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앞에서 시험받은 문장들

짧은 말로 택배를 받기까지

by 슬로하라


이곳에서도 내게, 이방인이라는 무게를 잠시 무디게 하는 설레고도 긴장되는 행위가 하나 있다.


온라인으로 물건을 주문하는 일.


그러나 이 설렘의 끝에는 마주해야만 하는 하나의 절차가 있다. 택배 기사님의 전화를 받아야 하고, 내가 집에 있다는 걸 알려야 하며, 발 빠르게 나가 물건을 수령해야 한다. ‘만약에’라는 변수는 나에게 존재해서는 아니 되었다.


우체국에는 갈 일이 없길 바랐다. 아니, 가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나는 늘 문 앞에서, 그 짧은 문장을 꺼내 올릴 준비를 하고 있어야만 했다. 택배 도착 예정 문자를 받는 순간부터 그날 하루는 오롯이 전화기에 집중된다. 그들과의 소통이 통화라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들의 말을 예상할 수 있고, 숨 고를 시간을 준비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정작 그들은 내 숨 고르기에 허락할 만큼의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멈칫할 틈 없이 빠르고 거침없는 슬로베니아어로 말을 건네는 걸 듣고 있자면, 내가 준비한 긴장감은 맥없이 흩어졌다.

그래서 수업에 나가며, 그들과의 통화를 대비한 몇 마디를 영어와 슬로베니아어로 외우기 시작했다. 그 문장들이, 나의 불안보다 먼저 준비되기를 바랐다.


"I'm at home ."

"Sem doma."

나는 집에 있어요.


"Where should I go?"

"Kam naj grem?"

제가 어디로 가면 되나요?


"I will be right there."

"Pridem takoj."

금방 갈게요.


"Wait for me, please."

"Počakajte me, prosim."

저를 기다려 주세요.


익숙한 영어부터 입에 붙이기 시작했다. 그 말들이 먼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짧은 문장들을 말하기 위해 하루 종일 마음을 붙들었다.


영어조차도 내 것이 되지 않은 상태. 입에 들러붙지 않던 시간. 단어 하나하나를 배우기 전, 문장을 통째로 삼켜야 했던 시간. 그건 외웠다기보다 버텼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순간이었다. 문장의 구조를 익히지는 못했어도, 그들과의 대화에서 내가 해야 할 역할만은 분명했다.

‘내가 곧 나가서 받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상대가 알아듣기 편한 방식의 언어였다. 슬로베니아어로까지 익히려 했던 건, 정해진 찰나의 소통 속에서 내가 방해가 되지 않으려는 조용한 결심이었다. 그들에게 이해를 바라기보다 나의 생존에 가까웠고, 그건 표현보다 방패에 가까웠다.


그저, 버텨내는 언어였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언어를 삼키던 시간 끝에서,
나는 나를 위해 먼저 문장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슬로하라 언어일기’의 다음 기록도 함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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