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은 고급진 알바를 해야해? 나를 망치는 길..
2005년 대학생이 되던 때,
기숙사에서 지내면서 월 30씩 용돈을 받았는데 한창 술마셔야하고 놀고싶은 나이에 30만원은 턱없이 모자랐다. 하지만 1학기동안 매일 이어지는 새내기 저녁 모임을 빠지기 싫어 아침, 점심을 안먹고 저녁만 먹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드디어 여름방학이 되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그때 유행했던 핸드폰팔이를 시작했다.
은행에 업무를 보러 온 사람들에게 핸드폰을 파는 일이었는데 모르는 사람에게 무작정 말을 걸어 핸드폰 팔기란 창피한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붙이는 재능이 있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아줌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하고 저렴하게 나온 핸드폰을 추천하는데 의외로 하루 1대 이상은 팔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은행업무를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대에 갓 20살 어린애가 핸드폰을 판다고 깝죽거리는게 웃겨서 말을 받아 주고 의외로 저렴하여 핸드폰을 바꾸고 간 것 같다. 그렇게 모르는 사람에게 말걸기라는 능력이 쌓였다.
하지만 부모님은 내가 하는 아르바이트를 좋지 않게 보셨다.
방학때 잠시 본 돈맛은 참 달콤했다.
한달에 100만원이란 돈은 20살아이에게 어른이 된 기분이 들게 했다. 학교로 복귀하고도 돈을 벌고 싶었다.
부모님은 과외나 학원 선생 알바를 하라고 강요를 했으며 용기와 경험이 없던 나는 부모님이 시키는데로 학원 에서 사회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첫 학원 월, 수, 금 오후 4시~ 오후 9시 월급 50만원. 시급 8,330원
두번째 학원 월, 수, 금 오후 4시~오후 9시 월급 60만원. 시급 1만원
세번째 학원 화, 목 오후 5시~오후 9시 월급 60만원. 시급 1만 8,750원
학원의 경영악화로 두 학원이 망하고 마지막 학원에서 좋은 원장 선생님을 만나 돈을 꽤 받고 일을 했다.
첫번째 학원이 망했을 때 우울감과 상실감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두번째 학원이 영,수만 전문으로 하려 한다고 이번달까지만 일해달라고, 학원 사정이 안좋아 이달 월급을 언제 줄지 모르겠다는 말을 들었을때, 대학생의 패기로 그자리를 박차고 나왔던 일은 두고두고 후회하며 반성한다. 하지만 앞에 두 학원이 망한 덕분에 더 좋은 곳을 찾아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었다.
학원 선생을 하면서 배운 점은 딱 하나다.
학원에서 해주는 것은 책을 한번 더 임팩트 있게 읽어주고 문제를 푸는 시간을 주고 채점을 해주는 일이 전부다. 하지만 부모들은 내 아이 혼자 할 수 있거나 인터넷 강의를 보면서 할 수 있는 일에 월급의 20~30%를 낭비 한다는 것을 학원 강사 할때 깨달았다.
한번은 중학교 3학년 과학과외를 한 적이 있었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일주일에 한번 2시간 동안 문제집을 같이 본 것이 끝이다. 나도 어떤 내용인지 이해를 못해서 예습을 하고 갔다. 그 아이는 과학을 모르는 멍청한 과외 선생 밑에서 30점 맞던 과학점수를 80점으로 올리는 대단한 성과를 보여줬다.
그때는 그 아이덕분에 번 돈 30만원이 즐거웠다. 지금 그 아이를 생각해보면 조금만 관심을 주면 날 수 있는 새한테 고액을 투자하면서 비행하는 방법을 가리쳤다고 생각이 든다.
주말에는 이마트 주차요원 아르바이트도 했었다.
주말에 집에는 가기 싫고 핑계는 없어서 시작한 아르바이트였다.
다른 친구들은 주말이면 엄마아빠 보고싶다고 집으로 갔는데 나는 혼자 아무도 없는 기숙사에 남아 아르바이트를 다녔다. 그때는 내가 돈이 필요해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돈은 충분했었다.
이마트 주차요원 알바는 카트만 이동해주는 아르바이트라 크게 배울 것이 없었지만 여러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혼하고 10살 어린 여자아이를 만나는 오빠, 가정형편이 불우한 고등학생, 갈 곳 없는 20살 동갑내기 친구, 팀장님은 나를 대학생이라고 우대를 해주며 카트만 이동 시키게 해주셨다. 대기하는 시간동안 고등학생들에게 좋은 말을 해달라고 당부를 하시며... 하지만 내 길도 모르는 나는 좋은 말을 해 줄수도 없이 아이들의 인생 한탄만 묵묵히 들어 주었다. 매일 술마시는 부모님, 때리는 아빠, 이혼 가정, 엄마가 집을 나간 아이들... 한창 이쁨받으며 수능을 준비해야 할 나이에 용기 있게 사회에 뛰어든 아이들... 그 속의 갈곳 잃은 나는 함께 처량했다.
그렇게 열심히 번 돈으로 인생 첫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그 후에도 가끔씩 돈이 생기면 여행을 즐겼다.
그 덕분에 어학연수를 다녀올 수 있는 용기도 있었고 더 많은 세계를 볼 수도 있었던 것 같다.
그 후 시간이 흘러 졸업을 하고 떠 밀리듯 사회로 밀려나왔다.
지금생각하면 그때 더 많은 경험을 해볼껄... 이라는 후회가 막심하다.
30대 중반인 지금 내가 무슨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 해보면 아무것도 없다.
만약 어린 나이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었다면 물류의 흐름과 정리에 대해서 알 수 있었을 테고 지금 나이에 돈을 모은 후에 편의점을 차려도 됬을 것이다.
음식점이나 카페 아르바이트를 했었으면 식당이나 카페창업이 수월했을지 모른다.
학원을 차린다는 생각은 계속 했지만 요새 학원 경쟁은 엄청 힘들다. 영어학원은 대다수가 외국에서 살다온 이민자, 유학생들이다. 만약 강사를 꾸준히 하였으면 지금 나이에 차릴 수 있는 경력과 노하우가 생겻을 수도 있지만 중견기업 10년 부품으로 살아온 나에게는 이제부터 배워야 할 과제들만 놓여있다.
카페라도 일을 배워 볼까해서 이력서를 몇십통 넣어봤지만 연락은 없다.
음식점에 아르바이트를 하려니 아이들이 걸린다. 핑계도 많아졌다.
음식점에서 열심히 주인의식을 가지고 아르바이트를 했었다면 프렌차이즈 계약을 할 필요도 없을텐데...
요새는 프렌차이즈 아닌 잘나가는 음식점을 찾아보기 힘들다.
다른 사람의 경영철학과 노하우를 돈주고 사지 않으려면 나의 경험이 있어야 한다.
늦지 않은 나이 35살...
지금이라도 깨닫고 오늘 하루도 꿈과 경험으로 가득한 하루를 살아보련다.
사람들이 대게 기회를 놓치는 이유는 기회가 작업복 차림의 일꾼 같아 일로 보이기 때문이다.
Opportunity is missed by most people because it is dressed in overalls and looks like work.
By Thomas A. Edi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