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소소한 일상] 다치면 제일 먼저 걱정되는 것, 와이프 반응?
망했습니다.
드롭샷을 받으러 베이스라인에서 네트로 달려가다 사달이 났습니다. 왼쪽 종아리 가운데를 골프공에 퍽하고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데굴 데굴 굴렀죠. 소위 테니스 레그 부상입니다. 근육이 찢어졌습니다.
같이 테니스를 치던 동호회 분들이 놀라서 다가왔습니다. 이날 함께 치던 사람들은 7명 정도였습니다. 우리 모임은 주로 주말 새벽 5시부터 2시간 정도 칩니다. 부지런한 동호회죠.
"어떡해요.. 집에서 괜찮겠어요?" 동호회 분들의 일성입니다. 순간 아프긴 한데 웃음이 새어 나왔습니다. 다쳐서 아픈 것도 걱정되지만 다들 첫번째로 떠오른 것은 와이프의 반응이었던 셈이죠. 테니스에 빠져서 주말 새벽부터 나가더니 다쳐서 들어가게 생겼습니다. 와이프 눈치를 보고 살아가는 남편들로서는 다들 와이프 역정을 어떡게 넘어갈지 걱정하는 것이었죠.
신기했습니다. 동호회 사람들만이 아니라 나중에 만나는 사람마다 다친 것도 다친 것이지만 '와이프한테 괜찮았어요?'란 걱정을 많이 하네요.
회사에서 미팅할 때입니다. 절뚝거리며 회의실로 들어가서 미팅 상대자를 만나니, "아이구 어쩌다 다치셨어요?" 인사를 합니다. 이래저래해서 다쳤다 설명하니 "집에서 혼나셨겠는데요?"라고 합니다. 남편들의 애환인가요. '농반 진반' 반응이지만 분명 진반도 섞여 있습니다.
한국인들의 심리인가 싶기도 합니다. 이런 반응을 예측하는 사람들은 대개 한국인들이었습니다. 대만인들은 글쎄요. 다친 것 자체에 보다 집중해서 물어보고 걱정해 줍니다. 다치고 나서 얼마나 됐냐, 회복하려면 얼마나 걸리냐, 나도 이전에 다쳤는데 꽤 오래 가더라 등등입니다. 집에서 와이프한테 혼나지 않았냐란 걱정과 물음은 없었습니다.
예전 그런 말이 있잖아요. 다쳤을 때 국가별 아내의 반응이요.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세요. 제가 그런 스타일의 와이프를 부러워한다는 게 아니라 그냥 우스개 소리니까요. 서구에서는 "병원 가서 잘 치료 받으면 돼", 일본에서는 "옆에서 잘 간호해 줄게요", 한국에서는 "으이구 화상아 내가 뭐라 그랬어, 조심하라 그랬잖아"
사실 이렇게 역정을 내는 것이 그냥 화를 내는 것이 아니죠. 그 속에는 당연히 걱정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고 표출하는 방식이 그런 것일 뿐이죠. 어떻게 보면 이게 국가별 문화 차이일 수도 있겠네요.
그렇긴 한데 아내 입장에서는 복장 터질 것 같긴 합니다. 매일 늦게 집에 들어오다 보니 집안일을 많이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래도 개똥도 쓰려 하면 없다고 아쉬울 수밖에 없죠.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일은 그래도 했는데 이제 한동안 시킬 수 없고요. 마트에 가서 식재료 사오라 시킬 수도 없습니다. 집안 청소를 시킬 수도, 빨래를 시킬 수도 없습니다. 아싸.
하여간 이제 한달이 지났습니다. 뭐가 이리 오래 가는지요. 여전히 절뚝 거리며 걸어다니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조심스럽게 한 발씩 내딛습니다. 통증도 부위마다 있고 다리가 여전히 많이 붓습니다. 애리고 저리기도 하네요.
사실 테니스 레그로 근육을 다치면 꽤 오래 간다는 것을 알고는 있습니다. 5년 전에는 아이와 장난하면서 오르막길을 달려 올라가다가 오른쪽 종아리 근육을 비슷한게 다친 적이 있으니까요. 마찬가지 느낌이었어요. 아이가 실수로 제 종아리를 걷어찼는 줄 알았습니다. 그때도 제대로 걷기까지 두 달 이상 걸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와이프 눈총은 눈총이고 너무 아쉽긴 합니다. 요즘 테니스에 물이 한창 올랐기에 말입니다. 포핸드 스트로크, 강력해졌습니다. 알카라스의 포핸드급이라 농담삼아 얘기하곤 합니다. 예전에는 이렇게 강하게 치면 라인을 벗어나곤 했는데 이제는 스핀도 걸려서 베이스라인에 떨어집니다.
약점이었던 백핸드도 서서히 갖추어가던 중이었습니다. 왼손잡이 한손 백핸드인데 예전엔 그저 슬라이스나 드롭샷 중심으로 처리했지만 이제는 공 위치에 따라 슬라이스와 스트로크를 적절히 섞을 수 있게 됐죠. 서브 또한 자세 폼은 엉성하지만 키가 좀 큰 편에 왼손이어서 그런지 플랫 서브와 슬라이스 서브를 번갈아 가며 넣다 보면 서브 에이스를 얻기도 합니다. 킥서브도 점차 들어가기 시작했고요.
지금은 유튜브 상으로 테니스 눈요기만 하고 있는 처지입니다.
새해입니다. 새해라고 달라질 건 없지만 그저 어서 다시 말처럼 신나게 달리고 싶습니다. 와이프 쿠사리 먹지 않으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