那年秋天的茄子(그해 가을의 가지)

by KHGXING

‘나니엔치우티엔더치에즈’ 처음엔 발음이 주는 묘한 느낌에 끌렸다. 쉽게 외워졌고 반복해서 불러본다. 다들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단순 반복되는 단어나 음을 흥얼거릴 때가. 중독성 강한 노래 후렴구처럼 말이다.


문장의 뜻을 새겨본 뒤에는 과장 조금 보태서 소름이 돋았다. ‘그 해 가을의 가지.’ 음식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싶을 정도로 가슴 저미게 아름다운 표현 아닌가! 어떻게 이런 서정적인 표현을 음식 이름으로 ‘헌정’했단 말인가!


맞다. ‘나니엔치우티엔더치에즈’는 가지 요리 이름이다.


대학생 때 중국에 처음 와봤을 때부터 중국의 가지 요리는 입맛에 맞았다. 종류도 비교적 다양했고 기억 속에 맛없는 식재료로 ‘낙인’찍혀 있던 가지가 이렇게 맛있나 싶었다. 분명히 그다지 선호하지 않던 우리나라 가지 조리법과 마찬가지로 푹 삶아서 나온 것이었는데도 한 번 먹어보고는 내가 원해서 젓가락이 가곤 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개인적인 경험이긴 하지만 가지 요리 종류가 그리 다양하지도 않고 맛있게 먹은 기억이 별로 없다. 그저 푹 삶아서 간장과 마늘을 넣고 버무려 먹는 방법이 가장 보편적인 게 아닐까 싶다. 지금 이렇게 중년을 바라보는 나이가 돼서야 마당에서 갓 딴 가지를 삶아서 별다른 양념 없이 버무린 매우 간단한 그 반찬에 입맛을 다시지만 어렸을 때 ‘초딩’ 입맛에는 부모님의 강권에 못 이겨 마지못해 먹던 음식이었다. 흐물흐물한 식감이 왜 그리 싫었는지.


베이징에 오고 나서 처음 회사 근처 중국 가정식 반찬을 파는 르셩(日升)이란 식당에서 맛봤던 나니엔치우티엔더치에즈는 이전에 맛봤던 가지 조리법과는 또 달랐다. 글쎄, 요리에 문외한인 내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턱이 없지만 짐작해 보건대 가지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전분을 묻혀 한번 튀긴 뒤 엿기름 등을 입혀 다시 한 번 튀긴 게 아닌가 싶다.


와이프는 그렇게 말하기는 한다. 어떤 음식이 갓 튀겨 나오는데 맛이 없냐고 말이다. 신발이라도 갓 튀겨 내오면 먹을만 할 것이란 얘기다. 그래도 범상치 않은 맛이었다. 겉은 바삭하고 달콤한데 그 안에는 가지 특유의 식감이 살아있었다. 찹쌀 탕수육을 처음 먹어봤을 때 이전 탕수육과는 다른 신세계를 경험했던 느낌과 다르지 않았다. 이런 음식을 추천해준 중국 직원들이 고맙기까지 했고 왜 내가 살고 있는 왕징에는 르셩 식당이 없는지 아쉽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이날 먹은 음식 가운데 또 다른 요리 이름도 그 작명법에 ‘아하’ 감탄했다. 이름하야 코우쉐이지(口水鸡). ‘코우쉐이’는 침이고 ‘지’는 닭고기이니 “이 닭고기 요리를 잡숴봐, 군침이 돌지 않을 수 없어”라고 유혹하는 듯하다. 맛 또한 준수했다. 차가운 요리였는지라 식감은 살아 있고 약간의 산초가 들어 얼얼한 맛이 정말 침이 살짝 입안에 고였다.


그런데 사실 이런 이름은 중국 요리 이름을 만드는 ‘원칙’에서는 다소 벗어난 파격적인 방식일 듯싶다. 보통 중국 요리는 이름을 찬찬히 뜯어보면 어떤 식재료로, 어떤 요리 방법으로 조리했고 대략적으로 어떤 맛인지 대충 파악이 되는데 이 요리는 가지로 만든 요리이기는 한데 어떤 조리법으로 어떤 양념으로 만들었는지는 짐작이 되지 않는다. 다만 이 가지는 ‘어느 해 가을에 딴 가지에요’를 알려준다고나 할까. 오히려 그래서 더욱 맛에 만족하고 그 뜻에 감탄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앞에서 잠시 말했지만 상당수의 중국 요리 이름은 ‘주재료 + 요리법 + 양념소스 종류’를 근간으로 명칭을 붙이곤 한다. 머 우리나라 요리 이름 만들기도 이런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중국 요리 또한 마찬가지이다. 肉(돼지고기), 牛肉(소고기), 鸡(닭고기), 鸭(오리고기), 虾(새우), 蟹(게), 鱼(생선), 豆腐(두부) 등이 이름에 붙어 있으면 주재료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 다음 炒(기름넣고 강한 불에 볶기), 红烧(간장에 붉게 조리기), 乾烧(국물없이 바짝 조리기), 烤(불에 직접 굽기), 煎(기름을 조금 두루고 볶기), 炸(튀기기), 蒸(찌기), 白煮(삶기) 등이 붙어 있으면 어떤 조리법인지 짐작이 간다. 그리고 酱(간장, 춘장, 두반장 등) 蚝油(굴소스), 椒盐(후추와 소금, 맵고 짠 양념), 糖醋(설탕과 식초, 새콤달콤한 양념), 盐水(소금물에 끓여 짭잘한), 茄汁(케첩), 麻辣(산초, 얼얼하게 매운 맛), 水煮(기름, 고추, 산초를 넣고 끓인 매운 맛) 등의 단어가 명칭에 포함돼 있으면 어떤 양념이 들어갔으니까 대충 어떤 맛이 나겠거니 미뤄 짐작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마라니우러우(麻辣牛肉)라 한다면 소고기 요리이고 그 맛은 얼얼하게 매울 것이다. ‘마라’가 ‘산초 등 때문에 얼얼하게 매운 맛’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탕수육이라 일컫는 탕추러우(糖醋肉)라 한다면 새콤달콤한 소고기 요리일 것이고 ‘탕추’는 설탕과 식초라는 뜻인데 새콤달콤하지 않겠는가. 홍샤오러우(红烧肉)는 간장돼지볶음요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홍샤오’는 간장에 붉게 조린다는 뜻이기에 말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서도 중국 요리를 선택해서 흡족하게 한 끼 식사를 마무리하는 것은 중국 친구와 같이 식사하지 않는 이상 고난도의 작업이다. 음식 사진이 없다면 난이도는 한층 높아진다. 요리 종류가 상상 이상으로 많기도 하고 이런 ‘법칙’에 어긋난 음식도 많고 식당마다, 지역마다 같은 이름인데도 맛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 먹어본 요리를 고르는 것이 안전한 방법이긴 하지만 요리 이름을 외우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중국 요리에 일가견 있는 양 주절주절 끌적였지만 안타깝게도 중국 요리에 대한 ‘욕망’과 ‘열정’, ‘식탐’은 예전만 못하다. 대학생 시절 중국 여행을 다니며 어느 허름한 가정식 백반집에 들어가서도 한끼 한끼 감탄하며 먹곤 했는데 그런 중국 요리에 대한 욕심은 과거만 못하다. 먹어도 왠지 허전하고 맛있어도 뭔가 채워지지 않는 부족함을 느낀다. 좋기는 하지만 예전에 느끼던 그런 ‘천상의 행복’은 이제 느끼지 못하겠다.


나이 탓인 듯싶기도 하고 한국 음식에 더욱 철저히 길들여진 데 따른 것 같기도 하다. 음식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줄어든 듯싶기도 하고. 어머니가 띄운 된장으로 끓인 두부된장국, 인천 소래포구에서 산 펄펄뛰는 새우로 담근 새우젓으로 끓인 새우젓돼지고기찌개, 마당 텃밭에 심어놓은 파 뽑아서 만든 파김치, 마당 한켠에 심어놓은 고추를 막 따서 고추장 푹 찍어 먹는 그 맛이 이제는 그저 좋다.


이것저것 생각하고 나니엔치우티엔더치에즈 떠올리다 보니 벌써 새벽 2시다. 창문 너머 컴컴한 밖에서는 번개가 번쩍거린다. 쾅쾅 천둥소리도 요란하다. 베이징에 온 뒤 처음이다. 모든 처음은 새롭다. 중국 요리도 처음이니 너무 새로워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내일 아침엔 우마이가 걷혔으면..


(2016.5.12)


**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이나 베이징이란 공간에서 보낸 3년(2016-2019) 가운데 첫해에 대한 기록이다. 일상과 관찰, 위안의 느낌을 나누려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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