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 Oct 23. 2024

영원히 재활용될 일회용의 추억

'내가 딱 하루만 살 수 있다면'

'딱 한 번만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한 번쯤은 해봤을 이러한 상상들이 애틋하고 특별한 이유는 '딱 한번'이라는 단어가 갖는 유한함 때문일 것이다. 시간도 사람도 딱 한 번을 붙이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해지는 데 유독 '한 번만 쓴다'라는 말은 그 무게가 너무나 가벼워진다. 아마도 일회용 컵과 접시, 한번 입고 버릴 옷 등 한번 쓰고 버려도 똑같이 생긴 수많은 일회용들이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보통 일용직의 일용도 한번 쓰이고 말 일자리라는 의미로 그 값어치가 한없이 가벼운 게 사실이다. 실제로 내가 일용직 일에 도전했다는 얘기를 했을 때 사람들의 첫 번째 반응은 걱정이었다. 집에 무슨 우환이 있는지, 정말 삶의 사지에 몰린 것은 아닌지 나를 걱정하고 눈치를 살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우려와는 다르게 나의 이번 여름을 꽉 채운 일회용 노동의 기억은 정말 애틋하고 특별하고 소중하게 쓰였다.  그리고 그 일회용의 추억은 용기가 바닥날 때, 두고두고 재활용하여 나의 마음속에서 쓰일 기억으로 남았다. 


딱 하루만 쓰이는 일이라 새로웠다. 

마치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세상에 떨어진 앨리스가 된 듯 나는 낯선 환경 속에서 새로운 인생을 사는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하는 일은 모두가 똑같고, 단순하여 마치 부품의 일부분인 듯 특별하지 않았지만, 

그러기에 온전히 것의 나, 본디 나라는 사람에 집중할 있었던 시간이었다. 


딱 하루만 쓰이는 일이라 즐거웠다.

업무 스트레스도 서사가 있어야 생겨난다. 계속해서 나를 괴롭히는 직장상사, 일전에 했던 실수, 손 발이 안 맞는 부서와의 협업 등 앞 단이 있어야 뒷단의 이야기도 만들어질 수 있을 텐데 이 것은 기승전하루만에엔딩이 결정되어 있는 일이라 큰 스트레스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유한한 시간 속에서 내가 최선을 다해 이 시간들을 채우겠다는 목표 하나만이 존재했기에 즐겁고 유쾌하지 않은 순간에도 적어도 눈살을 찌푸리거나 불쾌하지 않을 수 있었다.


딱 하루만 쓰이는 일이라 모든 오감이 열렸다. 

사람은 원래 처음 하는 것들에 모든 감각들이 살아난다. 더 이상 놀이동산이 즐겁지 않은 것도, 특별할 음식이 없는 것도 언젠가 해봤던 일들이기에 나의 오감이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다녀왔던 모든 일용 현장들의 공기와 냄새, 소리, 습도, 사람들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일이 끝나고 노동 파트너와 마셨던 세상에서 가장 단 커피와 모든 현장에서 먹었던 밥들의 맛도 혀끝에서 그려진다. 마치 어린아이가 된 듯 한 시간 한 시간이 길고 한 순간 한 순간이 나를 자극했다. 


딱 하루만 쓰이는 일이라 나를 평가하지 않았다. 

한 인터뷰에서 삼시 세 끼의 유해진이 자신이 바다에서 낚시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생계와 연결되지 않았던 일이기에 가능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나를 평가하거나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되는 일. 누군가에게는 생계의 현장이기에 취미나 오락으로 가벼워지지 않을 무게를 가지면서도 스스로 나를 평가하지 않았던 시간은 정말이지 인생을 살며 절대 잊지 못할 기억으로 자리할 것 같다. 


두고두고 꺼내볼 달콤쌉싸름한 일용노동의 추억

고철로 분류된 '나는 어떤 순간이 와도 나 하나는 책임질 수 있다'는 단단해진 마음은 새로운 도전들을 머뭇 거릴 때 꺼내어 재활용을 해볼까 한다. 


현장에서 크고 작은 실수로 쌓인, 이리저리 구기며 소리를 내는 비닐같이 한 없이 가볍지만 여전히 부족하고 부끄러웠던 마음들은 요즘 가장 좋아하는 말인 '그럴 수 있지~' 정신으로 재활용하여 앞으로의 삽질에도 두고두고 재활용하여 써봐야겠다. 


박스처럼 규정화되어 있던 나의 고정된 생각들은 잘 재활용하여 미래를 그릴 도화지도 만들고, 희망을 적을 책도 만들어야겠다.


적으면서도 선명하게 떠올라 

자주 웃고, 자주 뭉클했던 

영원히 재활용될 일회용의 추억


나의 일용노동일지 


아무리 생각해도 올해 가장 기억에 남을 

그리고 스스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은 

가장 대견한 기억이다. 







<나의일용노동일지>연재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쓰는 행복함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더 많은 삽질과 방황, 깊이 있는 사유들로 일상들을 기록해 보겠습니다.

이전 19화 나의 노동파트너에게 보내는 응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