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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Oct 18. 2024

노동 후에 오는 것들 3. 건강한 몸에서 건강한 마음이

"정신 상태가 글러먹었어! 마음만 먹으면 못 할게 뭐가 있어!" 


풀충전만 하면 뭐든 해낼 수 있다는 강한 정신력의 신화는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가스라이팅 받아온 나와 우리 집안의 상식이었다. 마음과 정신은 몸보다 고차원적인 곳에 존재해서 내가 마음먹기만 하면 못 할 것이 없으며, 어떤 상황이 와도 강인한 정신력만 갖고 있다면 내가 이루고자 하는 일 중에 못 이룰 것이 없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주입받았고, 나 또한 이 진리를 믿으며 불가능한 많은 일들을 이겨내고 살아왔다. 


그러나 이 말은 명백히 "거짓"이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제1 준비물, 근육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원체도 근육량이 없지만 나는 원래 운동과 먹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걷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뭐든 시작하면 잘해야만 하는 나는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운동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먹는 것도 입이 즐거운 음식에만 관심이 있을 뿐, 세상이 웰빙과 바프 열풍으로 들썩일 때도 특별히 건강하게 먹는 일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는 젊었고, 내 미래의 건강을 끌어다 쓰며 무책임하게 나의 몸을 방치한 채 연명하고 있었다. 


이 역시 출산과 함께 적신호가 켜졌다. 없는 근육은 더 사라져 갔고, 먹는 것에도 관심이 없고 늘 피곤한 상태에 있다 보니 난 최소한의 움직임만 하며 살게 되었다. 결국 만성피로에 시달리게 되었다. 손발은 늘 차가웠고, 늘 추웠다. 몸의 이상은 결국 우울감을 가져왔다. 특별히 건강상의 이상은 없었지만,  몸의 텐션이 올라올 일이 없으니 마음은 늘 쳐졌고, 마음에도 근육이 없으니 그 어떤 희망 하나도 들어 올릴 힘이 없었다. 나는 모든 것에 욕심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욕심이 너무 많아 언제나 화가 되고 탈이 되었던 사람이 마치 도를 터득한 듯 아무것에도 욕심을 내지 않는 무욕의 삶을 살려니 비워져 가벼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공허감을 느꼈다.  


가장 위험한 상태는 실패를 하거나, 실망을 할 때가 아니었다. 희망 자체가 없는 삶. 무엇도 기대하지 않는 삶. 난 희망과 기대가 없는 마음의 상태로 늘 몸이 힘들고 피곤한 상태로 몇 년을 보냈다. 끝없이 피곤한 몸은 끝없이 무기력한 마음과 한 세트였다. 그리고 인정하게 되었다. 


마음보다 몸, 결심보다 체력이 먼저! 


결국 몸이 마음보다 위였다. 


몸을 움직여 에너지를 태우고, 먹고 싶은 것들을 건강하게 먹고 생긴 에너지를 양분 삼아 하고 싶은 것들이 탄생하고, 계속해서 움직이는 몸에서 희망과 기대들이 생겨나는 것이었다. 평생을 유물처럼 간직했던 강인한 정신에서 강인한 몸이 탄생한다는 생각 대신 건강한 몸에서 건강한 마음이 생겨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생각은 일용 노동직 현장에서 완벽하게 증명되었고, 나는 이 사실을 진리처럼 믿게 되었다. 

일용 노동직 현장에 나가면서 나는 평생 흘려본 적 없는 땀도 흘려봤고, 일평생 써본 적 없는 위치에 있는 근육도 써보았다. 몸을 움직이면 힘들고 고되었지만, 노동이 끝나고 마시는 물 한잔은 너무나 달았고, 먹는 밥은 너무나 달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음날 알 수 없는 긍정의 기운과 에너지가 온몸을 채웠다. 곱씹고 다짐하고 다시 새겨야 생기는 긍정의 기운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움직임에서 탄생한 긍정적인 에너지이기에 

쉽게 사라지거나 근거 없는 일들로 쉬이 날아가버리지 않았다. 


몸이 스스로 증명해 내는 나를 지키는 삶, 정직하게 움직인 땀에서 탄생한 나는 나의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온몸에 도는 긍정적인 에너지는 몸을 데웠고, 나의 피곤함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것들이 샘솟기 시작했다. 지금 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도 그 움직임에서 탄생하였다. 


체력이라는 씨앗은 결단력, 끈기, 용기라는 열매로 바뀔 있는 근원이자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그렇게 건강한 몸에 대한 신봉자가 된 나는 과자 대신 양배추를 사고, 커피 대신 단백질 음료를 먹었고, 기름진 음식들 대신 고단백의 음식들을 챙겨 먹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몸이 쳐지고 부정적인 생각들이 들라치면 일단 운동화를 신고 나가 걸었다. 그렇다고 갑작스레 사계절을 다 타는 내가 이성적인 사람이 되거나 어떤 상황에도 지치지 않는 체력과 근력을 갖게 된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병뚜껑도 잘 못 따는 근력에, 조금만 무리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아도 지치는 개복치 체력과 담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불안감이 들면 생각을 멈추고 나가 걷는다. 그리고 지금보다 조금 더 골치 아픈 상황들이 닥쳐온다면 나는 바로 구인 앱을 켜 일용직 노동을 신청할 생각이다. 건강한 정신을 위해 건강한 몸을 세팅할 것이다.


평생 꿈꿔왔지만,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들 앞에 매일같이 멘털의 강도를 시험받고 있는 요즘. 


나는 노동 현장에서 깨우친 '건강한 몸에서 건강한 마음이 깃든다'의 원리를 떠올리고 실천하고 있다. 불안하면 걷는다. 잘 모르면 뛴다. 자신감이 바닥을 치면 일단 집안일이라도 한다. 잘 모르겠으면 일단 걸어 집 앞 가게라도 가서 체력이 차오를 수 있는 것들을 사 먹는다. 


결국 그 무엇보다도 건강한 몸이 먼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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