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밀어내는 소리

입춘과 푸스트(Pust) 사이에서

by 슬로하라


매년 이맘때면 이곳의 거리 한복판에 털가죽을 뒤집어쓴 무리가 나타난다. 마치 신화 속 존재와 삽살개를 섞어 놓은 듯한 행색이다. 허리에는 커다란 방울을 달았다. 머리에는 오색 띠를 둘렀고, 얼굴은 가면으로 가렸다. 그들이 둥글게 혹은 대열을 이루어 움직일 때마다 묵직한 금속 소리가 거리의 공기를 흔든다.


거리와 학교 울타리 너머 곳곳에는 알록달록한 코스튬 복장을 한 사람들(maškare)과 아이들이 돌아다니고, 집으로 찾아와 사탕이나 과자를 받아 가기도 했다. 처음엔 핼러윈의 다른 형태인가 했다.


수업에서야 그것이 '푸스트(Pust)'라는 걸 알게 되었다. "Pust preganja zimo." 겨울을 몰아내고 봄을 부른다는 말이었다. 특히 프투이(Ptuj) 지역을 중심으로, 슬로베니아 일부 지역에서는 털가죽을 뒤집어쓴 쿠렌트(Kurent)들이 방울을 울리며 거리를 돈다고 했다. 그 방울은 겨울의 악귀를 쫓는 상징이라 했다.


푸스트는 사순절이 시작되기 직전에 열리는 슬로베니아의 전통 축제다. 부활절(Velika noč) 날짜를 기준으로 거슬러 올라가 계산된다고 했다. 부활절은 춘분 이후 첫 보름달 다음 일요일에 정해지며, 그로부터 마흔일곱 날 전 화요일이 푸스트니 토렉(Pustni torek)이다.


처음엔 복잡해 보였지만, 결국 부활절에서 마흔일곱 날을 거꾸로 세면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겨울 끝의 화요일이 정해졌다. 날짜는 매년 달라지지만, 계절의 자리는 늘 같다. 겨울의 끝이자, 봄의 문턱.


한국의 입춘 무렵과 맞닿아 있어 더욱 반갑다. 달력을 보지 않으면 체감이 쉽지 않은 이곳에서, 요란하지만 소란스럽지 않은 방울 소리로 겨울을 밀어낸다. 말 대신 몸을 흔들고, 가면을 쓰고, 소리를 낸다. 계절을 보내고 맞이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그 경계에 서 있는 마음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직 축제의 안쪽에서 즐기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그 소리를 듣고 날짜를 배우며, 매년 같은 시기에 다시 나타나는 장면을 기억한다. 그들을 통해 이곳의 계절을 조금씩 알아 간다.


반복되는 계절 속에서, 나는 글 대신 소리로 오는 봄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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