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똘맘 Sep 22. 2023

캐나다 시골 일상 - 깻잎 키우기

다행히 캐나다 시골에서도 대부분의 한식 재료를 구할 수 있다. 


떡국 떡도 있고, 떡볶이 떡, 만두, 김치, 새우젓 등등..
원하는 음식은 대부분 중국 마트에서 사 올 수 있는데, 한참을 찾아도 없는 것이 바로 깻잎이었다. 
리자이나에 서울 마트라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마트에 가면 깻잎을 살 수 있다고 들었지만, 남편이 쉬는 날이랑 마트가 쉬는 날이랑 겹쳐서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깻잎 때문에 평일에 나 혼자 한 시간이나 걸려 왕복 3만 원이 넘는 기름값을 내며 갈 정도로 절실하지는 않아서 SK 주에서는 깻잎을 포기하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사모님이 깻잎 씨앗을 주면서 심어보라고 했다.

7월 17일

흙도 주셔서 식당 주방에서 다 쓴 소스 통 들고 와서 씨앗을 심었다. 


난 식물을 살려 본 적이 없는데....


나에게 오는 식물은 한 달이 안 가서 모조리 죽었었다. 일부러 죽이지는 않지만, 식물과는 친하지 않다.

그래서 약간 걱정이 됐지만, 캐나다 와서 하고 싶은 일 중 하나가 텃밭 가꾸기라 연습 삼아 깻잎부터 가꾼다고 생각하며 깻잎 쌈을 싸서 먹을 기대를 가득 안고 깻잎을 심고 관찰했다. 

7월 24일

일주일 정도 지나니 앙증맞은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아침마다 새싹이 얼마나 더 자랐네 하면서 구경하며 쓰다듬어도 주고 노래도 불러줬다.

"자꾸 쓰다듬으면 죽을 텐데..." 걱정하는 엄마 마음은 모르고 열심히 이뻐했다.

8월 7일

씨앗을 심은 지 3주가 지났다. 천천히 크고 있는데, 한 곳에 너무 집중되어 있다. 

처음 이런 걸 심어 보는 거라 씨앗을 한 통 다 뿌렸는데, 오버했던 것 같다. 
한 10개 정도만 심었어야 했나? 통 가운데가 빡빡하게 자라고 있어서 뿌리 하나를 파내서 옆에 심었더니, 죽어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알아서 크겠지 하면서 3일에 한 번 정도 물을 주면서 관찰하고 있다. 

8월 14일

소스 통에 골고루 깻잎이 올라왔다. 너무 많은 것 같아서 다른 통에 옮겨 심을까 생각도 했지만, 

마이너스 손의 소유자라, 내가 손대는 것보다는 자연적으로 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패스. 
깻잎을 만지면 싱그러운 허브향이 강하게 내 손에 배어 온다.  

8월 19일

깻잎을 심은 지 한 달이 지났다. 지난주에는 통 속에 있던 깻잎이 통 밖으로 나오려고 한다. 

일주일 만에 5cm는 자란 것 같다.  곧 깻잎을 먹을 수 있는 날이 다가오는 것 같다. 

8월 23일

 며칠 만에 깻잎이 이파리도 커지고 키도 커져서 이제 통 밖으로 확연히 나왔다. 

내가 이렇게 깻잎을 잘 키울 수 있었다니... 감동이다. 

8월 29일

통에서 조금 올라온 게 얼마 안 됐는데,.. 일주일 만에 통 밖으로 수북하게 올라왔다. 

이제 조금만 크면 먹어도 되나 싶은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집에 벌이 들어왔다!!!


자연현상은 참 신기하고 인간의 머리로는 설명이 안 되는 것이다. 
깻잎이 벌을 불렀나? 벌이 창문에서 깻잎을 보고 들어왔나? 
그전에는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던 벌이 깻잎이 크니 하루에 3~5마리씩 집안으로 들어온다. 

처음에는 당황해서 도망가기 바빴는데, 이제는 파리채로 파리보다 쉬운 벌 잡기를 한다. 

9월 6일

깻잎이 힘없이 축 늘어져있다. 이번에도 식물 키우기 실패인가? 싶어서 땅을 만져보니, 땅에 물기가 없다. 깻잎이 크면 클수록 물을 많이 필요하나 보다. 컵에 물을 받아서 넉넉하게 2잔을 줬더니 다음날은 더 싱그럽다. 

9월 11일

깻잎을 심은 지 56일이 되는 날, 생전 처음으로 내가 키운 깻잎을 땄다. 

처음 딴 것들은 제육볶음 같은 거 하실 때 넣어서 드리라고 사모님께 선물로 드렸다.

두 번째는 감자탕을 만들 때 넣어서 먹었다. 감자탕을 끓일 때 깻잎이 없어서 별로였는데, 깻잎을 넣으니 확실히 맛이 산다.  


내가 키운 무공해 깻잎!!


깻잎을 키우면서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다. 
깻잎도 밤에는 잠을 자고 낮에는 햇볕을 받기 위해 잎을 세우기도 한다. 
잎 하나가 쫑긋 세워져 있으면 너무 귀엽다. 

그리고 깻잎은 자꾸 벌을 부른다. 꽃도 없는데도 싱그러운 초록색으로 벌을 유혹 하나보다. 
마지막으로 말벌은 움직임이 느려서 잡기 편하다. 우리 집에 들어오는 벌이 꿀벌인지 알았는데, 쭌이가 빌려온 책을 보니 이것은 틀림없는 말벌이다. 
캐나다에는 벌이 참 많다. 처음에 벌이 집에 들어왔을 때 패닉이었는데, 아이들 때문에 내가 잡을 수밖에 없었다. 한 마리를 잡으니 다음은 더 쉬워지고 이제는 벌이 파리채에 앉으면 안전한 밖으로 이동시켜주는 여유도 생겼다.  더 이상 벌이 무섭지 않다. 처음에는 벌이 들어오면 호들갑 떨면서 화장실로 대피하던 애들이 이제는 "엄마, 벌 들어왔어~"라고 하고 무덤덤하게 본인들 하던 일을 계속한다.  

9월 21일

 오늘 자 깻잎 사진! 물을 듬뿍 주고 바람과 햇빛으로 일광욕과 풍욕을 시켜주니 더욱 잘 자라고 있다.

들깨도 채취 가능할지 모르겠다.   
캐나다에 가을바람이 선선하게 불기 시작해서 언제까지 깻잎이 견딜지는 모르겠지만
영주권을 받고 내 집을 사서 양파, 파, 감자, 당근, 오이, 애호박, 깻잎을 심을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캐나다는 오늘도 햇빛이 참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캐나다 초등학생 공부, 1학년, 3학년은 뭘 배우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