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점심 <5>] 자판기에서 골라먹는 재미까지, 종류도 각양각색
대만에서는 도시락을 벤땅(便當)이라 합니다. ‘벤(便)’이 편리하고 간편하다는 의미이고 ‘땅(當)’이 알맞고 적절하다는 뜻이니 그 뜻 그대로 ‘편리하고 알맞은 밥’이라 할 수 있겠죠. 도시락의 기본 성격에 제격인 이름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도시락 많이 있죠. 다만 도시락이라고 표현하면 글쎄요. 우리나라에서는 집에서 싸가지고 온 음식 뉘앙스가 강하지 않나요? 중고등학생 때 도시락을 아침마다 어머니가 싸주셨죠. 회사 다니면서는 가끔 와이프가 이것저것 싸서 주고 있습니다.
대만의 도시락은 집에서 가지고 오는 것보다는 도시락 전문점에서 만들어서 가져다 주거나 판매하는 찬합 음식을 의미합니다. 편의점에서 간편식을 판매하긴 하는데 그런 것도 도시락이긴 하지만 일상적인 도시락이라 한다면 종이나 플라스틱 찬합 안에 밥과 반찬이 차곡하게 담겨 있는 것을 의미할 것 같습니다.
도시락 문화는 아무래도 일본이 제일 강하겠죠. 일본어로 도시락이 ‘벤또(弁当)’인데 찾아보니 중국 남송시기에 중국어 벤땅이 일본 에도시대 때 전해져서 일본어 벤또가 되었다네요. 다만 남송시기 벤땅은 사실 도시락의 의미라기보다는 ‘실용적인 물건’이란 의미가 강했다고 해요. 일본에 전해진 뒤 진정한 의미의 ‘휴대용 식사’ 의미가 자리잡았고요. 이렇게 도시락 의미가 확고한 벤또가 일제시대 때 대만에 다시 역 유입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 오늘날 중국어에서도 벤땅은 도시락의 의미를 갖게 되었죠.
자 그래서 오늘은 점심으로 이러한 ‘유구한 역사적인 연원이 있는’ 도시락 벤땅을 먹으려 합니다. 점심을 하루 일과 중 중요하게 생각하는 저로서는 도시락을 먹는 날이라면 다른 날과는 다르긴 하죠. ‘편리하고 간편한 밥’을 먹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 날입니다.
아무래도 바쁜 날입니다. 가급적 식사를 서둘러 마쳐서 시간을 아껴야 하는 일이 있는 날이죠. 본사에서 급한 자료 요청이 오거나 미진한 업무를 마무리해야 하는 등의 일이 있는 날입니다. 대만과 한국이 시차가 1시간 있다 보니 한국에서 자료를 오후 2시까지 요청한다면 대만 시간으로는 오후 1시까지 해야 하니 점심을 여유 있게 먹기에는 난감합니다.
날씨가 궂은 날에도 도시락을 찾곤 합니다. 몰아치는 비바람을 뚫고서 식당으로 가는 일은 무모합니다. 대만에서는요. 밥 먹겠다고 신발부터 머리까지 쫄딱 젖고 싶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한여름에도 식당 찾아 삼만리 하기 싫어집니다. 낮기온이 40도에 육박하면 그 뜨거운 열기를 고스란히 받으며 식당이 사무실 건너편 조금만 걸어가면 있다 하더라도 가기가 난망입니다.
하지만 이럴 때만 도시락을 찾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자발적으로 도시락을 먹기도 합니다. 대만의 도시락은 한 끼 식사로 훌륭하기 때문이죠. 식당에서의 밥과 동등한 영양식인데 점심으로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그럼 이 도시락은 어디에서 살까요. 대만 직원들은 함께 배달 주문을 하기도 합니다. 아침 출근길 지하철역을 나오면 도시락 전단지를 나눠주는 분들이 꽤 됩니다. 거기에서 주문하는 것이죠.
저는 주로 회사 건물 1층 도시락 자판기를 이용합니다. 도시락 자판기요? 라 하실 분들 있을 것 같은데요. 한국에서는 도시락 자판기를 전 본 적 없는 것 같습니다. 이게 재미난 대만 문화인데요. 대만에서는 도시락을 이렇게 자판기에서 파는 곳들도 꽤 됩니다.
다만 회사 1층에 있는 자판기는 무늬만 자판기입니다. 도시락을 자판기 안에 진열해 놓긴 했는데, 구매할 때는 그냥 자판기 전체 문을 열고 자기가 직접 집어 갑니다. 하하 이게 무슨 자판기야 싶긴 한데 하여간 무늬는 자판기입니다.
도시락 종류가 20여 가지는 됩니다. 각양각색이에요. 대만 도시락은 크게 고기와 야채를 밥 위에 올려놓은 덮밥 형태와 밥과 반찬을 나눠 담아 놓은 형태로 나뉩니다. 고기 종류는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다 있고 야채는 보통 양배추와 공심채, 콩껍질이 많습니다. 삶은 계란과 소시지, 어묵도 올라가 있는 도시락도 많고요. 짭쪼름한 짠지도 한쪽에 자리하고요.
도시락 업체도 다양해요. 대만의 유명한 식당에서 도시락용으로 만들어서 갖다 놓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전 주문을 받기에 미리 이름이 쓰여 있는 도시락을 가져가면 안됩니다. 이런 도시락은 보통 위에 진열해 놓았죠.
이중에서 제가 좋아하는 도시락은 3가지 정도 됩니다. 돼지고기 볶음과 소시지, 계란이 올라가 있는 푸짐한 덮밥이 그 중 하나이고요. 소고기를 편으로 썰어 구워 놓은 것도 좋아합니다. 가볍게 먹고 싶을 때는 돈가츠 튀김에 손이 갑니다. 한 끼로 훌륭하죠. 가격대는 130~150 대만달러가 제일 많습니다. 한화로 하면 5천원~7천원 정도겠네요.
사무실 건물에서 50여m 떨어져 있는 옆 건물 2층의 도시락 자판기나 도시락 판매점도 이용합니다. 여기는 좀더 저렴합니다. 100~120 대만달러 정도에요. 여기는 덮밥 형태보다는 밥과 반찬이 나눠져 있는 도시락이 많습니다. 꽤 맛깔스러워요. 밥도 고슬고슬하니 괜찮고 계란말이와 불고기볶음, 야채 2가지, 콩깍지나 양배추볶음 등이 곁들여 있습니다. 다만 양이 약간 적은 편인지라 후식으로 빵을 먹기도 합니다. 이곳에는 도시락 먹을 실내 공간이 널찍이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오늘은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했네요. 생각해 보니 대만에 와서 점심시간에 의외로 도시락을 많이 찾았네요. 나중에 한국에서 꽤 생각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