다 - 머지않아. 


이 책에는 많은 죽음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한 죽음 또는 죽음이 암시되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빼놓지 않고 '뭐 그런 거지'라는 말이 나온다. 원문은 'So it goes'인데 시니컬하면서도 그러한 것을 받아들이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준다. 원래는 트라팔마도어 외계인의 방식이었지만. 그런데 그것도 계속 반복되지만 꽤나 중독성이 있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얘기조차 그렇게 가벼운 농담 혹은 유머가 되어버린다. 그러한 블랙코미디의 요소는 이 책의 비극을 한층 더 강화한다.


트랄파마도어인은 주검을 볼 때 그냥 죽은 사람이 그 특정한 순간에 나쁜 상태에 처했으며, 그 사람이 다른 많은 순간에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도 누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냥 어깨를 으쓱하며 그냥 트랄파마도어인이 죽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을 한다. '뭐 그런 거지.'


독특한 작품이었지만 읽어볼 만한 작품이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명작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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