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끼리는 도와가며 살아야 한다고 친척끼리의 우애를 강조하는 대한민국의 보통 가정에서 살았었다.
하지만 명절날 밖에 친척들을 보지 못했고 명절날에는 꼭 한번 이상 친척들끼리의 마찰이 있었다.
고스톱 치다 싸우거나 술 마시다가 과거 이야기를 하면서 "서운했다. 네가 잘못했었다. 그때 왜 그랬었냐" 등등 마음의 소리들이 밖으로 나와 서로 얼굴 붉히며 헤어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서로 만나면 일 자랑, 자식 자랑, 돈 자랑, 애완견 자랑까지... 사소한 일까지도 자랑을 해야 하는 대회 같았다.
"우리 OO가 몇 살이지?" (항상 물어본다.)
"공부 잘하고 있어? 반에서 몇 등해?"
"이성친구 있어??"
"엄마 아빠 말 잘 들어야 한다."
이 4 마디면 명절에 1박 2일을 함께 보내는 큰아빠와의 대화는 끝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 아이들끼리도 TV 앞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대화 없이 보냈다.
아빠 형제는 총 5명이었는데 음식 장만을 하는 집은 제일 큰 아빠네 가족과 우리 가족이 전부였다.
둘째 큰아빠와 셋째 큰아빠네는 음식 장만이 끝나면 방문했었고 엄마는 항상 짜증이 나 있었다.
1박 2일이 끝나고 집에 가는 차 안에서는 친척들 뒷담화가 시작되었다.
"OO는 애를 그렇게 키워~ 인사성도 없고~"
"OO는 살이 더 쪘더라~ 대체 부모는 뭐 하는 거야~"
"OO는 왜 안 데리고 와, 아주 가족보다 돈 버는 게 더 중요하지~애를 그렇게 키우면 안 돼"
"OO는 대학을 안 보내는 거야? 애 그렇게 놔두면 사회생활 어떻게 하라고~"
"돈도 잘 번다며 왜 애들 용돈은 안 줘? 머 사 온 것도 없이, 돈을 쓸지 몰라."
등등 친척들이 원하지 않는 걱정과 비평을 늘어놓다가 결국에는 엄마가 하는 아빠 가족 비판의 소리는 엄마와 아빠의 싸움이 된다.
그다음 차례는 친척들과 우리의 비교가 이어진다.
"OO는 반에서 몇 등 했다는데!"
"OO는 올림피아드 대회에 나갔다는데!"
"OO는 교환학생 다녀온다는데!"
"OO는 돈 잘 버는 남자 만난다더라."
"OO남편은 연봉 1억이라 더 나, 정서방은 얼마 버나?"
"OO는 한 달에 백만 원씩 이모 용돈 준다고 하더라"
나이가 어렸을 때도 비교, 나이가 많아져도 비교가 이어진다. 나는 착한 아이가 아니라 비교를 당하면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아닌 말하는 사람과 대상자에게 미움과 시기의 감정을 느끼면서 잘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반항 심에 더 못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지도 모른 채, 엄마는 비교를 시작한다.
그렇게 나의 명절은 끝이 난다.
명절 친척집 방문은 나에게 신나는 일이 아닌 엄마 아빠가 싸우고 친척들이 싸우는 재미없는 곳, 가기 싫은 곳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부모님은 나와 동생에게 친척이 중요하다는 말을 항상 입버릇처럼 했다.
"가족 빼고 남는 게 없어."
"친척들과 잘 지내야 돼! 서로 연락도 하면서 지내야지!"
하지만 내가 보는 친척 모임은 항상 싸움이었고 명절 때만 오면 도살장 끌려가는 돼지처럼 1박 2일이 너무 싫었다. 집에 돌아오면 엄마는 돈을 얼마 썼다느니, 이번 달은 힘들게 살아야 한다는 둥, 왜 OO할머니까지 용돈을 들드렸냐느니, 외할머니도 용돈 챙겨 드려야 되는데 아빠네 집에서 돈을 많이 써서 못 챙겨 드리겠다는 둥 돈에 대한 짜증 후폭풍이 몰아쳤다. 그럼 한 차례 또 싸웠다.
외갓집 모임에도 다른 가족들 챙기기 귀찮으니 이모들끼리 모인다고 하면서 나에게는 외갓집 모임을 만들어서 친척 아이들을 챙기라고 한다. 모임에서 밥 차려 먹이는 일이 귀찮다고 하면서 나에게는 그 귀찮은 일을 하라고 떠민다.
이렇게 나에게는 친척 = 짜증, 싸움, 비교, 돈, 귀찮음이 무의식적으로 생성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부모님은 친척들과의 우애를 강조한다.
친척....이라는 글자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은 따듯한 정이 떠올라야 하는데...
나에게는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란 인식이 떠오른다.
만약 나에게도 따듯한 정의 친척이 있었다면, 친척을 비판의 눈으로 보기보다는 사랑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부모님이 도와주었다면, 친척 이외의 다른 인간관계 모두 건설적인 시각으로 지금과는 다른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 힘들겠지만 현재부터 바뀌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