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소소한 일상]
“하이하오마?”(還好嗎?) 새해 아침 같은 아파트에 사는 대만 분이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안부를 묻습니다. 사실 단순한 일상적인 안부 인사는 아니었죠. 그분도 알고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12월 한국은, 우리 한국인들에게 혼란과 충격적인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던 곳이지만 외국인들이 느끼기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오히려 뉴스로만 접한다면 그 혼돈과 난맥상은 그 이상으로 여겨질 것 같습니다.
한국의 비상계엄과 탄핵은 대부분의 대만 언론매체가 꼽은 2024년 10대 국제뉴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마찬가지였겠지만 대만에서도 불법 비상계엄이 선포된 2024년 12월 3일 밤부터 관련 소식이 실시간으로 쏟아졌습니다. 대만 주요 포털 yahoo 사이트의 메인 뉴스 10개 중 6개는 한국 비상계엄 관련 소식이었습니다. 주요 뉴스 채널 TVBS 경우에도 메인 뉴스 15개 중 8개가 한국 계엄 소식으로 채워졌습니다. 자유시보와 중국시보 등 다수의 지면매체도 12.4자 1면 머리기사로 올렸습니다.
관련 보도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여전히 많은 매체는 특집 코너를 만들어 후속 보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죠. 1월 3일 어제만 하더라도 공수처의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이 무산됐습니다. 조만간 재차 체포영장 집행을 할 것이라는 전망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극도의 정치적 혼란 속에 12월 29일에는 충격적인 제주항공 무안공항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일요일 아침에 발생한 이 사건 또한 대만에서도 집중적인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179명이 희생된 현장 상황은 참담함 그 자체였습니다. 대만에서도 같은 달부터 타이베이발 무안공항 노선 운항이 데일리로 시작되었기에 그 운항 소식을 아는 대만 사람들은 더욱 놀라는 반응이었습니다.
사연 하나하나에 머라 말을 건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현장 사진 모습은 그저 제대로 바라보기 힘듭니다. 착륙을 앞둔 10분 정도의 시간에 비행기에 탑승해 있는 분들의 그 공포가 어떠할지 어떻게 가늠할 수 있겠습니까. 남아있는 분들의 슬픔에 마음 깊이 위로를 건네고 싶습니다.
어느 한 대만매체는 내란과 대형 항공기 참사 등이 이어지고 있는 한국의 상황을 ‘動盪不安(동탕불안)’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사회적, 정치적으로 혼란과 불안함이 가득 차 있는 상황이라는 거죠. 1948년 중국 사회 상황을 배경으로 한 소설에 등장한 표현인데 현재 한국 사회 모습이 당시 사회의 격변과 혼란까지는 아니겠지만 한국 상황을 설명할 때 이러한 표현까지 등장한 것입니다.
이러니 그 대만 분은 신년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가 아니라 염려의 마음에 ‘괜찮아요?’를 신년 인사로 건넨 것입니다. 평소 저희 집에서 김치를 만들어 한포기 갖다드리면 너무나도 맛나게 드시고 한국에 대해 이것저것 궁금해 하던 분이기에 지금의 한국 상황이 못내 안타까운 마음도 그 안부 인사에 묻어났던 것 같습니다.
어쩌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걱정이 되는 나라가 됐나 모르겠습니다.
국가애도기간과 함께 연말연시를 보낸 우리와 달리 대만의 연말연시는 2024년을 보내는 아쉬움과 2025년을 맞이하는 설렘이 가득했습니다. 2025년 새해 시작 0시 0분에 대만 최고 높이의 101 빌딩에서는 6분 동안 ‘Team Taiwan Champion’을 주제로 하는 불꽃축제가 화려하게 이어졌습니다.
대만인이라면 2024년 최고의 행복했던 순간이라 꼽을 만한 것으로는 대만 야구대표팀이 세계 야구대회 ‘프리미어12’에서 우승했다는 점일 겁니다. 그래서 이번 불꽃축제 주제가 ‘Team Taiwan Champion’이고 그 영광의 순간을 중심으로 기획됐습니다.
불꽃축제 공간에는 그룹 Queen의 ‘We Are The Champions’, 12강 대회 대만팀 주제곡이었던 ‘함께하자’(就一起), 대만 국민그룹 五月天의 ‘最好的一天’(최고의 하루) 등이 울러퍼졌습니다.
약 20만 명이 운집했다 합니다. 가족, 친구, 연인 등과 함께 나온 대만 사람들은 차가 다니지 않는 도로 위에 서서 화려한 불꽃축제는 물론 공연 행사를 즐겼습니다. 젊은 친구들은 길거리에 돗자리 등을 펼쳐 앉아 2025년 새해를 웃음으로 맞이했습니다.
2025년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올 한해 혼란과 어려움으로 시작됐지만 잘 될 거야’란 덕담을 건네고 싶습니다. 하지만 어느 언론매체의 기사 ‘내리막길 가속도 붙은 한국, 위기 극복 신화에 기대지 말아야’란 냉정한 기사가 머리에 계속 남네요.
그래도 건네고 싶습니다. “잘 될 거야”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