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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이 Sep 29. 2021

아빠의 모습도 좋았어? - 2

부부의 탄생

아이의 질문으로 뜻밖에 우리의 첫 만남을 자세히 떠올려보다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었다.


적지 않은 나이였고 누군가의 주선, 그것도 나에게는 편하지 않은 대선배였고 상대방에게는 고모라는 위치로 인해 마주하게 된 만남에서 어떤 기대를 할 만큼 순진하지 못했다.

남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어른이 주선한 자리이니 거절은 못하겠고 일은 바쁜데 약속 시간은 다가오니 부득이 시간 변경을 해놓고도 여의치 않아서 또 한 번의 약속 변경에, 만나서 어디를 갈 건지 사전 조사는커녕 부랴부랴 시간 맞추기 급급한 사정이었던 거다.


서로 도착은 했다는데 상대로 짐작되는 사람은 없으니 답답함을 느끼며 하게 된 통화에 각자 다른 장소에 서 있는 걸 알고는 참 만나기도 전에 뭐가 이리 꼬이는 건가, 이렇게 또 시간을 죽이게 되는 건가 싶었다. 어쨌든 만나기로 한 장소가 내 활동 지역이었으니 꼼짝 말고 계시라 하고는 택시를 타고 그분이 있는 곳으로 갔더랬다.


첫인상이 나쁘지 않았었겠지.


“어디로 갈까요?”

“어... 제가 여길 잘 몰라서. 준비를 해오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럼 좀 걸으실래요? 곧 식사 시간이니 제가 잘 가는 몇 군데 중에서 골라봐요.”


혹여 맘에 들지 않더라도 누군가를 부러 기분 나쁘게 만드는 성향은 아니지만 내가 이렇게 친절할 수가 없었네~


식사 내내 이런저런 주제의 대화가 막히지 않고 자연스레 이루어지면서 즐거웠다. 이 나이에 누군가와의 대화가 이리 즐거워보긴 또 오랜만이라 살짝 흥분했었던 것도 같다. 차를 마시고 집 근처까지 배웅을 받고도 헤어짐이 아쉬웠었다. 나는 그랬었다.


남편은 나와 장소가 엇갈리고 내가 이동을 하는 동안 그 장소에서 지나치는 많은 여자들을 보며 이 분인가 아니구나를 여러 번 반복하다, 아.. 저분이네 했었단다. 그러고는 안도감이 들었었다고 했다.

이상한 사람은 아니구나...라고 ㅡㅡ.


평소 잘 먹지도 않던 이탈리안 메뉴지만 무조건 괜찮았었다고...

대화가 잘 통하는구나 싶자 이대로 큰 문제만 없으면 나도 이제 결혼을 하겠구나 싶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겠지만 그 늦은 나이까지 양가 부모의 속을 태우고 또 본인들 스스로도 맘고생을 해가며 버텨오던 솔로 생활이 저물었다.

우리는 그렇게 만났고 사랑에 빠졌다.


나이 든 커플에게 시간은, 아니 정확하게는 양가 부모님이 기다려주지 않는다. 주선자의 적극적인 개입에 힘입어 만난 지 260일이 되는 날 우리는 결혼식장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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